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러시아 오가며 실속 챙기는 ‘외교의 고수’ 모디...이번엔 푸틴과 핵포옹 [헬로인디아]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경제협력 강화 담은 공동성명 발표
자원 공급원 러시아와 관계 유지하면서 미국과도 유대 강화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지난달 3연임에 성공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미국과 러시아를 오가는 외교로 국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지난 집권 기간 미국과 파트너십을 한껏 끌어올린 모디 총리는 집권 3기 첫 행선지로 러시아를 선택했다. 이는 인도 총리가 선거 후 남아시아 이웃 국가를 먼저 방문하는 전통을 깬 행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인도가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새로운 투자, 기술, 무기를 받고 있지만 자치권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리 외교의 길을 걷겠다는 명백한 신호로도 여겨진다.
인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모디 총리는 9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외교·안보·경제 협력 강화를 논의했다. 공동 군사협력 활동을 이어간다는 내용을 포함해 러시아와 밀착을 강화한 내용을 가득 담은 공동성명도 발표했다.
이날 약 2시간 30분에 걸친 회담 후 채택한 공동성명에는 ▷비관세 무역 장벽 철폐 약속 ▷자국 통화를 활용한 양자 간 결제 시스템 개발 ▷신규 항로 개설로 화물 회전율 강화 ▷농산물, 식품, 비료 분야의 양자 무역 규모 확대 ▷원자력, 정유, 석유화학 포함 핵심 에너지 부문에서의 협력 개발과 에너지 인프라, 기술 및 장비 분야의 협력 및 파트너십 확대 ▷우주 및 기타 산업 분야의 교류 강화 등이 담겼다.
양국은 2030년까지 연간 무역 규모를 1000억달러(약 138조7400억원)로 확대하고 석유 및 가스 공급에 대한 장기 계약을 체결하는 동시에 에너지 부문을 넘어 무역을 다각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양국의 교역 규모는 650억달러(약 90조1800억 원)를 기록했다.
아울러 극지 연구 협력을 위한 협정을 체결했으며, 두 나라 국민 간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카잔과 예카테린부르크에 새로운 영사관을 개설한다고 밝혔다
무기 거래에 대한 논의도 오갔다. 러시아 국영 방산업체인 로스텍은 모디 총리의 러시아 방문 하루 전, 이른바 ‘망고(Mango)’ 발사체의 인도 생산 계획을 발표했다. 이 발사체는 인도 지상군이 사용하는 T-72, T-90 탱크의 주포에서 발사되도록 설계됐으며, 로스텍은 “이 포탄을 사용하면 복합 보호장치가 장착된 최신 전차를 타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올해 하반기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제21차 인도-러시아 군기술협력위원회(IRIGC-M&MTC)를 개최해 새로운 기술협력 및 실무그룹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두 거대 국가 지도자의 만남 성과에 대해 WP는 “모디 총리에게 러시아는 무기와 에너지, 우주기술의 공급원으로 소홀히 할 수 없는 나라”라면서 “또한 인도는 자신과 라이벌 상대인 중국에 러시아가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에게도 인도는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피할 수 있는 통로다. 인도는 유엔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안보리 표결에 모두 기권했으며, 러시아에 대한 비판도 삼가해 왔다. 인도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서방의 제재로 판로가 막힌 러시아의 원유를 싼값에 수입했는데,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전비 확충을 돕게 됐다.
인도와 러시아와 고강도 밀착과 관련해 미국은 우려하면서도 인도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모디 총리가 러시아를 방문해 양국의 우호 관계를 확인한 데 대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포함해 인도는 미국과 완전하고 진실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전략적 동반자인 점을 거듭 강조한다”고 말했다.
모디 총리는 지난해 6월 미국 워싱턴을 국빈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며 국은 국방, 무역, 기술 파트너십도 한층 강화했다.
서방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러시아와도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인도가 비동맹주의와 균형주의에 입각한 외교정책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전직 러시아 주재 인도 대사이자 현재 인도 국가안보부보좌관인 판카즈 사란은 WP에 “인도의 기득권은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를 최우선 순위로 여긴다”며 “인도는 러시아와의 우호적인 관계가 추후 러시아와 서방 간 대화를 중재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우려를 달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싱크탱크 채텀 하우스의 남아시아 수석 연구원인 치에티지 바즈파이도 타임지에 “모디 총리가 집권 3기 첫 방문지로 러시아를 선택한 것은 푸틴에게 양자 관계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려는 것”이라면서 “인도는 비서구적이지만 명백히 반서구적이지는 않은 세계관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인도와 러시아의 우정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인도는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 중국을 견제하는 4개국 안보협의체 ‘쿼드(Quad)’의 일원이지만, 동시에 미국을 견제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브릭스(BRICS)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모디 총리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진영과의 관계도 돈독히 하면서 경제와 안보 이득을 취하고, 러시아 등 비(非) 서구 국가들과도 친밀하게 지내면서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또 인도는 중립 외교 노선과 국익을 추구하는 120여개국이 참여하는 ‘글로벌사우스(인도, 브라질 등 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맏형으로도 통한다. 14억명이 넘는 세계 최대 인구를 자랑하며 다른 신흥 경제국보다 빠른 경제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최근 글로벌 공급망 변화로 인도의 제조업 중심 성장전략이 성공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제조업 경쟁력이 개선되고 거대 소비시장의 강점이 부각되면서 미국과의 공조가 더 강화될 전망이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기업 애플이 인도에서 아이폰 조립을 확대하면서 아이폰 전세계 생산량의 7%가 인도에서 나오고 있다.
인도는 미국·영국·러시아·중국·프랑스로 고착돼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 5국 체제의 변화를 강력하게 요구하며 추가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안보 전문지 ‘디 인터프리터’는 “인도의 다자주의 외교 정책은 세계 질서에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인도가 대(對) 러시아 제재 결의안에 기권을 던지는 것은 ‘세계 평화와 안정’을 제1의 임무로 삼는 유엔 안보리 진입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mokiy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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