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형준]다시 떠올리는 ‘우향우’ 정신과 김학렬의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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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6월 처음 쇳물을 생산한 뒤 2021년 12월 임무를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포스코 포항제철소 1고로(용광로)는 별명이 많다.
민족 고로, 경제국보 1호 등인데, '아카자와 고로'라는 낯선 별명도 있다.
1985년 4월 한일 경제인들이 모인 한 행사에서 포스코 회장이 된 박태준은 민간 경제인으로 참석한 아카자와를 다시 만났다.
박태준은 건배사 때 "우리 포스코는 1고로를 '아카자와 고로'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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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6월 처음 쇳물을 생산한 뒤 2021년 12월 임무를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포스코 포항제철소 1고로(용광로)는 별명이 많다. 민족 고로, 경제국보 1호 등인데, ‘아카자와 고로’라는 낯선 별명도 있다. 그 뜻을 알면 가슴 뭉클해진다.
아카자와 고로는 신뢰가 만든 결과물
박정희 대통령은 ‘철강은 국력’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1965년경 박태준 대한중석광업 사장에게 종합제철소 건설을 지시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가난했다. 박태준은 미국 등에서 차관을 들여오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허사였다. 해외 인사들은 ‘한국이 짓고자 하는 제철소는 사업성이 없다’고 여겼다.
그는 고민하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을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돈을 대는 일본이 사전에 자금의 사용처를 농업발전용으로 명시했기에 일본 정부가 제철소 건설자금으로 돌리는 걸 허가해야 했다. 1969년 초 박태준은 곧장 일본을 찾아 지한파 정치인, 제철소 사장 등을 만났다. 일본 내각도 집요하게 설득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일본은 마지막 단계로 1969년 9월 현지 조사단을 한국에 보냈다. 아카자와 쇼이치 경제기획청 국장이 단장이었다. 처음 만난 박태준과 아카자와 국장은 5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경주로 갔다. 아카자와 국장이 그때 느낀 감정은 안상기 씨의 저서 ‘우리 친구 박태준’에 잘 나와 있다. “박태준은 제철산업 발전을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가 지휘한다면 제철소 건립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포항 현장은 황무지였기에 우리 조사단은 기가 막혔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리만큼 담담했고, 일본 정부가 꼭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나는 매우 긍정적인 보고서를 썼고, 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포항제철 건설이 시작됐다.”
1985년 4월 한일 경제인들이 모인 한 행사에서 포스코 회장이 된 박태준은 민간 경제인으로 참석한 아카자와를 다시 만났다. 박태준은 건배사 때 “우리 포스코는 1고로를 ‘아카자와 고로’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아카자와는 가슴이 벅찼을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포스코는 조강생산량 기준 세계 7위 철강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요즘 고난을 겪고 있다. 아니, 한국 철강업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은 부동산 침체로 저가 철강을 한국으로 쏟아내고, 엔화 가치가 급락하며 가격 경쟁력을 갖춘 일본산 제품까지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유럽의 환경 장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 철강업계는 비상경영으로 대응하고 있다. 포스코는 철강 분야에서 연간 1조 원 이상 원가를 줄이기로 했다. 임원 급여도 최대 20% 반납하기로 했다. 동국제강은 지난달부터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야간에만 인천 공장의 전기로를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철강 경기가 언제 반등할지 가늠하기 힘들다.
박태준 “혈세로 짓는 제철소, 실패란 없다”
다시 포스코를 건설하던 때로 되돌아가 보자. 박태준은 건설 과정에서 현장 직원들에게 “우리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다. 실패란 있을 수 없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 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죽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박태준만 그런 각오를 다졌던 게 아니다. 1969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임명된 김학렬은 취임 즉시 흑판에 ‘종합제철’이라 써놓고 “이 사업이 완결되거나 내가 그만둘 때까지 지우지 말라”고 엄명했다. 철강기업 임직원들이 우향우 정신으로 일하고, 정부가 김학렬 전 부총리의 각오로 지원한다면 극복하지 못할 철강 위기는 없을 것이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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