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우 뚫고 들려온 '살려달라' 소리에 달려갔지만"
단상리 주민들 주택 등 피해 복구 요원…"집에 들어가기도 힘들어"
(서천=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 "황급히 뛰어갔더니 집은 무너져 있고, 살림살이는 30m 밖 논으로 다 휩쓸려갔더군요."
10일 새벽 산사태 사고로 인명피해가 난 충남 서천군 비인면 율리에서 만난 신신용(64) 씨는 "오늘 새벽만 생각하면 아직도 무섭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오전 3시 57분께 율리의 한 주택이 산사태로 무너지면서 집 안에 있던 A(70대) 씨가 토사와 함께 휩쓸렸다.
밤사이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잠자리에 들지 못하던 신씨는 빗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살려달라'는 비명을 따라 A씨의 집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신씨는 "산사태가 났는데 남편이 사라졌다"는 A씨 가족의 말에 수색하던 중 주택 앞 논 위에 쓰러져 있는 A씨를 발견했다.
구조 당시에만 해도 의식이 있던 A씨는 이후 소방 당국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
이날 오후 사고 현장에는 경찰 통제선이 설치돼 있어 접근이 불가능했지만, 여기저기 뜯겨나간 주택 상태가 당시의 긴박함을 가늠케 했다.
마당 앞에는 산에서 굴러떨어진 바위들이 널브러졌고, 주택 뒷면은 낙석이 뚫고 간 것으로 보이는 큰 구멍이 났다.
골조만 간신히 남은 A씨 주택 앞 논바닥에는 냉장고 등 각종 세간 살림과 건물 잔해들이 쌓여있었다.
신씨는 "A씨 부인도 남편 구조 직후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며 "같은 동네 주민들인데 너무 안타깝다"며 아쉬워했다.
주택 7채가 산사태 피해를 본 한산면 단상리 일대 주민들도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토사에 파묻히고 벽면이 모두 뜯겨나간 노윤호(67) 씨의 집에는 성한 가재도구들이 하나도 없었다.
LPG 가스통 4개와 밥솥, 농업용수용 고무 물통, 깨진 그릇 조각이 육안상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가재도구들이다.
어지럽게 쌓인 나뭇가지를 치우고 복구작업을 해보려 해도, 발목 깊이에서 물엿처럼 쩍쩍 달라붙는 황토 펄 때문에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힘에 부쳤다.
노 씨는 전날 밤 가족과 대전에 볼일을 보러 나갔다가 다행히 화를 면했다.
그는 "집채만 한 소나무들이 다 떠내려오면서 집을 할퀴었는데, 어찌나 힘이 셌던지 벽과 내부가 형체조차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서천군에 따르면 이날 내린 비로 현재까지 269건의 피해 신고가 들어왔다.
시설하우스 등 농경지 33.5㏊가 침수됐고, 가축 12만1천마리가 폐사했다.
도로유실 등으로 인해 16곳에서 교통이 통제되고 있다.
탑정호 제방이 일부 무너져 내린 충남 논산시도 하천 범람에 따른 광범위한 침수 피해를 겪었다.
이날 오후 1시까지 부적면, 성동면 등 제방·하천 인접 지역 주민 500여명이 인근 학교 등지로 긴급 대피했다. 물이 들어찬 시설재배 비닐하우스에는 수확을 앞둔 수박과 토마토, 멜론 등 농작물이 둥둥 떠다니는 상황이다.
강경읍은 빗물로 주요 진입로 등이 오전 내내 차단되면서 주민들이 통행에 큰 불편을 겪기도 했다.
논산 내동의 한 오피스텔 지하에 물이 차 승강기 안에 있던 주민이 사망한 채 발견됐고, 충남 금산에서도 산사태 피해가 나 주민 1명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충남 부여에서도 전날 내린 비로 도로 사면이 유실되고 제방이 붕괴되는 등 96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됐고, 주택 침수와 산사태 경보 발령으로 61가구 93명이 대피했다.
현재까지도 12가구 21명이 귀가하지 못하고 있다.
벼·수박·멜론·토마토 등 농작물 피해는 1천314㏊(632농가)에 이른다.
박정현 군수는 10일 부여군 구교리 수해 현장을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태흠 충남도지사에게 "부여군은 재작년과 작년에 이어 3년 연속 수마로 큰 피해를 봤다"며 "인명피해는 없지만 재정 여건이 열악한 기초자치단체의 여건을 고려해 조속히 복구작업을 할 수 있도록 특별재난지역으로 조기 선포해달라"고 건의했다.
coo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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