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저 바다의 기억

기자 2024. 7. 1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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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담 좋은 저술가 빌 브라이슨은 책 <바디>에서 인간의 몸이 59개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중 수소와 산소, 탄소, 질소, 칼슘과 인 등 6가지가 전체 원소의 99%를 점유한다. 무게로만 따지면 산소가 60%를 넘는다. 자연계에서 가장 가벼운 축에 속하는 산소와 수소 기체가 만나 무거운 액체인 물을 만들고 그 물이 우리 몸의 60% 넘게 차지하기 때문에 숫자로만 따지면 수소가 압도적으로 많다. 미량 원소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수소가 3억7500만개라고 치면 철은 2680개, 코발트는 1개, 요오드는 14개 존재한다. 하지만 숫자가 적다고 해서 이들 미량 원소를 무시할 수는 없다. 실제 인간의 체중을 고려하면 요오드의 양은 약 20㎎에 이르고 수도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화약 재료인 초석을 제조하느라 해초를 쓰던 프랑스 과학자 베르나르 쿠르투아는 재 때문에 구리 솥이 빨리 부식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태울 때 보랏빛이 도는 해초의 재를 분석하던 중 쿠르투아는 요오드를 찾아냈다. 1812년의 일이다. 바닷물에는 요오드가 ℓ당 60㎍ 정도지만 다시마에는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해수에 들어 있는 것보다 3만배나 많다.

요오드는 쉽게 전자(electron)를 내놓을 수 있어서 일찌감치 항산화제로 발탁되어 세포에 편입되었다고 진화생물학자들은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요오드는 식물과 곤충 같은 무척추동물은 물론이려니와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 모두에 존재한다. 게다가 캐나다의 과학자 수전 크로퍼드에 따르면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이 활성산소로부터 자신의 세포막을 보호하고자 요오드를 선택했다고 한다. 단세포 생명체인 세균에서도 요오드가 발견된다는 뜻이다. 이렇듯 요오드는 생명 역사 초기 시절 세포에 편입되었으리라 추측되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척추동물에서 요오드는 갑상선 호르몬 핵심 요소다. 이 호르몬의 일차적인 기능은 우리 몸의 대사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다. 우리가 평소보다 2배씩 먹는 양을 늘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 금방 체중이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버몬트 교도소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체중은 예상처럼 빠르게 늘지는 않았다. 먹는 양이 늘어남에 따라 기초대사율도 덩달아 높아졌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고 있을 때조차 우리가 쓰는 기본 에너지양은 전체 에너지양의 7할에 이른다. 물론 노동을 하거나 극한 운동을 하는 사람을 제외한 보통 현대인이 그렇다는 말이다. 과하게 먹으면 우리 몸은 남은 열량을 더 태우는 쪽으로 대사 방식을 바꿔버린다. 심장도 빨리 뛰고 열도 더 방출하는 식이다. 바로 갑상선 호르몬이 있기에 이런 대사 전환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요오드는 어떻게 우리 몸에 와서 호르몬이 되었을까? 놀랍게도 우리는 그 답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갑상선 호르몬이 하는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그 까닭을 추정해볼 뿐이다. 생물학자들은 요오드가 주변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의 많고 적음을 판단할 믿을 만한 지표라는 가설을 좋아한다. 다시마, 미역 또는 감태로 이루어진 해조류 숲을 품에 안은 생태계의 풍요로움이 곧 에너지 가용성의 훌륭한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이 가설은 힘을 얻었다. 바다숲은 해양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바다 생태계의 듬직한 토대이다. 숲에 모여든 해양 생물은 해조류를 먹고 알을 낳으며 포식자로부터 가뿐히 몸을 숨긴다. 게다가 이곳은 요오드도 풍부하다. 오랜 지질학적 시간을 지나는 동안 생명체들은 요오드를 주변에 영양소가 풍부하다는 신호로 해석하게 되었다. 사실 먹잇감을 단서로 계절을 파악하고 도토리를 잔뜩 먹어 동면 준비를 갈무리하는 곰의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겨울잠에 든 곰은 갑상선 기능이 떨어진 사람처럼 기초대사율이 줄고 맥박도 느려지면서 체온을 떨어뜨린다.

요오드와 달리 나트륨은 해양에 다량 존재하지만 먹을 것이 있다는 정보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혈액이나 세포 밖 용액에 가장 풍부한 나트륨 이온은 삼투압을 조절하여 세포 부피를 유지하고 신경세포에서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무척 중요한 역할을 맡지만 결코 호르몬 성분이 되지 못했다.

먹이가 풍부한지 그렇지 않은지, 환경 변화에 발맞춰 지방을 저장할지 아니면 저장한 포도당을 꺼내 쓸지 결정하는 일은 번식과 생존에 필수적이다. 영양소로서 요오드는 호르몬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한 유일한 원소이다. 우리 몸에는 저 바다의 기억이 살아 숨 쉰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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