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칼럼] 윤·한의 결정적 순간

기자 2024. 7. 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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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9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가 열리는 워싱턴으로 떠나기 위해 공군 1호기로 향하고 있다(왼쪽 사진). 국민의힘 한동훈 당 대표 후보가 10일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7·23 전당대회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서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오른쪽). 연합뉴스

여권은 지금 ‘갈등의 지옥도’ 속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난데없이 던져진 ‘김건희 여사 문자’가 파노라마처럼 드러낸 풍경이다. 대통령은 여당 대표에게 역정을 내고, 그의 부인이 ‘문자 사과’를 하고, 대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권력은 체면을 잃고 권력답지 않으며 국정 협력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졌다. ‘배반’의 아우성에 파탄은 현실이다.

4·10 총선 이후 세 달,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관계는 기이했다. 여권 주류는 콕 집어 ‘이재명·조국 심판론’을 지목하며 한 전 위원장 총선 참패 책임론을 부각하고, 한 전 위원장은 대통령의 식사회동 제안을 뿌리쳤다. 무산되긴 했지만 전대 규칙에 ‘2인 지도체제’라는 기묘한 아이디어도 등장했다. 절윤(윤 대통령과 연을 끊음)·패윤(패륜) 등 온갖 배신 논쟁이 끓더니 전대를 코앞에 두고선 문자 사태까지 터졌다. 모두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 ‘한동훈 견제’다. 문자 속 ‘함께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라는 십수년 관계가 한순간 왜 이리 돌변했을까.

윤·한의 갈등은 단순히 ‘왜 총선에서 졌냐’는 싸움이 아니다. 지지 기반을 공유하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충돌이다. 총선에서 참패하고 망가진 보수의 자존심을 붙들기 위해 누구를 희생시킬까의 싸움이었다. <군주론> 속 체사르 보르자가 돌아서는 민심에 자신의 대리인 레미로 데 오르코를 ‘우아하고도 냉혹하게’ 처형했듯, 아직 3년이 남은 대통령 권력은 그 희생양 역할을 한 전 위원장이 해주길 무엇보다 바랐을 터다. 패배의 크기와 상흔을 생각하면 2인자 정도의 체급은 되어야 했다. 여권 지지층이라는, 권력이 기댈 마지막 언덕의 쟁탈이니 이 갈등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지지층을 넘는 국민은 안중에 들어올 리도 없다.

그래서 이번 전대의 선택은 윤·한 모두에게 결정적 순간이 될 터였다. 지지층이 미래를 선택한다면 여권은 이제 한동훈이란 태양을 중심으로 돌게 될 것이다. 그건 권력의 이동을 의미한다. 진짜 레임덕은 여권 내부에서 오지 야당에서 오지 않는다. 적당한 타협이 쉽지 않은 막다른 골목의 결투일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의 탈당 위협이 나오고, 친윤들이 한 전 위원장의 전대 출마를 막으려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전 위원장은 내처 대선까지 염두에 둔 인생의 승부수를 던질 타이밍으로 보았을 것이다. 대구·경북(TK) 민심조차 “(총선 진 것이) 한동훈이 잘못했나, 윤석열이 잘못했지”라고 한다. 총선 전만 해도 TK 민심 이반의 8할이 김 여사 때문이었다면, 이젠 윤 대통령에 대한 분노도 4~5할쯤은 된다. 애초 전대는 ‘윤석열 대 한동훈’의 구도이고, 배반이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윤·한이 치열하게 다툴수록 지지층도, 보수도 무너트리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분열은 불가피하다. 망해가는 집안 형제들의 유산 다툼을 보는 듯한 황망함이 패닉에 빠진 요즘 보수의 심정일 것이다. 문자 파동을 두고 용산 주변에선 ‘육참골단’(살을 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쯤으로 여기는 기류도 있다지만, 여권 기반을 스스로 허물어가고 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당장 당내에서는 “한동훈은 배신자, 원희룡은 기회주의자, 대통령은 소인배, 김 여사는 측천무후 이미지만 남았다”는 탄식이 들린다.

관심은 앞으로 윤·한의 운명일 게다. 그 열쇠는 지지층이 아닌 ‘민심’이 쥐고 있다. 민심에 보다 가까운 쪽이 승리하게 될 것이다. 정치인의 힘은 결국 ‘민심’의 지지에서 나온다. 당장은 눈앞의 지지층이 급해 보이겠지만, 그들도 결국 ‘힘’을 향해 쏠리기 마련이다. 배신 공격에 “진짜 배신은 정권을 잃는 것”이라며 ‘민심 순응’으로 반격하는 한 전 위원장의 재바름은 그 때문일 것이다.

아직 주도권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고 본다. 3년은 결코 짧지 않다. 인사를 하고 정책을 바꾸며 정부를 움직일 현실적 힘은 여전히 윤 대통령에게 있다. 윤 대통령이 정말 이기고 싶다면 민심을 잡는 게 우선이다. 답은 자명하다. 국정을 쇄신하고 내부에서부터 허물어진 소통·협력을 복원하며 1인자지만 낮은 자세로 민심에 다가가야 한다. 한 전 위원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경하거나 때로 극우적 보수의 지지에 기대는 듯한 모습도 버려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정의 방향은 옳았고, 정부 개혁이 가시화하고 있다”고 자만하고 있으니…. 어쩌면 이 승부는 이미 해보나 마나일 수도 있다. 권력이 후회와 배신에 치를 떠는 것은 ‘때가 늦었다’는 자인에 불과하다. 총선 참패 후 세 달을 허비하지 않고 민심의 명령대로 국정 변화에 나섰다면 지금처럼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김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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