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노동자들의 죽음, 정부가 방치했다 [왜냐면]

한겨레 2024. 7. 1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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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아리셀 공장. 연합뉴스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경기도 화성 리튬전지공장에서 참극을 당한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을 애도한다.

2016년 초반, 인천과 경기 부천 공단지역 파견노동자들에게 일어난 ‘메탄올 실명’ 사고조사 보고서를 열어보았다. 보고서라고 하기에는 소박한 자료집에 불과하지만 대기업의 하청으로 스마트폰 부품을 깎던 20대 노동자들이 왜 실명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기록해놓았다. 6명의 청년은 인터넷에 올라온 인력소개업체 광고를 보고 공장으로 갔다. 인력업체엔 수수료로 계산되었고, 사업주에겐 누가 와도 그저 작업대가 비어 있지 않으면 되었던 파견인력이었다.

6명의 노동자를 파견한 인력업체들은 여러 곳이었지만, 한결같이 산재보험은 가입하지 않았고 사회보험료를 떼먹었다. 사고가 일어난 공장은 모두 세 곳이었다. 대학교 학비에 보태려고 ‘알바’로 온 이가 있었고 부모와 살기 위해 온 중국 동포 청년이 있었다. 실명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겨울, 공장의 환기시설은 형편없고 휴대전화 새 모델 출시를 앞두고 바빴다. 노동자들은 보호장비 없이 주야 맞교대로 부품을 생산했다. 사업주들은 메탄올의 독성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말을 믿기는 어렵다. 메탄올 용액의 ㎏당 단가가 에탄올보다 몇백원 저렴했기에 유해물질을 세척액으로 사용했다. 근로감독관이 공장에 감독을 나갔을 때 공장주가 메탄올이 담긴 통을 숨겨두었다가 감독이 끝난 후 다시 사용할 정도였다. 실명의 직접적 이유들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노동자,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노동시장이 ‘메탄올 실명’을 부른 구조적 원인이었다. 당시 노동건강연대가 만난 6명 가운데 2명은 실명 시기가 달랐다. 사고가 알려진 2016년 1월 무렵에 공장에 들어간 4명의 노동자는 메탄올 중독 후 원인도, 서로의 존재도 알지 못한 채 각자 약국·의원을 찾고 응급실로 실려 가는 며칠의 시간을 보낸 후 사고의 진상을 알게 되었지만, 2명의 노동자는 다니던 공장을 앞서 그만두고 자신의 공간에서 수개월째 칩거하던 중이었다.

4명의 노동자에게 일어난 실명 사고가 티브이(TV) 뉴스에 나오고 공단지역이 시끄러워지면서 이들의 지인이 “어쩌면 공장에서 일한 것 때문에 시력이 손상된 것이 아닌지 알아보라”며 소식을 전해주었다. 한사람은 3주, 또 한사람은 5개월을 일한 뒤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장애가 생겼다는 것을 확인했다. 산재신청을 하려고 사업주를 찾으니 급여를 입금해준 인력파견 업체는 사라진 뒤였다.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가 사라진 업체의 사업주와 동일인이 운영하는 인력사무소를 찾아냈을 때는 회사명이 세 번이나 바뀌어 있었다.

공단은 멀리서 보면 밀집되어 있고 집약되어 있지만, 공장 안의 사람들은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다. 6명의 노동자는 공장에서 대화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이 고되다” “몸이 아프다” “아무개가 병원에 다녀왔다더라”같은 대화가 있어야 노동환경에 대한 정보도 유통될 수 있다. 옆자리에 서서 부품을 찍어내는 노동자들은 서로에게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이방인들이었다. 2015년 메탄올 중독 후 숨어들어 간 두 사람에 대해 공장 사업주들이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면, 옆자리에 나오던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을 궁금해한 동료가 있었다면, 수개월 후 4명의 노동자가 더 실명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산재 사고는 때로 착시를 일으킨다. 안전관리계획, 대피계획, 응급상황 조치계획…, 법이 정한 온갖 계획은 서류로 만들 수 있다. 서류가 너무나 완벽해 실제로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쳐도 승합차에 실려 공단을 떠도는 파견노동자들을 이 계획의 대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안전교육을 받았느냐는 질문은 어떠한가. 교육은 얼마든지 서류로 증빙될 수 있다. 조심스러워야 한다. 교육과 노동자 책임론은 연관돼 있다. 메탄올 실명 사고 당시 노동부는 메탄올 취급업체를 점검한다고 부산했다. 그러나 2014년에 이미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또 다른 파견노동자 중국 동포가 있었고, 정부가 이를 공개하지 않았음을 2017년에서야 알게 되었다. 2014년의 실명 사고를 은폐한 책임을 물어 고용노동부 장관 둘을 고발하였지만 무혐의 처분되었다.

경제단체들은 더 많은 파견노동자와 임시 고용을 원한다.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서 일손이 부족하다. 법무부는 외국인 인력정책을 점점 더 나쁜 방향으로 확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황폐한 노동시장에 눈감은 채 안전 그 자체가 보장되는 시스템이 가능한 것처럼 속인다. 리튬전지공장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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