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법 테두리 바깥으로 쫓아내는데…가사노동자 ‘노동법 적용’ 추진, 앞서가는 일본
‘사각지대’ 개선 요구 목소리 커져
한국은 ‘최저임금 미만’ 강조하며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 공식화
일본 정부가 개별 가정과 직접 계약을 맺고 일하는 가사노동자에게 노동기준법(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개별 가사노동자의 노동권을 전보다 두껍게 보호하고 안전망을 촘촘하게 짜겠다는 취지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추진하는 한국 정부와 대조된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달 27일 열린 노동기준법제연구회에서 그동안 노동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던 가사노동자에 대한 법 적용을 검토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개별 가사노동자 보호를 위한 ‘가사노동자(도우미) 고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데 이은 후속 조치다.
현재 일본 노동기준법은 개별 가정에 직접고용된 가사노동자는 법적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노동기준법 116조2항은 “이 법률은 동거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및 가사 사용인(개별 가구)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개별 가사노동자는 휴일, 노동시간, 연차유급휴가, 산업재해보상 등 노동자의 권리를 하나도 보장받지 못한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정부로부터 인증받은 서비스 제공기관(인증기관)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가사노동자에 한해 최저임금, 사회보험 등을 보장하고 있을 뿐 개별 가사노동자는 최저임금법·근로기준법 적용에서 배제하고 있다.
일본이 개별 가사노동자를 노동기준법에서 제외한 배경은 ‘가정 내 일에 공권력이 개입해선 안 된다’ ‘사용자의 사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가사노동은 통상의 노동과 다르다’고 보는 사회적 인식에 있다.
여론이 달라진 건 2015년 도쿄도 후추(府中)시 여성 가사노동자 A씨(당시 68세)의 돌연사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A씨는 2015년 후추시의 저온 사우나 시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뒤 숨졌다. 해당 사건의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당시 A씨는 일주일간 야간 근무를 했는데, 휴식시간은 자정에서 오전 5시까지에 불과했다. 휴식시간에도 돌봄 노인의 침대 옆에서 이불을 깔고 잠을 잤다. 유족은 업무 중 과로에 따른 산업재해로 판단해 산재보험급여 지급을 신청했지만 가사노동자에게는 노동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받지 못했다.
여론이 들끓자 2022년 후생노동성은 노동기준법 개정 논의에 착수했다. 지난해 일본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JILPT)가 후생노동성의 의뢰로 실시한 개별 가사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개별 가사노동자의 98.8%는 여성으로 70대가 50.1%, 60대가 27.4%를 차지했다. 응답자의 83.8%는 출퇴근, 8.9%는 해당 가정에서 거주하며 일했다.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5시간 이상 10시간 미만’이 23.0%, ‘10시간 이상’이 13.2%였다. 응답자의 47.1%는 정해진 휴식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미리 정해진 휴게시간과 근로시간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63.3%에 달했다. 응답자의 19.9%가 오후 10시 이후에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법 개정 요구 여론은 더 확산됐다.
노동법의 구멍을 메우려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노동법 사각지대에 가사노동자를 밀어넣고 있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은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에서 외국인 유학생·결혼이민자 가족을 최저임금 미만의 가사노동자로 쓰자고 제안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을 토대로 정부는 지난달 저출생 정책 중 하나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 도입을 공식화했다. 개인 간 사적 계약 형태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해 최저임금법보다 낮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 각 가정의 비용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다. 노동법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정부가 양산하려는 셈이다.
도쿄 | 반기웅 일본 순회특파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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