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는 ‘암수’와 같지 않다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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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미국 캔자스주에서 역사상 최초의 법안이 제정되었다.
'여성권리장전'으로 지칭되는 이 법안에서 여자(female)란 '난자를 생산하기 위한 생물학적 생식기를 가진 개인'이며 남자(male)는 '난자를 수정하기 위한 생물학적 생식기를 가진 개인'으로 규정된다.
'남성과 여성은 개인의 불변적인 생물학적 성별을 의미하고, 이는 생식기와 성염색체에 의해서만 객관적으로 결정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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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2023년 4월, 미국 캔자스주에서 역사상 최초의 법안이 제정되었다. ‘여성권리장전’으로 지칭되는 이 법안에서 여자(female)란 ‘난자를 생산하기 위한 생물학적 생식기를 가진 개인’이며 남자(male)는 ‘난자를 수정하기 위한 생물학적 생식기를 가진 개인’으로 규정된다. 올 4월엔 앨라배마주도 비슷한 법을 만들었다. 여자의 정의는 ‘발달적 이상이나 사고가 없었다면 어느 시점에서 난자를 생성하는 생식 시스템을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었거나, 가질 것이거나, 가질 개인’이다. 조지아주는 제정엔 실패했지만 여자를 ‘어느 시점에서 수정을 위하여 난자를 생산, 운반, 이용하는 생식계를 가진 자’라 명시했었다.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2023년 초, 서울시의회에서 ‘학교구성원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안)’ 제정을 시도했던 걸 떠올려보자. ‘남성과 여성은 개인의 불변적인 생물학적 성별을 의미하고, 이는 생식기와 성염색체에 의해서만 객관적으로 결정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보다 더 어이없는 ‘성관계는 혼인 관계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조항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난을 받고 제정이 무산되었지만 그렇다고 사라진 건 아니다. 지난 6월25일, 국민의힘 소속 황유정 시의원은 ‘서울시 성평등 기본조례’를 굳이 ‘서울시 양성평등 기본조례’로 바꾸었다. 황 의원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법은 원칙적으로 생물학적인 성을 근거로 만들어지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이 세상엔 정소와 난소를 하나씩 갖고 태어난 사람도 있고, 남성(XY) 염색체와 자궁을 함께 가진 사람도 있다. 남녀 단 두 가지로 구분하는 건 오히려 사회이고 생물학적으론 성별을 두 개로만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 월경은 자궁과 난소의 기능 때문이겠지만, 오랫동안 여성이 진학·직업 선택·고용·승진·임금 등에서 차별을 받은 것은 생식기 탓이 아니다. 매달 피를 흘리는 여자는 고귀하지 않다는 편견과 여성의 일은 따로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1995년에 유엔이 제4차 세계여성대회를 열어서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평등한 삶을 지키기 위한 정책을 세울 때는 오류에 빠지기 쉬운 ‘섹스’ 대신 ‘젠더’라는 용어를 쓰자고 결의를 한 이유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보수 개신교계와 이에 기반한 정치인 일부는 ‘성평등’은 성소수자까지 포함하는 용어이므로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거라며 ‘투 섹스 이퀄리티’(two sex equality)라는 의미로 ‘양성평등’을 사용한다. 국회에서 성평등 삭제에 앞장서는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헌법 제36조에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라고 적혀 있다며 헌법에도 없는 성평등은 쓰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아전인수격이다. 헌법 36조의 ‘양성의 평등’은 축첩을 비롯 여성에게만 순결과 순종을 요구하고, 재산권과 상속 등에서 불이익을 주던 차별을 없앤다는 의미다. 그보다 헌법 제11조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에 따르면 성평등이 더 적합하다. 수컷이나 암컷은 남성, 여성과 동일한 단어가 아니다. ‘이성애자 시스젠더’만을 국민으로 삼고 ‘암수평등법’을 만들 순 없다. 이 시대의 퇴행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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