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열심히 한다고 안 되는 인생, 공자를 보라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의 오십 대는 신산스러웠다. 그의 벼슬길은 번번이 막혔다. 주변의 경계와 시기 탓이었다. 나이 오십 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조국 노(魯)나라 도읍의 장관 자리에 올랐다. 공자의 능력은 매우 뛰어났다. 임용된 지 1년 만에 주변 나라들이 모두 그의 다스림을 본받을 정도였다. 고속 승진을 거듭한 그는 사공(司空)이 됐다가, 다시 대사구(大司寇)로, 마침내 노나라 재상의 자리까지 거머쥐었다. 공자의 나이 56살 때 일이다.
뒤늦게 오른 벼슬길, 짧았던 관직 생활
그가 다스린 지 3개월 만에 노나라에서는 바가지를 씌우던 상인이 사라졌다. 치안도 안정됐고 관리들이 나라 밖으로 나가는 물자를 허가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만큼 노나라의 형편이 좋아졌다. 하지만 공자 인생의 꽃길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웃 나라에서 그를 끌어내리기 위해 정치공작을 펼친 탓이었다. 공자는 허망하게 관직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무려 14년 동안 자기의 뜻을 펼칠 만한 나라를 찾아 천하를 떠돌기만 했다. 어떤 곳에서도 그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어떤 곳이라도 좋다. 내게 정치를 맡겨준다면 1년 동안 나라의 기초를 놓고, 3년 만에 국가를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 위(衛)나라에서 내뱉은 공자의 한탄이다.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에 조급해하는 장년 남자의 조급함이 느껴진다. 68살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그는 마음을 내려놓고 고향 노나라로 돌아온다. 남은 생애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보냈다. 경력으로만 보자면, 공자는 성공보다 실패한 삶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지우학·志于學). 서른에 삶을 오롯이 세웠으며(이립·而立), 마흔 살에 이르러 미혹됨이 없어졌다(불혹·不惑). 쉰에 천명을 깨달았고(지천명·知天命), 예순에는 무슨 말을 들어도 화가 나지 않게 되었으며(이순·耳順), 일흔에 이르자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경우에서 벗어나는 일이 사라졌다(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칠십에 이른 공자가 스스로 정리한 자신의 한평생이다. 여기서 실패자의 후회나 아쉬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부단히 성장하며 무르익은 ‘좋은 삶’으로 다가올 뿐이다. 일단 인생 전반부는 우리가 잘 살았다고 여기는 표준 인생 진도표 그 자체다. 십 대 때 열심히 공부했고, 서른 살에 삶의 터전을 닦았으며 자기 분야에서 우뚝 서기 위해 잘 버텨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오십 이후에는 당연히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경지에 다다라야 하지 않을까?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것
그러나 오십 줄에 접어든 이들은 안다. 세상사는 나만 열심히 한다고 잘되지 않는다. 아무리 아득바득해도 스러져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현실에 좌절해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버리는 이가 한둘이던가. 승진에서 밀려서, 정리해고를 당해서, 사업이 실패해서 주눅 들고 움츠러든 중년이 얼마나 많은지 떠올려보라.
공자는 달랐다. 그는 뜻이 꺾이는 과정 또한 ‘하늘의 뜻’이라며 곱씹었을 뿐이다. 사람은 성공을 통해서 배우지 않는다. 패배의 고통을 통해 겸손을 익히고 부족한 점을 다듬으며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다. 시련을 겪은 뒤 어떤 이는 깊은 이해심과 포용력을 갖춘 인격으로 나아간다. 반면, 어떤 자들은 상처를 곱씹으며 성품이 더욱 강퍅하고 거칠게 굳어질 뿐이다. 삶에서 꺾임과 좌절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를 트라우마로 아파하기만 하느냐, 성장통으로 여기며 삶을 아름답게 가꾸느냐는 인생 후반부를 가르는 변곡점이다.
이 점에서 공자는 우리에게 훌륭한 롤모델이 될 만하다. 한계에 부딪힌 공자는 하늘이 허락한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마침내 받아들였다. 그리고 어떤 일에도 좀처럼 화가 나지 않는 경지로, 마침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까지 나아갔다. 세상사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라도 노력하면 좋은 인품을 갖출 수 있다. 공자는 이를 자기 삶으로 보여줬다.
공자의 삶이 최상이라는 설명에 이렇게 묻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거 그냥 인생 패배자의 ‘정신 승리’ 아니에요?” 그렇지 않다. 공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다. 서른다섯에 그는 마침내 제(齊)나라 군주의 눈에 들었다. 면담 자리에서 군주가 물었다.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오?” 공자가 당당하게 답한다.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식은 자식다우면 됩니다.”(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당연한 말이다. 그렇지만 그의 시대에는 이 지당한 말이 특별했다. 온갖 꼼수와 편법이 판을 치던 혼란기 아니었던가. 공자는 예법 전문가답게 예의를 갖추며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맺고, 여기에 맞추어 모두가 마땅하고 정당하게 처신한다면 천하가 조화롭게 굴러가리라 믿었다. 실제로 그는 이렇게 세상을 바로잡았다.
“자네가 파견되는 지방은 거친 사람이 많아 다스리기 쉽지 않아. 내 말을 명심하게. 늘 공경하는 태도로 대하시게나. 그러면 난폭한 이들도 반드시 따라올걸세. 너그럽고 공정한 자세를 지키면 백성도 당연히 그대를 따를 테고. 이 두 가지로 민심을 다독인다면 자네는 우러름을 받게 될 거야.” 관리가 되어 떠나는 제자 자로(子路)에게 공자가 해준 충고다. 공자의 처세술도 이와 같았다.
최선을 다하며 남을 배려하는 삶
그는 제자에게 이렇게도 말한다. “나의 길은 하나로 꿰어져 있다(일이관지·一以貫之). 세상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나는 지금까지 내가 가야 할 그 길을 일관되게 걸어왔다. 그 길을 두 글자로 간추리자면 충(忠)과 서(恕)다.”
‘충’(忠)은 무엇을 하건 오롯이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서’(恕)란 내가 바라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다. 공자는 평생 ‘서’를 실천하려 노력했다고 거듭 강조하기까지 한다. 한마디로, 그는 ‘성실하고 경우 바른 사람’이었다. 이런 태도로 사는 이들은 윗사람의 눈에 들기 마련이다. 너무나 존경스럽기에 아랫사람들도 저절로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겠다. 이렇듯 공자에게는 출세하기 위한 처세술과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는 방법이 똑같았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너무나 잘 통하는 곳이다. 맑고 고운 이와 경쟁하는 자들은 그를 질투하고 시기한다.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이 그이에게 쏠리는 탓이다. 그래서 온갖 뒷말과 험담으로 그를 깎아내린다. 심지어 공자를 쓰고 싶은 군주들까지 그를 경계했다. 다른 신하들의 반발이 저어됐을뿐더러, 공자가 자신보다 더 인정받고 주목받는 현실 또한 마음 편치 않았다. 공자가 오십이 되도록 주요 관직에 오르지 못했던 이유, 절정의 행정 능력을 보이고도 이내 밀려나 오랫동안 세상을 떠돌아야 했던 까닭이다. 공자는 번번이 기회를 놓쳤고 애써 얻은 자리에서도 밀려났다. 어떨 때는 올곧지 못한 자리 제안에 마음이 흔들리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 모두를 겪으며 하늘의 뜻을 깨달아갔다. 진정한 지혜는 느낄 것 다 느끼고, 겪어야 할 것을 다 겪으며 자라나는 법이다. 공자도 그랬다.
“훌륭한 농부가 씨를 잘 뿌렸어도 반드시 좋은 수확을 얻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군자가 마음을 잘 닦아 세상을 다스릴 규범을 만든다 해도, 세상이 꼭 받아주지는 않는다.”
“스승님은 스승님의 길을 가셔야 합니다. 우리가 게을러 길을 닦지 않았다면 창피한 일입니다. 우리가 충분히 노력했는데도 등용되지 않는다면 되레 권력자들이 수치스러워해야 합니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외면받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군자에게는 자랑스러워할 일입니다.”
공자와 제자들, 특히 애제자 안회(顔回)와 나눈 대화다. 공자는 오십에 크게 꺾였지만, 이는 오히려 존경받는 성인(聖人)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그러니 치열하게 살았음에도 세상에서 밀려난 중년이여, 슬퍼할 이유가 없다. 그대는 이제 진정 내면을 닦아 좋은 사람이 될 또 다른 기회를 얻었을 따름이다.
오십은 군자가 되기 위해 시작하는 나이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세상이 나를 몰라주어도 화내지 않으면 군자라 할 만하지 않은가.”(학이시습지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불역군자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공자의 말씀을 정리한 <논어>의 유명한 첫 구절이다. 중년인 그대는 어떠한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공부하며 마음을 닦고 있는가? 오십은 인문학이 다가오는 나이다. 온화한 인품을 갖춰서 친구들이 절로 자신을 찾아오는가? 세상이 나를 몰라줘도, 이미 훌륭한 사람이 돼가기에 세상 평판에 신경 쓰지 않게 됐는가?
이 물음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면 그대의 인생은 희망적이다. 하늘의 뜻을 깨닫는 오십은 내면에 눈을 돌려 군자가 되기 위한 과정을 시작할 나이다. 이순(耳順)을 향해 나아가는 그대에게 응원을 보낸다.
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반백철학: 교사이자 철학박사인 안광복이 오십 대에게 철학을 처방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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