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3A.M.] 투발루의 묵직한 질문
실존의 기로에서 디지털국가로 해답 찾아
통상 국제법은 국가의 요건으로 영토, 국민, 주권, 타 국가와 관계를 맺는 능력을 꼽는다. 그렇다면 국토가 사라지면 국가 투발루도 사라지는 것일까?
투발루는 실존의 기로에서 스스로 질문하고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투발루의 대안은 디지털 국가 건립이다. 디지털 트윈 기술로 메타버스에 투발루를 그대로 재현해 국가로 계속 존재하겠다는 것이다.
투발루는 2022년 말 디지털 국가 건립을 선언한 후 지난해 말까지 전 국토를 디지털에 매핑하고 정교한 3차원 스캔으로 복원하는 작업을 마쳤다. 미래세대를 위한 영토보존이다. 디지털 국가는 국가의 기능도 그대로 수행한다. 디아스포라로 흩어진 투발루 국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전자여권을 블록체인에 등록하고 선거, 국민투표부터 출생·사망·결혼 신고까지 모든 국가 행정을 처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2023년 9월 투발루는 개헌을 통해 국가의 정의를 변경했다. ‘국가 투발루는 기후변화 또는 물리적 영토에 손실을 가져오는 다른 원인에도 불구하고 역사적·문화적·법률적 체제 안에서 영속한다.’ 사이먼 코페 법무·외무·커뮤니케이션 장관은 “우리 영토는 여러분의 손에 달렸지만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것이다. 밀려오는 바닷물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투발루라는 국가, 정신,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투발루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질문을 국민에게 던졌다. ‘당신이 모든 걸 잃게 된다면 남겨야 할 단 하나는 무엇인가?’ 투발루 국민은 투발루의 정신과 가치의 상징물을 얘기했다. 아이들이 말하는 소리,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담긴 지혜, 힘찬 투발루 민속춤, 전통 결혼식 등 투발루의 삶이 담긴 모든 것이 디지털 ‘노아의 방주’에 기록된다. 낯선 곳에서 향수병을 앓는 이주민들, 투발루에서 태어나지 못할 미래세대를 하나로 엮는 강력한 영적 유대감을 쌓는 일이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닥뜨리면 우리는 ‘투발루의 질문’을 하게 된다. 죽느냐, 사느냐 앞에서 껍데기와 군더더기는 다 떨어져 나가게 마련이다. 핵심, 목적, 의미만이 남는다. 기업에도 꼭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같은 초대형 위기 앞에서 수많은 기업이 명멸할 때 이런 질문을 남긴다. ‘이 회사가 사라진다면 이 세상은 무엇을 잃게 되는가?’ 만약 없어져도 세상에 아무런 미동도 없다면 그 회사는 사실 딱히 존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무수한 사건과 위기가 왔다가 갈 때 그 안에서 중심을 잡을 목적을 찾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2022년 9월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목적 공개’를 선언했다. 세상은 비영리재단을 만들고 4조원이 넘는 지분 100%를 통째로 넘긴다는 결정에 통 큰 기부라고 놀라워했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만들어낸 개념이다. 그는 상장을 의미하는 기업 공개 대신, ‘목적 공개(going public)’를 제시했다. 잘 알려져 있듯, 파타고니아의 사명은 ‘지구를 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는 것이다. 쉬나드는 투자자의 압박 없이 사명을 지키기 위해 기업 공개를 하지 않고 가족기업을 고집해 왔다. 그는 나이가 들고 넥스트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오자 더 나아가 기업의 목적을 지키면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영구적인 경영구조를 고민했다. 그렇게 도출한 ‘목적 공개’는 지구를 유일한 주주로 상정하고 파타고니아가 창출하는 부를 지구를 보호하는 일에 모두 쓰도록 하는 것이다. 전례가 없는 모델이며, 기업의 목적을 추구한 궁극의 경지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 두 개의 질문을 상기해보자. ‘당신이 모든 걸 잃게 된다면 남겨야 할 단 하나는 무엇인가?’ ‘회사가 사라진다면 이 세상은 무엇을 잃게 되는가?’
이인숙 플랫폼9와4분의3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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