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여있던 반려견 놔두고…'죽음 문턱'서 가까스로 탈출한 이재민들(종합)

김기현 기자 장수인 기자 최형욱 기자 2024. 7. 1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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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물 닦아도 그대로" 간밤 수마가 할퀸 자국 '선명'
시간당 130㎜ 넘는 비… '2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준
집중호우가 쏟아진 10일 대구 동구 금호강 일부 구간이 범람해 인접한 금강동 주택이 침수되자 주민이 빗물을 퍼내고 있다. 2024.7.10/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전국=뉴스1) 김기현 장수인 최형욱 기자 = 사흘째 집중 호우가 이어진 10일 순식간에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렸던 이재민들의 생생한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평소처럼 잠을 자다 갑자기 집 안에 들이닥친 물로 고립됐었다고 한다.

◇"새벽 폭우로 갑자기 물에 잠겨"… '죽음의 위기'서 탈출

이날 오후 충남 논산시 강경읍 부흥로의 한 주택엔 지난밤 폭우로 물에 잠겼던 흔적이 여전히 생생히 남아 있었다. 이곳에 거주하는 이충우 씨(79)는 아직 긴장이 덜 풀린 듯 눈에 초점이 흐려진 상태로 침수 당시 피신하느라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이 씨는 "새벽 2시쯤 집 안에 물이 차기 시작해 자다 일어나 급하게 집을 뛰쳐나왔다"며 "이미 물이 많이 차 있는 상태라서 대문으로 나오지 못해 창문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반려견도 미처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 목줄에 묶여 있던 이 씨 반려견은 집 안에서 몸이 물에 반쯤 잠긴 채 낑낑대며 울었다.

이 씨는 "소방관들이 감전될 우려가 있어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해 아무것도 못 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라며 절망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논산시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까지 8개 읍면이 물에 잠기는 등 비 피해로 주민 총 500여명이 대피한 것으로 집계됐다. 논산시엔 이날 오전 0시 40분을 기해 호우경보가 발효됐다.

특히 도로 곳곳이 파손되면서 일부 지역 마을버스 운행이 중단되고, 지하차도 4개소가 침수돼 차량 통행이 통제되기도 했다.

집중호우가 쏟아진 10일 물이 불어난 대구 동구 금호강 주변이 흙탕물로 변해 있다. 이날 금호강 일부 구간이 범람해 금강동 일부 주택이 침수되고, 주민이 고립되기도 했다. 2024.7.10/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사망자도 발생했다. 오전 2시 52분쯤 논산시 내동 건양대 후문 인근의 한 오피스텔에선 50대 남성 A 씨가 "지하 2층 승강기 안에 갇혔다"고 119에 신고했으나 끝내 숨졌다. 이곳은 이미 20여 분 전부터 침수되기 시작했지만, A 씨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 간밤 수마가 할퀸 자국 '선명'… "진흙물, 닦아도 닦아도 그대로"

이날 전북자치도 완주군 운주면 내촌마을에서 만난 임복성 씨(78) 역시 새벽 잠결에 겪은 일을 회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임 씨는 이날 새벽 잠을 자다 깜짝 놀라 깼다고 한다. 집에 물이 들어차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것이다.

그는 곧장 옆에서 자고 있던 아내를 깨워 현관문을 통해 대피하려고 했으나,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이미 마당에 물이 가득 찬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물은 순식간에 목까지 차올랐다. 이에 임 씨 부부는 창문으로 탈출을 시도,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임 씨는 이후 아내와 함께 뒷산으로 올라갔다. 산에서 내려다본 마을 모습은 처참했다. 집 앞에 주차돼 있던 차량이 떠내려가는 것쯤은 예사였다.

임 씨는 "2010년쯤에도 비가 정말 많이 왔는데, 이번에 내린 거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닌 것 같다"며 "안 죽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10일 전북자치도 완주군 운주면 엄목마을 일대 비닐하우스가 폭우로 인해 무너져 있다. 2024.7.10/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밤사이 범람한 완주군 운주면 장선천과 가까운 곳에 있어 새벽 3시쯤부터 빗물이 흘러들어온 박귀례 씨(51·여) 집도 수마가 할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냉장고·세탁기 등 모든 물건이 진흙물에 나뒹굴고 있는가 하면, 곳곳엔 물과 함께 흘러들어온 차량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박 씨는 "전쟁을 겪은 것 같다"며 "집안에 발을 못 디딜 정도라 일단 걸레질이라도 해보는데 닦아도 닦아도 그대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간당 130㎜ 넘는 비… '2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준

전북과 충남, 경북 등지에 퍼부은 장맛비는 주말 이후 누적 300㎜를 넘어섰다. 특히 시간당 130㎜ 넘는 비의 양은 거의 2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준의 강수와 비슷하기에 그에 따른 피해가 속출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달 8일부터 이날 오전 7시까지 전국엔 최대 306.0㎜(익산) 비가 쏟아졌다. 군산 294.5㎜, 부여 294.0㎜, 서천 285.0㎜, 무주(덕유산) 265.0㎜, 성주 245.0㎜, 대구(신암) 242.5㎜, 장수 237.2㎜, 금산 226.6㎜ 등에 200㎜ 넘는 비가 왔다.

밤사이 비는 충남과 전북, 경북에 집중됐다. 군산엔 시간당 131.7㎜ 수준의 강한 장맛비가 뿌려졌다.

전국 97개 관서용 기상관측 지점 기준 1시간 강수량 역대 최고치였다. 기상청은 관서용 관측소의 기록을 기상청 '공식기록'으로 사용한다.

금산에선 84.1㎜, 추풍령에선 60.8㎜의 시우량이 기록됐다. 모두 200년 빈도 강수량이다. 구미에선 100년 빈도의 시우량 58.3㎜가 관측됐다.

이밖에 군산(어청도)엔 시간당 146.0㎜, 서천 111.5㎜, 논산(연무) 84.1㎜, 보은 68.5㎜, 영동 68.0㎜, 고령 63.0㎜, 칠곡(가산) 60.0㎜의 비가 내렸다.

kk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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