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한동훈 아닌 국민에게 ‘죄송’해야

박일근 2024. 7. 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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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 문자 ‘사과’ 10회 ‘죄송’ 5회 
명품백 수수 정작 사과받을 이는 국민
잘못 뉘우치면 진정성 보여야 국정동력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김건희 여사(왼쪽 사진)와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뉴스1

간절했던 모양이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1월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보낸 문자 전문엔 ‘사과’라는 단어가 10차례나 나온다. 김 여사는 1월 15일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라고 쓴 뒤 다시 ‘제가 백배 사과드리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다 제가 부족하고 끝없이 모자라 그런 것이니 한 번만 양해해 주세요’라고도 덧붙였다. 1월 19일 ‘사과를 해서 해결이 된다면’, ‘천 번 만 번 사과’, ‘사과를 하는 것이 맞(는)다고 결정 내려주시면’ 등의 문자를 보냈고, 1월 23일 ‘다시 한번 여러 가지로 사과드립니다’라고 강조했다. 마치 큰 죄를 지은 이가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용서를 구하는 듯한 느낌이다.

김 여사는 ‘죄송’이라는 단어도 5차례나 사용했다. ‘제가 죄송합니다’(1월 15일) ‘제 불찰로 자꾸만 일이 커져 진심으로 죄송합니다’(1월 19일)에 이어 1월 25일 마지막 문자 역시 ‘정말 죄송합니다’로 끝맺었다.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도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라 사달이 나는 것 같습니다’란 대목에선 스스로에 대한 원망도 읽힌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게 ‘역정‘을 낸 것을 언급하며 ‘다 저의 잘못으로 기인한 것이라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고 한 부분에선 두 사람이 돌아서게 된 데 대한 자책도 보인다.

김 여사가 이러한 문자를 보낸 건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명품백(파우치) 수수 의혹이 여당의 최대 리스크로 부상하며 윤·한 갈등도 증폭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당을 대표하던 한 위원장에게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전할 순 있다.

그러나 당시 김 여사가 정작 죄송해하면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대상은 한 위원장이 아니라 5,200만 명의 국민이었다. 대가성이 없었다고 해도 현직 대통령 부인이 고가 명품 가방을 받은 건 명백한 잘못이고 부적절한 처신이다. 몰래카메라 함정과 정치공작의 덫에 걸린 것이라고 해도 영상이 공개된 이상 대국민 사과부터 하는 게 마땅했다. 대통령 부인이 만났다는 사람도, 만남이 성사된 경로도, 만나서 한 행동도 국민에겐 모두 실망이고 충격이었다. 국격에도 퍼스트레이디의 품위에도 어긋났다.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는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가 김 여사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기대했다. 국민들 마음을 다독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김 여사는 국민 앞에 나와 직접 고개를 숙이는 대신 한 위원장에게만 미안하다는 문자를 연거푸 보냈다. 국민에게 가져야 할 죄송한 마음이 먼저이고 훨씬 큰데 우선순위와 번지 수를 잘못 찾아간 셈이다.

김 여사는 문자에서 ‘이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이 저에게 있다고 충분히 죄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제가 너무도 잘못을 한 사건’이라며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습니다’라고도 했다. 모두 사실이라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대국민 사과부터 하는 게 순리다. 고작 한 위원장에게도 그토록 낮은 자세로 사과 문자를 보낸 김 여사가 그보다 더 높고 중요한 국민에게 사과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김 여사의 문자를 한 위원장이 읽고도 무시(읽씹)한 뒤 당시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한 사실과 서천 화재 현장에서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에게 90도 폴더 인사를 한 후에도 갈등이 계속된 정황을 맞춰보면 두 사람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하다. 대통령 임기가 3년이나 남았는데 정권 내부 권력 암투와 레임덕이 시작된 꼴이다. 이제 김 여사가 믿고 매달려야 할 건 한동훈이나 당이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이란 사실은 더 분명해졌다. 김 여사의 진정성 담긴 대국민 사과는 꺼져가는 국정동력을 그나마 되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박일근 논설위원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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