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세기의 과학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한겨레 2024. 7. 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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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홋카이도대 북방생물권센터의 고바야시 마코토 연구원이 이탄습지에서 1만년 전의 이탄을 시추해 시료로 쓰기 위해 옮겨담고 있다. 이탄 시료를 통해 과거의 탄소량과 고기후를 유추할 수 있다. 사진 남종영

남종영 |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그 물질은 몇 년 전에 만들어졌죠?”

“그래프를 보세요.”

땅속 3m에서 파낸 흙을 여기저기 살펴보던 고바야시 마코토 연구원(홋카이도대 북방생물권센터)이 논문을 가리켰다. 그래프를 보니, 3m면 1만2천년 전에 쌓인 것이었다. 지난 3일 일본 홋카이도 우류 군(雨竜町)의 홋카이도대 실습림. 도로 강(泥川)을 끼고 있는 숲은 적막했다. 가문비 나뭇잎들이 살랑거리고 불곰을 쫓으려고 배낭에 매단 방울 소리 말고는 들리지 않았다. 1만년 넘게 이 숲에는 인간이 없었다. 식물이 죽고 조용히 쌓여 이탄층을 이뤘다. 타임머신을 타고 도착한 숲 같았다.

이탄습지는 최근 들어 가장 주목받는 지구의 탄소 저장고다. 미분해된 식물 잔해가 퇴적된 석탄의 전 단계다. 만약 이곳에 산불이 나면 어마어마한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이곳처럼 아한대와 냉대 숲의 이탄습지 또한 중요한데, 사시사철 언 땅이 녹거나 벌목으로 이탄지가 노출되면 온실가스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원과 광주과학기술원 그리고 홋카이도대 산하 과학기술교육연구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 연구원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기후위기 시대에 이탄습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어쩌면 진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이들은 탄소 배출량이나 흡수량이 아닌 ‘탄소를 세는 과학’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

일본 홋카이도 우류 군의 홋카이도대 실습림에서 시추된 이탄. 1만 년 이상의 이탄층이 형성되어 있다. 사진 남종영

탄소는 보이지 않는다. 측정하기 어렵다. 소를 예로 들어보자. 트림하는 전 세계 소에 측정 마스크를 달기란 힘들다. 사육 환경은 또 얼마나 다른가? 풀을 먹는 소도 있고, 사료만 먹는 소도 있다. 온종일 돌아다니는 소, 갇혀 있는 소, 3년 넘게 사는 소, 2년 안 되어 죽는 소가 있다. 생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메탄 배출량도 다르다. 가가호호 한두 마리씩 소를 키우는 제3세계에서 소의 메탄 배출량을 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대기 중 탄소량을 측정하는 민경은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대기과학)도 깐깐하게 이 문제를 바라본다. 그는 방법론을 통해 산정된 배출량과 직접 측정한 배출량의 차이가 꽤 크다고 말한다. “탄소 측정은 불확실성이 큽니다. 탄소를 제대로 세려면, 면밀한 검증 과정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탄소는 하향식으로 센다. 소 한 마리가 내뿜은 배출량을 ‘배출계수’로 정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있는 소 마릿수를 배출계수에 곱해서 소의 배출량을 구하는 식이다. 다른 부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향식이라기보다는 하향식이다. 우리가 기후위기에 만나는 숫자는 대개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상향식(직접 측정)으로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값을 보정해야 한다.

김성은 박사(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는 사회적인 지점에도 주목한다. “탄소 세는 과학이 부정확하다면 신뢰 있는 기후정책은 불가능합니다. 탄소 세기는 효과적이고 정의로운 기후정책을 세우기 위한 핵심 지식 인프라죠.”

하지만 세상에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것은 없다. 탄소를 셀 때 기업과 국가의 욕망이 개입한다. 과학은 탄소 배출량은 되도록 적게, 탄소 흡수량은 되도록 많게 측정하려는 그들의 욕망에 연루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갯벌을 탄소 흡수원으로 보고 이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입해 연구하고 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루고 국제사회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자. 갯벌이 탄소 흡수원으로 인정받는다면, 우리나라는 그만큼 다른 부문에서 탄소를 더 배출해도 된다는 얘기가 된다. 지구 전체의 탄소량으로 본다면, ‘플러스알파’가 배출되는 셈이다.

사람이 내연기관 차량을 모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래가 똥 싸기, 소가 풀밭을 돌아다니기, 담쟁이덩굴이 도시 열기를 식히기도 탄소와 관계된 일이다. 인간 활동과 자연 작용이 탄소를 내뱉고 흡수하는 일이라서, 정확한 탄소 세기는 애당초 불가능하며 정치·경제적 논리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탄소 세기는 국가와 기업의 욕망 안에서 작동한다. 과학자들은 어떻게 독립적일 수 있을까? 애당초 그게 가능하기라도 한 걸까?

고바야시는 적막한 숲에서 계속 땅을 팠다. “지금까지는 3m까지 이탄이 있는 거로 보이는데, 5m까지 파보려고요.” 1만 년 전 탄소와 씨름하고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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