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오늘은 아니라도, 내일은 이길 수 있어요”

배시은 기자 2024. 7. 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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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혼 법제화’ 태국 활동가
한국에 전하는 메시지
마챠 포르닌(오른쪽)과 그의 가족이 지난달 18일 태국 상원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결혼평등법이 통과된 후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본인 제공
14년 전 동성파트너 만나 딸 입양
“젊은층 지지로 20년 투쟁 결실
11월 결혼식은 승리에 대한 축하”
류민희 ‘모두의결혼’ 활동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 앞
한국도 태국처럼 응답할 시간”

태국 상원 의회가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결혼평등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태국은 아시아에서 동성혼을 법제화한 세 번째 나라가 됐다. 법안이 왕실 승인을 받으면 연말쯤 동성부부의 혼인신고가 가능해진다.

20여년간 여성·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해온 마챠 포르닌은 이 법이 통과되던 날 동성 배우자와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포르닌은 “아내가 가장 많이 울었다. 우리가 원하는 순간이 와서 행복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지난 2일 한국에서 동성혼 법제화 캠페인을 하고 있는 류민희 모두의결혼 활동가와 함께 포르닌을 화상으로 만났다.

포르닌은 14년 전 동성 파트너와 만났고, 12년 전 딸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 오랜 기간 함께 살았지만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포르닌은 “드디어 우리 가족이 함께 미래를 꾸릴 수 있게 됐다”며 “우리는 사고가 났을 때 보호자로서 치료에 대해 동의할 수 없었고, 재산을 함께 관리할 수도 없는 등 여러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통과된 태국의 결혼평등법은 자녀 입양이나 상속·세금 등 모든 법적 권리를 동성 커플에게 동일하게 보장했다.

태국은 비교적 성소수자 친화적 국가지만 성소수자 권리에 관한 입법은 더뎠다. 결혼평등법도 20여년의 논의 끝에 통과됐다. 2000년대 들어 군부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는 등 불안정한 정치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포르닌은 “태국에서 성소수자 문제를 두고 투쟁하는 것은 민주주의 문제와도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젊은층의 지지에 힘입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포르닌은 “젊은이들은 평등의 가치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다”며 “활동가들도 입법을 위해 여러 정당과 함께 결혼평등법에 대한 젊은 세대의 지지를 호소했다”고 말했다.

류 활동가는 포르닌에게 한국의 상황을 전했다. 류씨는 “한국에서도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전 연령층에서 동성혼 법제화에 관한 지지가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20대(64%)와 30대(53%)의 절반 이상이 동성혼 법제화를 지지했다.

포르닌과 류 활동가는 태국의 사례가 다른 나라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란 희망도 밝혔다. 포르닌은 “앞서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무엇이 옳다고 말해주는 것은 중요하다”며 “태국의 입법 이후 싱가포르,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나라에서는 동성혼 법제화에 관한 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류 활동가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에 태국이 응답한 것처럼 한국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태국에서 결혼평등법이 통과됐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과제도 있다. 포르닌은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무슬림·장애 정체성 등 다른 소수자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여러 겹의 차별에 직면하고 있다”며 “모든 성소수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이들을 보호하는 법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포르닌은 결혼평등법이 시행될 예정인 오는 11월 결혼식을 할 예정이다. 그는 “우리의 승리에 대한 축하가 될 것”이라며 “결혼평등법은 앞으로 미래의 성소수자 가족들에게 큰 의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르닌은 한국의 시민들에게 “오늘이 아니라도 내일은 이길 수 있다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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