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정려원 “불안으로부터 졸업했어요”[스경X인터뷰]
tvN 드라마 ‘졸업’의 방송을 최근 끝낸 배우 정려원은 최근 일정이 없는 같은 작품의 동료들을 한데 모아 시간을 보냈다. 위하준, 소주연, 안현호, 신주협 등이 모인 장면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대중에게 퍼져나갔다. 그들은 한데 모여 이렇게 외쳤다.
“저희 아직 졸업 못 했어요.”
하지만 정작 정려원은 작품을 통해 소중한 졸업장을 마음으로 받아들었다. 바로 ‘불안으로부터의 졸업’이었다. 매번 노력한 자신을 응원하지 못했던 과거, 스스로를 ‘충분하다’고 격려하지 못했던 과거. 정려원은 그런 자신의 과거에서 졸업했다.
“저도 배우다 보니 촬영을 하다 보면 감독님에게 ‘오케이’ 컷을 받고 싶고, 칭찬을 받고 싶더라고요. 제가 연기한 장면에 대한 확인을 받고 싶었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연기에 대해 ‘거기서 충분하다’고 느끼고 넘어가는 방법을 배웠어요. 처음으로 작품을 끝내고, 스스로에게 ‘충분했어’ ‘고생했어’ ‘훌륭해’라고 말해주는 시간이었죠.”
이 졸업장을 받은 사람은 배우 정려원, 준 사람은 ‘졸업’의 안판석 감독이다. ‘하얀거탑’ ‘아내의 자격’ ‘밀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 등을 연출한 안 감독의 이름은 정려원에게는 하나의 ‘이상향’과도 같았다.
“지난해 3월에 일기장에 같이 작업하고 싶은 감독님들, 작가님들의 이름을 썼어요. 안 감독님도 그 안에 있으셨죠. 어떤 분인지는 잘 몰랐지만 한지민씨도, 김명민 선배도 꼭 한번 해보라고 추천하시는 연출자셨죠. 3월에 일기를 쓰고 5월 중순에 대본을 받았어요. 9월에 촬영 시작이었는데, 당시에 들은 이야기는 ‘멜로’ ‘안판석 감독님’ ‘학원 강사’ 세 마디였어요. 운명처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내용을 읽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한다고 했어요.(웃음)”
모두가 알다시피 정려원은 호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영어에 능통했는데, 처음 제안을 받고는 영어강사인지 알았다. 하지만 국어강사로 일타를 이룬 서혜진 역할이었다. 머리칼이 쭈뼛 서는 긴장감이었다. 매번 자문해주는 차민주 강사의 강의를 통으로 외웠다. 판서도 배우고, 매일 오후 11시부터 학원의 강의실이 비면 실강도 했다. 하지만 안 감독의 ‘절묘한’ 밀당을 받았다.
“감독님은 정말 제가 아는 감독님 중에서 가장 ‘특별한’ 분이세요. 절대 먼저 정답을 이야기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A라는 연기를 하고 나서 B와 C를 제안하면, 알파벳의 기원을 이야기하세요. 처음에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쌓이면서 저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베드신에서도 강의 장면에서도 제가 생각한 부분을 안 찍고 넘어가시는 경우가 있었는데, 방송에서는 정말 절묘하게 표현이 되더라고요.”
강사인 서혜진도 일에서는 프로이고 명성을 쌓지만, 연애는 서툴다. 어느 날 갑자기 제자에서 남자가 돼 직진해 들어오는 이준호(위하준)의 모습에 허물어진다. 결국 두 사람의 로맨스는 서혜진의 본업인 강사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서혜진은 쿨하게 자신의 직업을 내려놓고 성장의 시간을 받아들인다. 정려원도 비슷한 나이, 비슷한 입장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서)혜진이도 그랬지만 직업이 싫어서가 아니라 직업을 하는 스스로를 응원하지 않게 되거든요. 물론 혜진이처럼 다 내려놓고 다른 걸 한다는 건 아니지만 저 스스로를 응원하는 법을 배웠어요. 멜로 연기에 있어서도 그랬어요. 사실 전문직 작품을 많이 해서 꼭 멜로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4회까지는 뜨뜻미지근해서 ‘이게 뭐지?’했지만, 5회 이후부터 쓰나미가 몰려오더군요.(웃음) 매번 대본을 보고 ‘이게 뭐야! 너무 설레잖아!’하면서 대본을 집어 던지는 나날의 연속이었어요.”
이른바 안판석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 서정연, 장소연, 길해연, 김학선, 오만석, 윤복인, 김송일 등의 배우들과 호흡은 배우로서 새로운 호흡을 느끼게 해줬다. 가수 활동을 하고 TV 연기를 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는 다시 무대 연기를 꿈꾼다. 동료들에게 “좋은 공연 대본이 있다면 돌려달라”고 조를 지경이다.
“표상섭 선생님을 연기하신 김송일 배우님의 연기를 보고 정말 ‘큰일 났다’ 싶었어요. 정말 선생님 같으시고, 속으로 칼을 백만 번 갈고 나오신 것 같은 거예요. 그렇게 신나 보일 수가 없었어요. 정말 많은 숏폼이 사랑을 받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졸업’ 같은 작품이 있어서 ‘슬로푸드’를 먹는 느낌을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늘 좋은 연기를 하고 싶지만, 최근의 제작 사정으로 의도치 않은 공백기도 가졌던 정려원은 계속 차기작도 보며 활동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아직도 카메라 앞에 서면 떨리고 설레는 ‘신인’ 배우의 느낌이지만 노련함은 더하고 그 당시의 설렘은 잊지 않으려 한다.
“제 인생을 작품으로 제작한다면 2007년 청룡영화제 때 화장실 속 장면을 넣고 싶어요. 신인상 후보에 올라 너무 떨려서 화장실에서 5분 정도 저를 다독였거든요. ‘그래, 너 말고는 아무도 몰라. 들키지만 마’하고 말했죠. 실수하면 어때요.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제게 ‘이너프(Enough·충분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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