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서 단단한 예술가의 일상[김민의 영감 한 스푼]
취재 현장에서 작가 본인은 물론 큐레이터, 혹은 과거 작가와 일했던 스튜디오 관계자나 지인을 만나면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곤 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고군분투하며 때론 초라하기까지 한 일상을 알면 예술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꿋꿋하게 버틴다
로젠퀴스트는 앤디 워홀과 달리 빌보드 화가 출신으로 그림에 집중하고 상징과 은유를 활용해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표현이 없어 덜 주목받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팝아트’라는 타이틀보다 회화 자체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는데요. 코벳은 그런 시대 변화에 관한 로젠퀴스트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어느 날 제임스가 1950, 1960년대 미술 잡지 한 더미를 가져와 책상에 턱 놓았어요. 그 잡지들을 한 장씩 넘기며 보이는 예술가마다 손가락으로 가리켰죠. 그러면서 “처음 보는 작가”, “이 사람도 몰라”, “피카소는 알지”, “이 작가도 처음”, “모르는 작가”라며 몇 권을 계속 넘기더군요. 미디어에는 수많은 작가가 언급되지만 그중 살아남는 건 일부라는 이야기죠.”
로젠퀴스트는 끊임없이 변하는 동시대의 반응에 흔들리지 말고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충실하면 언젠가는 때를 만나 빛을 볼 날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최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대형 작품이 새롭게 소장되며 미국의 중요한 작가로 재평가를 받습니다.
생각만큼 화려하지 않다
‘노마디즘 예술가’로 불리는 김주영 작가는 최근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월요살롱’에서 1980년대에 교수직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났을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운동화와 가방만 들고 떠난 김 작가는 파리 대학에 등록하고, 그곳에서 그림 그리기 방법론을 떠나 자유로운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의에 감명받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공부하고 싶어 무작정 찾아가 수업을 듣게 해달라고 졸랐던 조그마한 철학 교수는 질 들뢰즈. 동양에서 온 학생이 간절해 보였는지 들뢰즈는 그를 받아주었고, 프랑스어도 제대로 못 했던 작가는 들리는 단어를 받아 적고 나중에 책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며 적응해 나갔습니다.
작업실은 재건축으로 철거가 예정된 빈 건물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나누어 썼죠. 그래도 한국에선 검은색을 즐겨 쓰는 그녀의 작품을 ‘어둡고 부정적’이라고만 했는데, 프랑스 미술계의 사뭇 다른 반응과 수상, 레지던시 입주 등 성과에 공부와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귀국하니 너무나 캐주얼한 자신의 복장과 달리 프랑스 유학 간 친구를 만난다고 귀부인처럼 꾸미고 온 친구들 앞에서 ‘예술가의 현실과 일반적 삶의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라는 고민이 들었다고 합니다.
초라할 만큼 파고든다
우리의 상상보다 예술가의 삶은 덜 우아하고 때로는 초라하기까지 합니다. 한국을 찾은 프랜시스 모리스 테이트 모던 명예관장은 루이스 부르주아가 “함께 일하기에는 무서운 사람”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들지 않는 말을 하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가 잠시 뒤엔 한없이 다정한,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었다고요.
그런 부르주아는 언제나 자신이 어릴 적 겪었던 트라우마와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작업의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모리스는 “부르주아가 예술 작업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하려 했지만, (좋은 작품을 위해서) 그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집중하며 보통 사람이라면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워서 외면할 문제들을 훌륭한 작가들은 깊이 파고들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예술가들은 저마다 가진 현실의 문제와 그것이 주는 불안을 끌어안고 거기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초라함, 불안, 허무를 정면으로 파고들어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 좋은 예술 작품이 관객을 위로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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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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