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학점도 진급’ 의대생 특혜마저 무용지물…정부, 남은 대책이 없다
“학사 원칙 신뢰 무너뜨려” 지적
‘특혜’에도 의대생·전공의 요지부동
‘의대 증원 재검토’ 목소리만 커져
정부가 의대생들의 유급 결정을 내년 2월까지 미룰 수 있고 일부 과목에서 낙제점(F학점)을 받더라도 다음 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전공의에 이어 의대생에게도 일단 돌아오기만 하면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며 돌아오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인데, 전공의는 물론 의대생들의 복귀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유급기준 대폭 완화·국시 추가실시 검토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학년도 의과대학 학사 탄력운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현재 의대는 수업일수의 3분의1이나 4분의1 이상 결석하면 낙제점을 부여하고 한 과목에서라도 낙제점을 받으면 유급시키는데, 올해에 한해 일부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아도 유급되지 않도록 특례 조치를 마련하도록 했다. 특히 유급될 경우 내년 신입생과 함께 수업을 들어 피해가 클 것으로 보이는 예과 1학년은 최소한의 기준만 충족하면 진급하도록 했다. 예컨대 ‘전공 필수과목 등을 이수한 자’는 의학과로 진학하게 하는 식이다.
이와 맞물려 올해 교육과정 운영을 ‘학기제’ 대신 ‘학년제’로 전환해 운영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되면 대학의 성적 처리 기한은 1학기 말이 아닌 올해 학년도 말인 내년 2월 말로 연기된다. 기존에는 학기 성적을 기준으로 학기말 유급 여부를 판단하는데, 올해에는 학년 말까지 수업을 듣고 1년 간의 성적을 종합해 평가를 하는 게 가능해진다. 학교별 여건에 따라 ‘I(Incomplete)학점 제도’도 도입할 수 있다. I학점 제도는 특정 과목의 성적을 미완의 학점으로 남겨두고 정해진 기간에 미비한 내용을 보완하면 그 결과를 반영해 성적을 입력하는 제도다.
교육부는 또 본과 4학년들의 복귀를 독려하기 위해 ‘의사 국가시험(국시)’ 추가 실시를 적극 검토한다. 앞서, ‘의과대학 정상화를 위한 총장협의회’는 지난달 교육부에 국시 일정을 조정하거나 별도 응시 기회를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다만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특혜에도 의대생·전공의는 ‘요지부동’
이런 조치가 특혜라는 지적에 이 부총리는 “특혜를 주기 위한 게 아닌 공익을 위한 조치”라고 잘라말했다. 하지만 학사운영의 원칙이 훼손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교육정책학)는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학사 원칙에 자체에 대한 신뢰성이 무너지는 후과를 치를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조치에도 의대생들의 복귀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대생들은 1학기가량 밀린 학습량을 단숨에 따라잡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전공의들의 복귀 없이 선뜻 학교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생각에 복귀를 결정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수도권 의대 본과에 재학 중인 학생은 한겨레에 “거의 매주 시험을 보는 본과 1∼2학년들은 방학도 없이, 그 많은 수업과 시험을 단기간에 치러야 한다. 그것을 감당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여서 자포자기한 학생들도 많다”고 말했다. 비수도권 의대 본과 재학생은 “전공의들이 돌아가지 않은 상태에서 복귀하는 게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전공의들이 없으면 의대생들의 임상 실습도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쓸 카드 다 쓴 정부
정부가 꺼낼 수 있는 전공의와 의대생 복귀 대책은 사실상 모두 나왔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날 “전공의 복귀 대책이 더 나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기대한 전공의·의대생 복귀는 보이지 않는 채 34개 의대 교수들이 “의대 증원 재검토”를 지난 9일 요구하는 등 기존 목소리만 더 커지는 분위기다.
정부가 실효성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대책만 소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형준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집단 유급이 발생하면 내년 의대 교육이 불가능해지니까 (유급 기준 완화 등을) 검토할 순 있지만, 그건 의대생이 돌아온 다음에 할 이야기”라며 “이렇게 거꾸로 된 대책만 내놓으면 오히려 전공의나 의대생에게 ‘끝까지 버티면 된다’ 하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전공의가 돌아오느냐에 목 메기보다 전공의가 없어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의료체계를 만드는 일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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