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수해·모기·파리·기생이 `동네 명물`이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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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물(名物)이란 말이 있다.
기생을 명물이라고 자랑한 동네도 있었다.
수해, 파리와 모기, 기생을 자기 동네의 명물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왜 감추고 싶은 것을 구태여 꺼내 자기 동네의 명물이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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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촌동(二村洞), 장마때 마다 찾아오는 물난리 꼽아 원동(苑洞)과 광희정(光熙町), 모기와 파리 내세워 다방골로 불리던 다옥정(茶屋町)은 기생이 자랑거리 오죽했으면 이런 것들을 내세웠을까 안타까운 마음뿐
명물(名物)이란 말이 있다. 어떤 지방의 이름난 사물, 또는 남다른 특징이 있어 인기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100년 전 동아일보는 경성(京城)에 있는 10개의 동(洞)·정(町)의 독자들로부터 현상 공모한 '내 동리 명물'이란 연재를 시작했다. 그런데 구차하고 무색한 명물들도 많았다. 오죽했으면 이런 것을 명물이라고 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다. 그 명물들을 소개해 본다.
"명물 명물하니 이촌동(二村洞)의 수해(水害)처럼 유명하고 지긋지긋한 명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촌동! 하면 세상 사람은 벌써 장마 때 수해나는 곳인 것을 연상합니다. 말씀마십시요. 해마다 수해라면 지긋지긋합니다. 심술 사나운 시뻘건 흙탕물이 추녀 끝까지 몰려 들어와서 참혹히 죽어 떠내려가는 사람, 집을 떠내려 보내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굶주리고 벗은 몸을 떨고 있는 사람, 모든 참혹한 광경이 눈앞에 선합니다. 수해도 한두 번이지 이촌동의 수해처럼 해마다 당하는 수해야 넓은 천하에 어디 또 있겠습니까. 조선 사람이 4천명이나 사는 이촌동에 이렇게 해마다 수해가 나서 인축(人畜)의 사상과 피해가 적지 아니하되 아직도 완전한 뚝(堤防) 하나 없습니다. 일본 사람들 사는 동리에는 경성부에서 40만~50만원 돈을 들여 뚝을 완전히 쌓아 올해는 비가 와도 마음 놓고 있는 한편에 이촌동에는 며칠 후면 또 물 야단이 날 것 같습니다. 명물이라니 말이지, 이런 재미없는 명물이야 또 어디 있겠습니까." (1924년 7월 25일자 동아일보)
지금이야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부촌(富村)의 하나지만 100년 전의 이촌동은 '수해가 명물'이라 할 정도의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었다. 이런 걸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여름만 되면 나타나는 불청객 모기(蚊)를 자기 동네의 명물이라고 자랑한 곳도 있었다. 바로 원동(苑洞), 지금의 종로구 원서동이다. "원동은 모기가 명물이랍니다. 원동 모기는 한 동네 명물 노릇을 하는 까닭인지 여간 주제넘지 아니하여 지체를 대단히 본답니다. 그래서 계동 모기와는 혼인도 아니 한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물 안 고기처럼 세상이 넓은 줄을 모르는 까닭입니다. 멀리 신대륙에는 모기 나라가 있는데, 그 근처에 '파나마'라는 나라가 있다나요. 거기도 모기의 세력 범위인 듯합니다. 파나마 운하 같은 세계적 대공사도 한참 동안은 모기의 방해로 진행을 못 하였었답니다. 또 좀 우리에게 가까운 중국 소주(蘇州) 지방에도 모기 세력이 굉장하다는 사담(史談)이 전합니다. 이 사담은 별것이 아니라, 어느 처녀가 남녀가 섞여 잘 수 없다고 노숙(露宿)하다가 모기에게 목숨을 바쳤다는데, 살을 다 뜯겨서 힘줄이 드러났더랍니다. 거기 사람이 불쌍히 여겨서 노근비(露筋碑)를 세워 주었답니다. 이런 이야기를 원동 모기에게 들려주면 그 주제넘은 것이 아마 좀 줄겠지요?" (1924년 6월 26일자 동아일보)
파리를 자기 동리의 명물로 자랑하는 마을도 있었다. 그곳은 바로 광희정(光熙町), 즉 지금의 중구 광희동 1가이다. "광희정 사람 말이 내 동리 명물은 파리라. 어느 집을 가 보든지 사람의 집이라기 보다는 파리의 집이라고 하는 것이 상당할 만큼 파리가 숱하게 많다고 합니다. 파리는 추한 곳에 많이 꼬이는 물건이니 파리를 명물로 내세우는 것은 동리가 추하다고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못된 바람 부는 곳에 무슨 좋은 명물의 차지가 되겠습니까. 파리는 늦은 가을에 알을 배고 그대로 과동(過冬)을 한답니다. 봄 새날이 따뜻해지면 새끼 파리를 낳는데 그 새끼가 얼마 동안만 지내면 또 알을 배게 된답니다. 파리가 만일 잡히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몇 해 동안만 지나면 이 세상은 파리의 물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세계에 파리 많기로 제일 갈 만한 곳은 아마 압록강 건너 안동현(安東縣, 지금의 중국 단둥)인가 합니다. 안동현 거리를 지나가자면 거리의 먼지가 떼를 지어 날아갑니다. 이 먼지는 참말 먼지가 아니요, 파리가 먼지를 뒤집어 쓴 것입니다. 광희정 파리쯤은 아마 명함도 못 들일 줄 압니다." (1924년자 8월 11일자 동아일보)
파리와 모기가 많다는 것은 결국 위생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당시 동대문 밖 광희정에는 경성의 쓰레기 처리장과 화장터가 있었으니 해충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기생을 명물이라고 자랑한 동네도 있었다. 바로 다방골로 불리던 다옥정(茶屋町), 지금의 중구 다동이다. "다방골은 본래 부자 많기로 장안에서 유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옛날 일이요 지금은 부자 대신으로 기생 많기가 장안에 제일입니다. 기생은 조선의 명물이라, 이 한 나라의 명물이 한 동리에 모였으니 어찌 다방골의 명물만 될 수 있겠습니까. 좌우간 한 나라의 명물이 다방골에 모였으니 명물 중에도 짭짤하고 값비싼 명물입니다. 서울 안에 기생이 대략 300명이 있는데 다방골에만 60명이나 있다 하니 어찌됐든 굉장하지 않습니까. 이 명물을 찾아 달 밝은 밤마다 들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은방울 소리 같은 노래를 찾아 문 앞에 대령하여 보는 것도 꽃을 탐하고 버들을 꺾는 풍류남아로 한 번 해볼 만한 놀음일 것입니다." (1924년 7월 5일자 동아일보)
사실, 1930년대 조선의 기생은 관광상품이었다.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기생들의 사진은 관광 홍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조선 관광 일정에는 기생학교(권번)는 반드시 들어가는 코스였다.
수해, 파리와 모기, 기생을 자기 동네의 명물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왜 감추고 싶은 것을 구태여 꺼내 자기 동네의 명물이라고 했을까. 아마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그 동네의 존재조차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조바심이 아니었을까. 그렇게라도 해서 우리도 한번 세상을 살다가는 존재라는 것을, 세상에 우리도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외치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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