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칼럼] 국민의힘, 이러다가 다 죽습니다

노동일 2024. 7. 1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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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 뺨치는 與 전대
말초적 재미만 난무한 경기
위기대처 위한 비전 보여야
노동일 주필
"우리 모두 동지입니다. 내부에서 싸우다가 망할까 봐 결심했습니다. 이러다가 다 죽습니다.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다 뭉쳐도 버겁고, 무도한 상대가 있습니다." 지난 6월 2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원희룡 후보가 돌린 명함에 적힌 글이다. 당 대표가 되면 동지들과 함께 뭉쳐 버겁고 무도한 상대와 싸울 것을 다짐하는 출사표라 해석하고 싶다. 내부 싸움은 망하는 길이고, 다 죽는 길이라는 비장함도 엿보인다. 출마한 네 후보 모두 같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을 걸로 믿었다. 무기력한 여당에 이번 전대는 당 쇄신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누가 대표가 되는지는 그다음 문제일 것이다.

난장판, 진흙탕, 자해극, 막장드라마.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보도한 신문 제목이다. 언론이 나쁜 단어만 골라 쓸 리는 없다. 실제로 그런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나는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이번 전당대회에 나오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을 밝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른 후보를 지지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선거패배 책임론'이 쟁점이 되는 과거형 전대가 될 것을 우려해서였다. 정치경험 부족 등 한 후보에 대한 다른 지적은 부차적일 수 있다. '선거 패장' '자숙할 때' 등의 공세는 그래서 예상문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여당 내에서 벌이는 치졸한 싸움은 상상 이상이다. 다 죽는 길로, 마지막 기회마저 걷어차 버리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 '배신'의 정치. 익숙한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서 한 일갈이다. 결과가 어땠나. 배신은 심판했지만 집권당이 무너지고, 대통령이 탄핵되고, 보수세력이 자멸하는 방아쇠가 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기시감이 든다. '읽씹' 논란. 문자를 읽고 씹었다, 답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생경하고 욕설처럼 들려서 민망하기까지 한 논란은 일파만파 진행형이다. 명품백 관련 사과 뜻을 밝힌 김건희 여사의 문자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답하지 않아서 사과할 기회를 놓쳤고, 승리 기회를 무산시켰다는 공격이다.

인간적으로나, 정무적 측면에서 한 후보의 대응은 아쉽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김 여사가 한 후보의 허락이 없어 사과를 못한 것인가? '김 여사는 피해자'라며 사과를 극렬히 반대한 건 이른바 친윤들이다. 이제 와서 '해당행위' '당무개입'이라는 멱살잡이는 자해극에 불과하다. 일시적으로 관객의 흥미를 끌어도 결국 수준 낮은 경기라는 사실을 선수들만 모를 뿐이다. 동지는커녕 적 이상으로 증오감과 삿대질이 난무한다. 총선에서, 원내에서 야당을 상대로 이처럼 치열하게 싸웠다면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민주당은 오는 19일과 26일 대통령 탄핵 청원 관련 청문회계획서를 강행 처리했다. 국회법상 국민청원에 따른 청문회라는 포장을 벗기면 이재명 전 대표에 대한 궁극적 방탄이 탄핵임을 노골화하는 것이다. 법리적·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여당은 퇴장 외에 막을 힘이 없다. "다 뭉쳐도 버겁고 무도한 상대"임을 확인할 뿐이다. 탄핵으로 정권을 뒤엎으려는 쓰나미가 시작된 셈이다. 문제는 위기를 인식도 못한 채 내부 총싸움에 여념이 없는 국민의힘이다. 쓰나미가 덮칠 때 궤멸되는 것은 여권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더 큰 문제다.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야당이 포퓰리즘적 법률을 마구잡이로 통과시켜도 대통령 거부권으로 막고 있는 형편이다. 극적 반전이 없는 이상 국민의힘은 다음 지방선거, 대선 패배 가능성이 크다. 입법과 행정을 장악한 정치세력의 독주를 막을 합법적인 방법은 없다. 그럴 때 당대표 노릇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들 전당대회 이후를 걱정한다. '어대한'이든 역전승이든 더 큰 분열의 길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늦지 않았다. 오늘 토론회부터는 대표로서 본인의 비전으로 승부해야 한다. 계속 밀어닥칠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지도 주요 의제가 되어야 한다. 그에 앞서 맨 앞에 인용한 글을 모든 후보가 함께 낭독해 보는 건 어떤지 제안하고 싶다.

dinoh7869@fnnews.com 노동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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