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실래요” 엉겁결에 따라나섰는데 3시간…

한겨레21 2024. 7. 1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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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수(가명)님은 마치 나를 오래 알았던 것처럼 친근하게 인사했다.

진료를 요청한 창수님의 누나에게 상황을 듣고 약을 처방해준 뒤 그냥 나서길 몇 번이었다.

창수님의 누나는 정신질환이 있는 동생과 거동하지 못하고 누워 지내는 언니를 돌보고 있었다.

그렇게 창수님께 혼잣말하듯 설명하고 누나와 대화를 나누고 약을 처방하고 나오길 몇 차례, 이번에는 갑자기 내게 반갑게 인사하며 산책하자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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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선생님, 오셨어요? 산책 같이 가실래요?”

창수(가명)님은 마치 나를 오래 알았던 것처럼 친근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익숙한 동작으로 산책 준비를 했다. 얼떨결에 그의 산책길에 동행했다. 그의 누나에게 진료 요청을 받은 건 서너 달 전이었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약을 먹어야 하는데 처방받지 못해 진료를 요청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지만 빠른 진료가 필요한 상황이라 일정을 약속하고 찾아갔다. 인사를 건네고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창수님은 말없이 돌아누워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진료를 요청한 창수님의 누나에게 상황을 듣고 약을 처방해준 뒤 그냥 나서길 몇 번이었다.

노인 누나의 노인 동생 돌봄

창수님의 누나는 정신질환이 있는 동생과 거동하지 못하고 누워 지내는 언니를 돌보고 있었다. 세 가족이 모두 65살을 넘었다. 보호자의 돌봄 부담이 커 보였다. 몇 차례 찾아갔지만 창수님과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돌아누워 쳐다보질 않았다. 그렇게 창수님께 혼잣말하듯 설명하고 누나와 대화를 나누고 약을 처방하고 나오길 몇 차례, 이번에는 갑자기 내게 반갑게 인사하며 산책하자고 한 것이다.

살짝 당황했지만 그를 제대로 살펴볼 기회라는 생각에 나도 태연한 척 반갑게 악수하며 “그래요, 같이 갈까요” 하고 그의 산책길을 따라나섰다. 대화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색했다. 골목을 나와 큰길에 다다르자 창수님은 내게 진짜 같이 갈 거냐고 물었다. 내가 바쁘면 같이 안 가도 괜찮다는 배려였다. 다음 일정이 떠올랐지만 애써 외면하고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산책은 시작됐고 나도 약간 긴장하며 말없이 그가 가는 대로 걸었다. 다음 진료 일정에는 양해를 구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창수님은 가끔 산책한다고 말했다. 과거에 직장생활을 했지만 그만둔 지 오래됐다고 했다. 약을 먹는지 물었을 때는 가끔 생각날 때 먹는다고 했다. 경복궁 인근에서 시작된 산책길은 종로를 거쳐 을지로를 지나 남대문까지 이어졌다. 최종 목적지가 서울역이었음은 도착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자주 이 길을 나서는 그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50여 분을 걸어 서울역에 도착했다. 잠시 앉아서 쉬다가 화장실에 다녀온 뒤 왔던 길을 따라 다시 걸었다. 그 길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분식집에서 돈가스를 같이 먹자고 했다. 식사하고 집에 돌아오니 세 시간쯤 지났다. 창수님의 누나는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았다. 창수님은 나와 악수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창수님의 누나는 그가 가끔 이렇게 혼자 나갔다 돌아온다고 했다.

세 남매의 노년이 순탄하길

함께 걷고 난 뒤 창수님에 대한 걱정이 조금 줄었다. 가끔 혼자 산책하면 운동도 되고 좋을 것 같다. 식사만 좀더 잘 챙겨 드시면 좋겠지만 돈가스를 드시는 모습에서 필요할 때면 언제든 식사를 잘 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약도 잘 드시면 좋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가끔 산책하고 드시고 싶은 음식을 드시면서 지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창수님이 잘 지내는지 누나에게 연락하면 계속 누워 있고 밥을 잘 안 먹는다고 걱정스레 말하며 가끔 와서 봐주길 부탁한다. 다시 찾아뵈었을 때는 또 이전처럼 돌아누워 대화할 수 없었다. 다시 함께 산책할 수 있을지, 인연이 어디까지일지 알 수 없지만 세 남매의 노년이 순탄하길 바랄 뿐이다. 언젠가 종로와 서울역 사이에서 그를 마주친다면 반갑게 인사하고 싶다. 이 기묘한 산책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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