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칼럼]프랑스 대혁명, 그리고 조선의 문체반정
실학 배척한 문체반정으로 왕조 몰락 앞당겨
개혁 이끌어야 할 한국정치, ‘탄핵 반정’ 늪에
무더운 여름이다. 하지만 정치·사회적으로는 1789년의 여름이 세계사에서 가장 뜨거웠을 것이다. 그해, 프랑스는 훗날 대혁명이라 명명된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었다. 현대 사회의 국회와 유사한 역할이던 당시 삼부(三部)회의는 사제, 귀족 그리고 평민으로 이루어진 신분 차별적 구조였다. 사제 및 귀족층은 총인구의 3%에 불과했지만 의원 수는 평민과 동일했다. 이에 평민 대표들은 6월 17일에 자신들을 “국민의회”로 선언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평등의 가치가 정치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절대 왕권을 갖고 있던 루이 16세와 지배계급은 당연히 국민의회에 반대하며 전통적인 삼부회의를 지지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회는 테니스 코트였던 ‘죄드폼(Jeu de Paume)’에 모여 프랑스의 헌법이 개정될 때까지 해산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6월 20일의 일이다. ‘죄드폼’은 손바닥 놀이라는 의미로, 후에 라켓이 도입되면서 테니스로 변했다.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여하튼 이곳에서 이루어진 소위 테니스 코트 서약은 왕정에 대한 본격적 도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 도화선에 불을 댕긴 것은 루이 16세의 잘못된 대응이었고, 이는 결국 모두가 피 흘리는 대혁명으로 이어졌다. 루이 16세는 평민의 편에서 국민의회를 옹호하던 각료를 경질했고, 여기에 분노하는 파리 시민들을 압박하기 위해 왕실 군대를 배치했다. 시민들은 민병대를 조직해 군에 저항하며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무기를 탈취했다. 크게 번진 횃불로 절대 왕정은 무너지고 새로운 공화정 체제가 수립되었다. 루이 16세는 공포정치를 주도하던 혁명정부에 의해 1793년 1월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관과 인권 사상은 근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었고, 그 후 전 세계 많은 국가 헌법의 바탕이 되었다. 이렇게 엄청난 사회 변화가 서구에서 일고 있을 이 무렵, 우리 조선에서는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당시 조선은 정조 임금의 시대였다. 정조는 미국이 독립하던 1776년에 즉위해서 1800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세계 도처에서 혁명이 일고 있던 격변의 시기에 조선을 통치한 절대 군주다. 일반적으로 정조는 영조를 이어 조선의 중흥기(中興期)를 이끌었던 학자적인 지도자로 높게 평가받는 임금이다.
조선 시대에 정치 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뀐 혁명은 물론 없었다. 그러나 권력을 교체한 ‘반정(反正)’, 즉 올바름으로 되돌아간다는 일은 여러 번 있었다. 잘 알려진 중종반정(中宗反正)이나 인조반정(仁祖反正)은 폭정이나 권력 남용 등에 저항해서 연산군과 광해군을 각각 몰아낸 일이다. 하지만 이런 반정은 궁극적으로 지배계층 내부의 권력 투쟁이었을 뿐이다. 임금이 바뀌면서 사회 변화도 모색되긴 했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권력자들이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해 올바름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일에 더 큰 비중이 있었다.
정조 역시 새로움을 모색하는 일과는 거리가 먼 반정을 이끈 주인공이다. 문체반정(文體反正)은 1792년에 정조가 선포한 정책인데, 모든 학문에서 유교 경전에 기초한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문장, 즉 고문(古文)으로의 복귀를 강제한 일이다. 정조는 유교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결국은 성리학을 제외한 모든 학문을 억압했다. 당연히 당시 밀려들어 오던 부국강병을 위한 실학은 금지되었다. 신학문과 신문화는 배척되었고 사상의 자유는 옥죄어졌다. 이러한 문체반정은 결국 한 세기 후 조선이 몰락하는 근본 원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 우리가 흔히 개혁군주라 칭하는 정조가 스스로 권력 강화를 위해 택한 반정의 결과다.
새로운 디지털 문명이 열리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는 많은 분야에서 개혁과 혁신이 절실하다. 이는 한쪽이 피 흘려야 하는 정치적 혁명이 아니다. 관습과 전통을 바꾸는 개혁은 모두가 함께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를 주도해야 할 우리 정치는 명분을 앞세우며 또 다른 반정에, 즉 권력 투쟁에만 몰입하고 있는 듯싶다. 2022년 3월 대통령선거 당선자 확정 직후, 이재명 후보는 당선인께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런데 요즘처럼 탄핵을 다반사(茶飯事)로 내세우면 어떻게 통합이 가능할까? 그리고 윤석열 당선자는 “국민과 함께 통합과 번영의 나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모두가 초심이었던 국민통합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기원한다. 이는 대한민국 미래가 걸려 있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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