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현장] 좋은 사람 되기

최영지 기자 2024. 7. 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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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여론팀으로는 다양한 전화가 온다. 대부분은 자신이 속한 기관이나 단체가 선행을 했을 때 그 내용을 신문에 보도할 수 있는지 묻는 전화다. 이런 분들에겐 오피니언 공식 메일 주소만 알려드리면 된다. 문제는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분의 문의 전화다.

하루는 한 분이 회사 주소를 알고 싶다며 불러달라고 했다. 주소를 말하기 시작하면서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몇 번을 말했지만, 전화기 속의 목소리는 뭐라고요? 예?를 반복했다. 대여섯 번 반복되면서 나도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가까이 앉은 다른 부서 사람뿐만 아니라 제법 거리가 있는 부서까지 내 목소리가 확실히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커졌다. 연제구만 열 번 넘게 반복하면서 화도 났다.

하지만 자신이 귀가 몹시 안 좋다면서 다시 한번 말해달라는 말에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 주변에 다른 분이 계시면 알려 달라, 다시 말씀드리겠다 해도 무조건 자신에게 불러달라고만 했다. 일방통행이다. 결론은 한 마디당 열댓 번을 말하면서 어찌저찌 통화를 마무리했다. 나중에 들으니 다른 부서 사람들이 더 걱정했다고 한다. 연제구 다음에 중앙대로는 또 얼마나 여러 번 고래고래 말해야 전달이 될까 싶어서. 같은 말을 크게 반복하던 내 목소리가 사무실에 쩌렁쩌렁했을 테니 민폐였다.

어떤 분은 회사로 무작정 찾아오시곤 한다. 직접 찍은 사진을 인화하고 알리고 싶은 내용을 종이에 써서 가져오시는 분들이다. 전자메일 이용이 힘드신 분들이거나 담당자를 만나 직접 얼굴을 보고 부탁해야 신문에 게재될 거라고 믿으시니 그런 듯하다. 이메일을 사용하지 못하시는 분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담당자를 만나려고 오시는 건 곤란하기도 하고 효율도 없다. 취재를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경우도 많은데 오셔서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람을 기다려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받은 메일 중 기사 채택 여부는 내용에 따른 것이지 간곡한 부탁과 연관은 없다.

주소 불러주기로 힘든 통화를 끝내고 얼굴이 벌게져 있는 나를 보고 주변에서 한동안 말을 붙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감정이 가라앉을 즈음 나도 나이가 들면 청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큰데 그때 나도 제대로 된 도움을 받기 어렵겠구나 싶으니, 맥이 탁 풀렸다. 어르신들이 병원에 가시거나 관공서, 보험 관련 업무 같은 것을 볼 때 자녀가 동행했으면 하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평소에 잘 접하지 않는 말을 들으면 알아듣기 쉽지 않은 건 누구나 비슷하다. 게다가 청력까지 좋지 않다면 낯선 말을 알아듣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모든 현대인의 미래는 독거노인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도 그런 미래가 내게는 오지 않을거라고 생각한건지. 나도 할머니가 되면 귀가 어두워질 테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어떤 일을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날이 오고야 말텐데. 물론 기술의 발달로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이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짜증을 억누르며 그 일을 반복적으로 해주는 사람일까, 어떻게 하면 잘 도와줄 수 있을까 기꺼이 도움의 손을 내미는 사람일까. 도덕적으로야 당연히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도와야 하고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선 어떨지 장담하기 어렵다.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의 대가 없는 도움이 필요한 때가 있다. 그럴 때 주저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줄 이가 주변에 있다면 훌륭하게 잘 살아온 사람일 것이다. 아직은 다른 이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어색하고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이 싫어서 혼자 해내려고 하는 마음이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내가 제대로 도와줄 수 있어야 남에게 도움을 부탁할 수있다.


여전히 원하는 만큼의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어제보다는 더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적어도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조심하는 마음이라도 가져야겠다.

최영지 독자여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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