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돼지신장·심장펌프 함께 이식한 美여성 사망

유전자 변형한 돼지 신장 이식은 두 번째
신장 이식 아닌 심장 펌프 문제로 사망

지난 4월 유전자 변형 돼지의 신장을 이식받는 수술 직후의 리사 피사노 /AP=연합뉴스

세계 최초로 돼지 신장(콩팥)과 심장 펌프를 함께 이식받은 여성이 사망했다. 사인은 돼지 신장이 아니라 심장 펌프 문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뉴욕대 랑곤 의료센터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유전자 변형 돼지의 신장을 이식받은 리사 피사노(54)라는 여성이 이틀 전 사망했다고 9일(현지 시각) 밝혔다.

피사노는 지난 4월 4일 신장과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신부전과 심부전을 동시에 앓아 위독한 상태까지 갔으나 기계식 심장 펌프를 이식받은 데 이어, 12일에는 유전자 변형 돼지의 신장까지 이식받고 가까스로 되살아났다. 돼지 신장과 심장 펌프 이식 수술까지 함께 받은 경우는 리사 피사노가 처음이었다.

미국에서는 심장 펌프가 필요한 환자는 이식을 받아도 생존율이 극히 낮으므로 장기이식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또 일반적으로 신부전 환자는 사망 위험이 크기 때문에 심장 펌프 이식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미 식품의약국(FDA)은 피사노의 상황을 고려해 실험적인 돼지 신장 이식에 대한 ‘동정적 허가’를 승인했다.

수술에 사용된 돼지의 신장은 생명공학 스타트업 ‘유나이티드 세러퓨틱스’가 만든 유전자 변형 돼지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 돼지는 사람 몸에서 급격한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알파갈(alpha-gal) 유전자가 억제됐다. 또 신장과 함께 면역기관인 돼지의 흉선도 이식해 거부반응을 최소화했다.

피사노는 이식 수술 후 문제 없이 회복되는 듯 보였으나 심장 펌프와 관련된 혈류 부족 증상이 나타나면서 돼지 신장이 손상됐다. 결국 신장 이식 수술 47일 만인 지난 5월 29일에 이식한 신장을 제거하고 투석을 다시 시작했다. 이후에는 죽음을 앞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치료를 받아왔다.

랭곤 의료센터의 담당의 로버트 몽고메리 박사는 성명을 통해 “피사노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 죽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며 “그녀의 용기는 대체 장기 공급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말기 신부전·심부전 환자 수천 명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밝혔다. 피사노는 4월 이식 수술 후 언론 인터뷰에서 “돼지 신장이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최악의 경우 저에게는 효과가 없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변형 돼지의 신장을 이식받은 첫 번째 환자는 리처드 슬레이먼(62)이란 남성이다. 그는 지난 3월 보스턴에서 생명공학기업 ‘e제네시스’사가 개발한 유전자 변형 돼지의 신장을 이식받았다. 수술 후 2주 만에 퇴원할 수 있을 정도로 양호한 상태를 보였으나, 기존의 심장 질환이 문제가 돼 지난 5월 초 사망했다.

동물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 장기 이식은 만성적인 이식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장기 이식 대기자가 11만6000명을 넘지만, 공급 부족으로 매일 20명이 이식을 받지 못하고 숨진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장기 이식 수요의 10%만 충족되는 상황이다. 특히 돼지 장기는 크기와 해부학적 구조가 인간과 닮아 이식하기에 적합하다. 돼지 신장을 이식받은 원숭이 5마리가 각각 1년 이상 생존했다는 동물 실험 결과도 얻었다.

과학자들은 돼지에서 면역거부와 관련한 유전자를 변형해 이식용 장기를 개발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실험 단계에 머물고 있어 사람의 장기를 이식받기 힘든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만 FDA의 허가를 얻어 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 미국 의료계는 올해 두 건의 이식 성공 사례와 추가 연구를 통해 내년에는 아직 아프지 않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정식 임상시험을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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