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의 꿈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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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는 인간과 동격이 될까.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 할 수 있지만, 기술 발전과 발맞춰 오래전부터 우리는 이 문제에 꽤 진지했다.
1995년 극장판으로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는 기계 몸체에 인간의 뇌가 이식된 사이보그가 특수부대 요원으로 등장한다.
"당신 몸 어디까지가 오리지널인 거야?"라는 질문이 유효한 세상에서 최첨단의 기계-유기체는 인간과 기계 속성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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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기계는 인간과 동격이 될까.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 할 수 있지만, 기술 발전과 발맞춰 오래전부터 우리는 이 문제에 꽤 진지했다. 티브이(TV) 애니메이션 계보만 훑어봐도 1972년의 마징가 제트는 “무쇠로 만든 인조인간 로보트”라 불렸고, 1976년의 로보트 태권브이는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였다. 일본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은 1980년대 번역판에서 “우주 소년”으로 인격을 부여받았다. 이후 컴퓨터라는 기계가 인공두뇌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면서 관계는 복잡미묘해졌다.
1995년 극장판으로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는 기계 몸체에 인간의 뇌가 이식된 사이보그가 특수부대 요원으로 등장한다. 배경은 인간 장기를 원하는 만큼 기계장치로 대체해 신체 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머지않은 미래다. “당신 몸 어디까지가 오리지널인 거야?”라는 질문이 유효한 세상에서 최첨단의 기계-유기체는 인간과 기계 속성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한다. “뭘 근거로 나임을 믿어야 할까”란 사이보그 주인공의 읊조림은 영화의 주제를 관통한다.
공각기동대의 부제는 ‘껍데기 속 고스트’(ghost in the shell)다. 존재를 규명하는 철학사의 오랜 화두에서 빌린 개념으로, 근대의 문을 연 르네 데카르트(1596~1650)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찍이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규정하며 육체를 말소한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에 근대 이후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영국 철학자 길버트 라일(1900~1976)은 이를 ‘기계 속 유령’ 신화라고 꼬집었다. 기계 안에 정신이라는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는, 생명체의 몸과 마음은 분리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영화에서는 인간적인 속성이 고스트로 표현되는데, 이때의 고스트는 영혼이나 정신이라기보다 기억을 가진 존재다. 기억이 뇌에만 쌓이느냐 하면 경험과 함께 몸에 새겨진다. 현대미술이 신체 중심으로 전개돼 온 이유이기도 한데, 기술이 개입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생명체의 육체는 단지 껍데기가 아닌데, 기술시대의 인공 신체도 껍데기가 아닌지 묻게 되는 실재의 위기가 도래한 셈이다. 인간 모든 것이 정보화되는 디지털 세상에서 인간다움의 실체는 더욱 묘연해졌다.
새삼 인간됨을 묻게 된 건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전시 ‘영혼은 없고 껍데기만’을 보면서다. 프랑스 예술가 그룹이 1999년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구입해 ‘앤리’라는 이름을 지어준 뒤 3년간 작업한 작품 일부가 전시됐다. 그러니까 앤리는 여러 작품에서 데이터로 존재했던 가상 인물이다. 멜릭 오하니언의 디지털 영상 ‘앤리; 난 현실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에서 주황색 옷차림의 앤리는 게임프로그램을 실행시켜 터치스크린 속 자신의 이미지를 바라본다. 나비처럼 펄럭이는 게임 이미지를 쫓다 앤리는 잠에서 깨는데, 결말은 게임 속 앤리가 주황색 차림의 앤리 꿈을 꿨다는 내용이다.
옛날에 장주라는 이가 꿈에서 나비가 되어 훨훨 나는데 너무나 즐거워 자신이 장주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화들짝 깨어 도대체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되었는지 아니면 나비의 꿈에서 장주가 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는 장자의 호접몽을 떠올리게 한다. 인터넷 환경이 현실을 압도하는 오늘은 흡사 나비의 꿈 같다. 환영 같은 인터넷 게임이나 쇼핑에 빠진 와중에 과연 나는 가상과 현실 중 어디를 살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소셜미디어(SNS)를 헤매는 내가 껍데기뿐인 나의 허상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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