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AI 반도체 국가위원회 필요… 민·관·학계 모여 국가적 구상 그려야"
美 하버드 케네디스쿨서 반도체·AI 선임연구원으로 연구 지속해와
샘 올트만·일론 머스크·젠슨 황 3명이 주도… 국가적 관심 절실
박영선(사진)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에 대해 "인공지능(AI) 반도체 국가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여기에 민·관·학계 다 모여서 토론을 통한 국가적 구상을 그리지 않으면 전 세계적으로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박 전 장관은 9일 KBIZ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실에서 진행된 디지털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반도체·AI 전쟁은 국가 간 리그가 돼버렸기 때문에 각자도생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본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동안 정치권을 떠나있던 박영선 전 장관은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반도체·AI 분야에서 선임연구원으로 활발한 연구를 이어왔다.
지난해를 관통하는 단어를 고르라면 '미중갈등'과 '반도체'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박 전 장관은 "반도체 산업의 희망이 중소·벤처·스타트업 기업에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가 반도체 강국 및 주권국가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선 반도체 분야에서 메모리 이외에 패키징, 설계 및 디자인 분야를 강화해야 한다"며 "이 패키징 기술·설계에 있어선 대기업이 오롯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소·벤처·스타트업 기업들이 활발하게 대기업과 분업적 협력 형태를 갖춰야지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그 당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중소·벤처·스타트업 기업들과 반도체 설계 분야를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했었다"며 "그랬더니 SK하이닉스는 '우린 아직 그런 데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답변이 왔고, 삼성전자는 6개월 정도 계속 고민해보겠다고 하더니 아무 말이 없었다"고 당시 일화를 전했다.
박 전 장관은 "당시 손정의 회장이 운영하는 기업 '암'(ARM)은 저의 제안 후 다음날 바로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면서 "그 당시 10개 설계 회사를 선정해서 그 회사들이 '암'의 오픈 소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계속 투자를 했다. 그 회사들 중 성공한 게 리벨리온하고 퓨리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굉장히 아쉬운 건 그 당시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설계와 관련된 부분을 중소·벤처·스타트업 기업들과 교류를 했으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예를 들면 네이버의 경우 기업 내 자체 설계팀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이 중점적으로 개발하려는 분야가 로봇 AI 분야"라며 "네이버는 자체 설계팀이 있기 때문에 로봇 AI 쪽으로 살아날 여지가 있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어 "설계를 잘하기 위해선 '도메인 날리지'(Domain Knowledge·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와 IT 분야의 엔지니어링 즉 설계를 잘하는 두 조건이 만나야 가능한 일"이라며 "이 두 조건이 만나려면 그 분야에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업체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분야뿐 아니라 그 어떤 분야든지 중소·벤처·스타트업 기업들은 결국 대기업과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뜻"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저는 본격적이 AI시대에 중소·벤처·스타트업 기업들이 할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고 내다봤다.
그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 생존전략에서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소버린 AI'(Sovereign AI)를 꼽을 수 있다"며 "'소버린 AI'는 오픈 AI 중 하나인 챗 GPT나 구글의 제미나이(Gemini) 등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한 국가나 기업이 자신들에게 특화된 AI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니까 국가나 대기업은 소버린 AI를 제공해주고, 중소·벤처·스타트업 기업들은 여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 종합적인 그림은 어떤 한 특정 기업이 할 수는 없다. 반도체를 예로 들면 전력, 물, 인력문제 등 세 가지를 각각 어떻게 할 것인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R&D 투자를 많이 해도 그 돈을 허공에 다 날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최근 윤석열 정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표한 반도체 관련 정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박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는 지금 10GW 전력이 필요한 '용인 클러스터'를 준비하고 있지 않나"라며 "오는 8월쯤 세부적인 정책을 발표한다고는 했지만, 반도체 관련 전력문제 해결 방안이 상세히 나와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까지 나와 있는 정부의 계획을 보면, 반도체 전력문제를 LNG로 대체하겠다는 걸로 보인다"면서 "그런데 저는 이 반도체 전력문제와 관련해 '가격 경쟁력'에서 떨어지면 국민적 부담을 계속 안고 가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격 경쟁력'을 맞추기 위해 전기 값을 깎아주게 되면 그 전기 값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그는 반도체·AI 분야와 관련해 '생태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느 한 대기업이 전담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관점에서 저는 국가 산업단지격인 용인 클러스터를 현 정부가 선점한 것에 대해 비판 의식이 있다"며 "정부의 발표로 인해 용인 주변 땅값이 다 오르게 될 텐데, 그러면 생태계 구축이 더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나라 실정상 100%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으로 할 순 없다. 하지만 유럽에서 RE100을 쓰지 않으면 더 이상 수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나"라며 "반도체 전력문제와 관련된 현 정부의 상세한 포트폴리오 구성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왜 이게 문제가 되냐면 2027년이 되면 일본의 홋카이도 반도체 단지가 완성되고, 인텔의 독일 반도체 공장도 완성이 된다. 또 미국 내 각종 마이크론 공장들이 대부분 완성될 예정"이라며 "그때는 본격적인 국가 간 경쟁 체제로 들어가게 될 텐데 이 부분을 해소하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상당히 떨어질 것이라고 본다"고 우려했다.
박 전 장관은 "지금의 AI시대는 'AI 전쟁의 신'이라고 불리는 샘 올트만, 일론 머스크, 젠슨 황 등 3명의 기업인이 주도한다고 볼 수 있다"며 "여기에 대적할 수 있는 우리나라 기업 및 기업가를 대보라는 질문이 나오면 다들 선뜻 답을 못하지 않나. 우리가 지금 이런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AI 분야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권준영기자 kjykj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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