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의를 당장 의대 교수로”…정부 ‘교수 1000명 확보’, 민낯 드러나나

강윤서 기자 2024. 7. 1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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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개원의 경험 4년만으로 교수 지원 가능” 입법 예고
개원가 “임상 경험의 한계도 고려해야”…‘의학 교육의 질’ 우려도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정부의 의대 증원 안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의료현장 이탈이 다섯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8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한 환자가 전원 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입법 예고 중인데, (현 규정으로는) 임상 경험이 있는 분들(개원의) 중 교수가 될 수 있는 길이 제한돼 있다"(7월4일 오석환 교육부 차관, '의대 교육 관련 긴급 브리핑' 내용)

정부가 이러한 설명과 함께 '개원의도 더 쉽게 의대 교수가 되도록 길을 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의대생을 늘리는 만큼 의대 교수 인력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정부는 개원의가 학술 연구 실적 없이 4년간 경험만으로 의대 교수에 지원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셈이다. 의료계는 교육의 질을 우려하며 비현실적인 정책이라고 맞섰다. '거점 국립의대 교수 1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했던 정부가 뒤늦게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교수 자격 조건을 완화하는 꼼수를 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10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 2일 '대학교원 자격기준 등에 관한 규정'(대학교원자격규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풍부한 임상 경험을 보유한 개원의가 의대 교수로 임용되는 길을 넓혀주겠다는 취지에서다. 이는 사실상 의대생 증원으로 수급 불안이 우려되는 의대 교수를 더 쉽게 충원하기 위한 대책인 것으로 해석된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대학 전임교원인 조교수가 되기 위해선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로 '교육과 연구경력을 합해 4년 이상'이란 조건이 따른다. 의대 졸업 후 개원의로 활동한 의사가 의대 교수에 지원할 경우 30~70%까지만 경력으로 인정된다. 실제 개원의 활동을 전부 경력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경력 인정 비율을 확대할 방침이다. 교육부 장관이 정한 기관에서 의료인으로 근무한 경력은 100% 연구 실적으로 인정하고 대상 기관을 확대한다는 게 개정안의 핵심 골자다. 즉 의대 졸업 이후 4년간 개원의로 활동했다면, 그 4년을 연구경력으로 전부 인정해 지금보다 더 쉽게 의대 교수에 지원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석박사 학위나 학술 연구 실적이 없어도 의대 교수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교육부에 따르면,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든 개원의로 일했든 똑같이 경력 기간이 인정된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지난 4일 '의대 증원에 따른 향후 3년간 국립의대 교수 1000명 충원 방안'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같은 내용을 언급했다. 그는 "(현재) 임상 경험이 있는 의사들 중 교수 채용이 제한돼 있다"며 "다양한 분야 전문성을 갖춘 경험 있는 사람들에게 교수 자격을 부여하고, 그 자격이 교수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는 채용 과정에서 검증을 거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풀을 늘리는 제도 개선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8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중대본에서는 수련 현장의 건의와 의료현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오늘부로 모든 전공의에 대해 복귀 여부에 상관없이 행정처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이동하는 의료진. ⓒ연합뉴스

"어불성설 정책" 개원가도 비판…'교육의 질 저하' 우려도

해당 개정안을 놓고 현장에선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학술 연구 실적을 배제하고 의대 교수 자격을 부여할 경우 의학 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심지어는 정부가 공략한 개원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박근태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의대) 교수가 되려면 논문, 교육, 진료 등 세부적인 평가 항목이 굉장히 많은데 (교육부의 입법예고안에는) 개원의를 어떻게 평가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식이 하나도 제시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개원가 임상 경험의 한계도 지적됐다. 박 회장은 "개원가에선 특정 (진료)분야만 전문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가령 소화기내과 펠로우(전임의)를 마치고 온 의사라도 (동네병원에서는) 소화기내과 환자뿐 아니라 장염, 급성질환 등 다양한 환자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펠로우 시절에는 ESD(내시경 점막하 절제술) 중에서도 어려운 시술까지 다 직접 했어도 (개인 병원에선) 시술할 수 있는 범위 자체가 좁다"며 "(의료) 사고라도 발생하게 되면 전부 개인의 책임이 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개원의들의 교수 지원율에 대한 의구심도 표했다. 박 회장은 "교수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개원했던 의사라면 다시 (의대 교수에) 지원할 수도 있겠지만 (해당 사례는) 극히 드물 것"이라며 "개원가에 그런 의사들이 거의 없으니 90% 이상 (입법예고안에 대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해당 개정안을 통해 실제 교수 채용이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할지도 미지수다. 개원의의 경력 인정 범위가 넓어지더라도 의대 전임교원 채용을 위한 연구실적을 맞출 수 있는 인원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대 교수들도 '무리수 정책'이라며 개정안 철회를 촉구했다. 전국 34개 의대 교수들은 전날 공동 성명을 내고 "의대 졸업 후 의원을 개원해 4년을 근무했으면 4년을 다 경력으로 인정해준다는 것이고, 개업의를 당장 의대 교수로 뽑을 수 있게 하겠다는 발상"이라면서 "3년간 국립대 의대 교수를 1000명 늘리는 계획에 억지로 짜 맞추기 위해서 의학교육의 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이냐, 교육부는 입법예고안을 철회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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