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의 신간] 그런 곳에 사는 돼지들
동물복지 농장을 꾸려가는 데
필요한 이론과 실전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동물·환경 보호를 자처하며 비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들은 화장품, 식재료, 생활용품 등을 구매할 때 동물 유래 원재료를 사용했는지, 동물실험을 한 제품인지를 꼼꼼히 살피며 가치 소비를 실천한다.
동물보호 측면에서 가장 뜨거운 논제는 우리가 섭취하는 육류와 관련된 동물복지라 할 수 있겠다. 비좁은 케이지에서 알 낳기를 반복하는 암탉, 분만틀에 갇혀 출산과 포유를 반복하다 폐사하는 어미 돼지들… 모두가 높은 생산성을 위해 동물들이 겪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렇다면 동물복지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윤진현 전남대(동물자원학부) 교수가 펴낸 「돼지 복지」는 우리나라에서 동물복지 농장을 꾸려가는 데 필요한 이론과 실전을 총망라해 수록하고 있다. 전 세계를 돌며 동물복지 축산을 연구하고 한국 실정에 맞는 농장 운영 방안을 고민해온 저자가 연구자로서 데이터를 통해 현실적인 방안들을 제시한다.
좁은 분만틀에서 비명 지르는 어미 돼지, 거세 후 피를 흘리며 다니는 새끼 돼지, 분뇨로 뒤범벅된 채 기침하는 돼지들을 보고 저자는 "이런 곳에 갇혀 사는 돼지들은 어떤 마음으로 견딜까"라며 동물의 고통에 깊이 공감한다. 그리고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실증적 탐구와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저자가 동물농장의 실태를 마주하고 동물복지 축산에 관심을 가진 순간부터, 핀란드를 비롯한 동물복지 선진국에서 연구한 경험들, 한국 실정에 맞는 고유한 축산 시스템을 고민하는 현재까지를 총 10장에 걸쳐 풀어낸다.
"동물이 행복한 농장은 어떤 모습일까?"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저자는 핀란드의 '규따야 농장'과 '올릭깔라 농장', 국내 1호 양돈 복지 농장인 '더불어 행복한 농장' 등 3곳의 동물복지형 농장을 예로 설명한다.
농장에서 목격한 돼지들의 편안한 표정과 관리자의 마음가짐, 소비자 확충을 위한 SNS 홍보, 인터넷을 통해 유럽의 연구를 접하고 실험하며 전문가에게 조언을 얻는 농장주의 모습 등 그곳에서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이 책은 "동물의 행복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동물복지를 정의하는 것보다 동물의 행복을 측정하는 기준과 이를 향상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 마련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먼저 '관리자의 역량'이 필수라며, 농장 동물 관리자가 갖춰야 할 기본 지식부터 동물의 복지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까지 상세히 설명한다.
그다음으로 동물복지 축산물의 가치를 알고 여기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려는 '소비자 의식 전환'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현 동물복지 인증제도 시스템의 적정성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며, '항목별 인증마크' 부여 방식을 제안한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동물의 행복과 인간, 자연의 행복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공장식 축산의 부작용이 대두되고 항생제 투약, 돼지의 거세 및 꼬리 자르기를 금지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등 축산 패러다임이 변하는 지금,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와 동물복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돼 줄 것이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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