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외로워도 슬퍼도
우리집 나비는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가족들과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던 탓에, 분리불안이 심했습니다. 잠시라도 혼자 있는 날엔, 짖다가 울다가 급기야 토하고 쓰러지기까지 했습니다. 무리를 지어 사는 갯과 동물에게 난생처음 강요된 외로움은 그렇게 가혹한 것이었나 봅니다.
제가 쓰는 원장실 책상에 알 수 없는 명함이 100장도 넘게 있어 정리 중입니다. 아는 사람이 참 많네요. 이 명함의 주인들에게는 저 또한 ‘아는 사람’일 겁니다. 옆 건물 카페 사장님도 아는 사람이고, 앞집 편의점 사장님도 아는 사람, 매일 점심을 때우는 백반집 이모님은 친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 편이 되어, 도와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명함책을 뒤져보고, 전화 연락처를 끝까지 내려보아도 눈에 반짝하고 들어오는 이름은 없습니다. 저도 분리불안, 외롭습니다.
금융위기가 세상을 덮쳐, 모두가 꿈도 희망도 없었던 시절, 눈을 감고 상상하면 모두 이뤄질 것이고, 이미 이뤄진 듯 행동하면 그 모든 게 현실이 될 것이라는 유의 책들이 유행했습니다. 청년세대가 취업난에 허덕이고 3포세대, 4포세대 하는 말이 생겨날 즈음,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 했고, 원래가 힘든 시기이니 ‘노오력’이나 후회 없이 해보자는 유의 책들이 넘쳐났습니다. 시대에 따라, 가장 아픈 곳에 꼭 필요한 위로를 제공하는 콘텐츠들이 생산되는 때문일 겁니다. 요즘 들어 서점 혹은 방송이나 잡지에서, 외로움이란 단어가 눈에 띄게 흔해진 것을 보면, 현재의 우리들은 어지간히 외로운 시절을 살아내고 있나 봅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저자들이 외로움은 인간의 성숙을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 이야기하고, 자신과 마주할 소중한 기회라고 미화하고 있는 것은 아쉽습니다. 저의 짧은 소견이지만, 그들이 말하는 소위 신과 오롯이 홀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홀로 서서 행복할 수 있는 기회는 외로움이 아닌 ‘고독’ 정도로 번역해 우리가 힘들어하는 외로움과의 차이를 명확히 해주었다면, 더욱 좋았겠다는 생각입니다.
책 <외로움의 습격>에서 저자 김만권 교수는, 어려움을 호소할 곳이 없는 고립, 호소한들 도움 줄 곳이 없는 단절이 외로움의 원인이라 말합니다. 여기서의 외로움은 노자, 쇼펜하우어 등을 차용한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가치 있게 살기 위한 홀로 있는 능력’과는 전혀 다른 재앙입니다. 고독은 우리가 필요해 스스로 찾는 것인 반면, 외로움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닥쳐온 불행입니다. 이를 혼용해, 인간은 본디 홀로 살아가야 하고, 세상은 외로운 곳이니, 외로워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미성숙한 자신을 탓하라는 식의 역설은 악의적입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는 것이고 청춘은 아픈 게 당연하다 했던, 응원도 위로도 아닌 그 비아냥과 다름이 없습니다.
나비의 분리불안은 ‘언제든’ ‘반드시’ 가족들이 돌아온다는 믿음을 주는 훈련을 반복해 해결되었습니다. 개인의 외로움은 공동체의 책임입니다. 내가 어려움에 처하면 우리 공동체가 ‘언제든’ ‘반드시’ 손을 내밀 것이라는 믿음이 절실합니다. 장마가 한창입니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다 이내 물러가겠지요? 가을이 오면 외롭지 않은 우리 모두, 고독 한번 제대로 씹어보길 기대합니다.
김재윤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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