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싱하이밍 대사의 말

손제민 기자 2024. 7. 1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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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하이밍(邢海明) 대사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8명의 주한중국대사 중 한국인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외교관이다. 지난해 6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서 했던 ‘베팅’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당시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베팅(내기 도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라며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고 말했다.

공공연한 중국의 속내였지만, 그걸 외교관이 주재국 야당 대표를 앞에 두고 말한 것은 무례하게 여겨졌다. 중국 관리들에게서 가끔 엿보이는 ‘대국·소국’ 관념이 묻어났을 뿐 아니라, ‘타당한 지적이라도 그 판단은 우리가 한다’고 믿는 한국인들로서도 불쾌한 비외교적인 말이었다.

며칠 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싱 대사를 구한말 내정에 간섭했던 청국 관리 위안스카이에 비유했다. 사실상 싱 대사 교체 요구나 다름없었지만, 중국 정부는 싱 대사를 두둔하며 양국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0일 싱 대사가 4년반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다. 후임자를 정하지 않은 가운데 갑자기 나온 인사 조치였다. 그사이 한·중 정상이 관계 복원 의지를 확인한 데다, 내년 가을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참석차 시진핑 주석이 방한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간을 갖고 우호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싱 대사의 존재감이 두드러진 데는 팬데믹과 미·중 경쟁, 윤석열 정권 출범 등이 겹친 구조적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의 한국어 실력도 한몫했다고 본다. 그는 전임자들과 달리 1980년대 북한 사리원농대에서 우리말을 배운 첫 한국어 구사자 대사이다. 자국어로 했다면 파장이 적었을 발언이 중국어 억양의 한국어로 하면서 더 커진 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지난 9일 이임사에서 “도는 사람과 멀리 있지 않고, 사람은 나라에 따라 다르지 않다(道不遠人 人無異國)”는 고운 최치원의 문장을 인용하며 중국인 사상자가 많이 발생한 화성 화재 사고에 한국인들이 보여준 애도와 위로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래도 마지막은 외교관다운 말이었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왼쪽에서 세번째)가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한·중 의원연맹 개원총회에 참석해 있다. 2022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출범한 한·중 의원연맹의 회장은 주호영 국회 부의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맡고 있다. 싱 대사는 이날 저녁 주한중국대사관에서 있었던 이임식을 끝으로 한국 근무를 마쳤다. 연합뉴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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