[횡설수설/조종엽]집중호우에 내려진 ‘16자’ 대통령 지시사항

조종엽 논설위원 2024. 7. 1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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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후 방미 일정을 위해 하와이로 출국하기 전 정부기관에 내린 장마 대비 '16자 지시사항'이 논란이다.

지시 내용이 "이번 장마에도 피해 대비를 철저히 할 것"이라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천 범람과 제방 붕괴 위험을 점검하라든가, 산사태 취약지역은 미리 대피하도록 유도하라든가 하는 구체적 내용은 전혀 없었다.

이 지시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각 정부 부처에 전파했고 산하 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시도교육청, 일선 학교들에까지 통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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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후 방미 일정을 위해 하와이로 출국하기 전 정부기관에 내린 장마 대비 ‘16자 지시사항’이 논란이다. 지시 내용이 “이번 장마에도 피해 대비를 철저히 할 것”이라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천 범람과 제방 붕괴 위험을 점검하라든가, 산사태 취약지역은 미리 대피하도록 유도하라든가 하는 구체적 내용은 전혀 없었다. 이 지시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각 정부 부처에 전파했고 산하 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시도교육청, 일선 학교들에까지 통보됐다.

▷전달받은 공무원과 교사 등은 “이렇게 짧은 대통령 지시사항은 처음 본다” “(세부) 내용이 전무하다 보니 너무 건성건성으로 보인다”는 반응이다. 메시지는 내용만큼이나 형식이 중요하고, 분량도 일종의 형식이다. 공무원들이 호우 대비의 각론을 숙지하고 있다고 해도 그를 대통령의 메시지에 담느냐 아니냐는 무게감이 천지 차이다.

▷최근 한반도는 짧은 시간 특정 지역에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는 ‘극한 호우’가 일상화됐다. 수십 년에서 100년에 한 번 내릴 만한 큰비가 몇 년 만에 찾아오고 있다. 2022년 중부지방 집중호우로 반지하 주택 침수 참사가 났고, 지난해엔 오송 참사가 발생했다. 과거 강수량 기준으로 만든 대책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 제방의 계획홍수위 이상으로 물이 차오르는 일이 잦아지고, 산사태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장마에도”로 시작해 마치 연례행사 같은 느낌을 주는 대통령의 ‘16자 지시’에선 그런 긴장감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지시가 나오고 하루가 지난 9일 밤부터 10일 오전까지 충청과 호남엔 ‘물 폭탄’이 쏟아졌다. 남북 폭은 좁고 동서로 긴 강수 구역이 형성되면서 일부 지역엔 200년 만에 한 번 올 만한 폭우가 내렸다. 전북 군산 어청도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시간당 146mm의 비가 내렸고, 충남에도 시간당 100mm가 넘게 왔다. 인명 피해도 적지 않다. 충남 서천에서 산사태로 집이 무너져 70대 남성이 사망했다. 충북 영동에선 저수지 둑이 무너져 주민 1명이 실종됐다. 곳곳에서 주민이 고립되고 집이 떠내려가고 농경지가 침수됐다.

▷대통령은 8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 등으로 예측을 넘어서는 기상이변이 자주 발생한다”며 피해 대비를 당부했다는데, 왜 실제 지시는 달랑 한 줄로만 내려갔을까. 그 많은 보좌진 가운데 ‘16자 지시’에 살을 붙일 사람이 없나. 이태원 참사 뒤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은 참모 조직이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컨트롤타워”라고 했는데, 참모 기능은 제대로 하는 건지 싶다. 대통령실을 지붕을 대강 얼기설기 엮어 비 새는 집처럼 꾸려가는 것은 아닌가.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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