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없는 강렬한 삶에 ‘n차 관람’···베르나르 뷔페 전시에서 놓치면 후회할 그림 5점

이영경 기자 2024. 7. 1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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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베르나르 뷔페 전’
최예림 도슨트가 추천하는 그림 5점
‘광대’는 진짜 모습 감춘 ‘현대인의 초상’
유일한 영혼의 안식처 ‘아나벨’
파킨슨병 걸려 절망 속 그린 ‘죽음’
천재적 화가이지만 불행했던 뷔페 그림 진수
왼쪽부터 베르나르 뷔페의 ‘광대의 얼굴’, ‘드레스를 입은 아나벨’, ‘죽음15’. 지씨아트 촬영 제공

“베르나르 뷔페의 사전엔 ‘적당히’란 없었어요. 온몸으로 상처 받으면서도 그림에 자신의 모든 걸 다 쏟아내고 죽었어요. ‘적당히’ 없이 강렬하게 살다 갔구나, 많은 관람객들이 그 부분에 감동하는 것 같아요. 원화의 강렬함에 매료돼 여러번 전시장을 찾아 ‘N차 관람’을 하는 관람객도 많아요.”

‘비운의 천재’ ‘피카소의 대항마’로 불렸던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1928~1999) 두 번째 대규모 회고전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폭 4m가 넘는 대형 유화, 그의 상징과도 같은 광대 그림 등 120여 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다. 여름방학 시기를 맞아 전시 해설을 맡고 있는 최예림 도슨트로부터 뷔페 전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그림 다섯 점을 추천받았다.

베르나르 뷔페의 ‘가오리와 물병’(1948) 전시 전경. 지씨아트 촬영 제공
①가오리와 물병(1948)

탁자 위에 놓인 탐스러운 과일과 화병에 꽂힌 풍성한 꽃다발. 우리가 미술관에서 흔히 접하는 정물화다. 하지만 뷔페가 남긴 정물화는 달랐다. 그는 정물화조차 ‘뷔페스럽게’ 그려냈다. .

뷔페의 유년시절은 유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11살 되던 해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뷔페는 눈 앞에서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집안은 가난했고, 아버지는 바람을 피우며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어머니만이 그에게 사랑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가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난다. 뷔페의 그림의 질료가 된 상처와 불안은 이 시기 형성된다.

최 도슨트는 “그림 속 생선은 말라 비틀어져 있고,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며 “실제 뷔페의 집에 있던 평범한 사물들을 그린 것으로 빈곤한 시대 상황을 반영함과 동시에 뷔페의 피폐한 내면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베르나르 뷔페의 ‘광대의 얼굴’(1955) 전시 전경. 지씨아트 촬영 제공
②광대의 얼굴(1955)

뷔페의 대표작은 광대 그림이다. 뷔페는 광대의 짙은 분장 뒤에 불안과 슬픔, 두려움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의 초상을 보았다. “광대, 이것은 두려움이다. 그는 그의 얼굴에 그림을 그린다. 우리도 마찬가지다”라고 뷔페는 말했다.

“광대를 보면 밝은 옷을 입고 웃고 있는 것 같지만 눈은 슬프고 불행해보여요.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많은 관람객들이 이 작품에 공감을 합니다. 뷔페 스스로 자신을 광대와 같다고 말했는데, 관객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뷔페의 광대 그림은 현대인의 초상과 같아요.”

많은 광대 그림 중 최 도슨트가 꼽은 것은 푸른 배경에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림이다. “밝은 분장과 대비되는 표정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에요. 배경이 우울을 상징하는 파란색이어서 더 처연한 느낌이 들고요. 뷔페는 물감을 굉장히 두텁게 바르는데, 광대 시리즈는 수채화처럼 얇게 채색해 투명한 물감이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죠. 뷔페의 삶은 광대와 같았어요. 이른 성공에 부를 누렸지만,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불안했어요. 한번도 완전하게 행복하지 않았죠. 그것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르나르 뷔페 ‘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1976) 전시 전경. 지씨아트 촬영 제공
③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1976)

폭 4.3m에 이르는 대작이다. 작품의 규모도 규모지만, 지옥의 아비규환이 강렬하게 눈길을 붙든다. 최 도슨트는 “‘단테의 지옥’은 뷔페가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 받던 시기에 그린 그림이다. 뷔페가 사람들에게 입은 상처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고 말했다.

그림 속 지옥은 ‘배신 지옥’이다. 가장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갇혀 있는 곳으로, 지옥의 입구엔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희망을 버릴지어다”라고 써 있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져서도 복수심에 서로를 돌로 내리치고 물어 뜯는다. 수치심을 모른채 옷을 벗고 있다. “인간이 추악함을 잘 보여주는 작품 같아요. 나약하고 못난 사람들끼리 서로 비난하고 싸우고 경쟁하는 모습을 뷔페가 가감없이 그려냈다고 생각해요.”

베르나르 뷔페 ‘드레스를 입은 아나벨’(1959) 전시 전경. 지씨아트 촬영 제공
④ 드레스를 입은 아나벨(1959)

뷔페와 아나벨은 문자 그대로 첫 눈에 반한다. 1958년 사진작가의 부탁으로 함께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게 된 아나벨과 뷔페는 서로에게 반해 장거리 연애 끝에 그해 결혼한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의 돌봄을 받지 못했던 뷔페와 부모님이 모두 자살로 세상을 떠난 아나벨은 서로의 상처를 깊숙히 알아보았다. 또한 배우이자 가수, 작가인 아나벨은 예술가로서 영감도 주고받았다.

“뷔페의 유일한 피난처이자 안식처가 아나벨이었어요. 아나벨을 너무 아름답게 표현한 그림입니다. 그림을 보면 뷔페가 얼마나 아나벨을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어요.” 뷔페는 생전에 아나벨을 그린 그림을 많이 남겼다. 아나벨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따로 열기도 했다.

아나벨은 뷔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나벨은 뷔페에 대해 ‘천재 화가지만 구제불능의 남편’이라고 말했어요. 예술가로서는 천재적이고 위대한데,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죠.” 파킨슨병에 걸린 뷔페는 1999년 자살한다. 아나벨에겐 가혹한 일이었다.

베르나르 뷔페의 ‘죽음 15’(1999) 전시 전경. 지씨아트 촬영 제공
⑤죽음 15(1999)

뷔페는 “내가 사는 방법은 그림이었다. 그림은 나에게 숨쉬는 도구이자, 내 삶의 지팡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1997년 파킨슨병에 걸려 점차 그림을 그릴 수 없게된다. 삶이 곧 그림이었던 뷔페로서는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셈이다.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뷔페는 죽기 전 6개월간 작업실에 틀어박혀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 25점을 남겼다. ‘죽음 15’은 그가 남긴 마지막 그림이다. “그림 속 해골이 생각보다 밝게 웃고 있어요. 죽음이 마냥 슬프게만 표현되진 않았죠. 배 속에는 아기도 있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삶과 함께한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게 아닐까요.”

전시장에선 뷔페가 파킨슨병에 걸려 떨리는 손으로 ‘죽음 15’를 그리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함께 볼 수 있다. “이 그림 앞에서 매일매일 우는 관객들이 있어요. 최근 가족이 세상을 떠나서 눈물을 흘리는 분, 뷔페의 열정에 감동받아서 우는 분 등 눈물의 의미는 다양해요. 뷔페의 그림 앞에서 다양한 삶의 희노애락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고 있는 베르나르 뷔페. 1964년. 한솔비비케이 제공
베르나르 뷔페의 ‘자화상’(1981) 전시 전경. 지씨아트 촬영 제공

최 도슨트에게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뷔페의 ‘자화상’(1981)을 골랐다.

“뷔페는 늘 자기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했어요. 남들이 보기엔 모든 걸 다 가진사람이었죠. 일찍 성공하고, 그림도 잘 팔리고, 미남에 유명했어요. 하지만 뷔페는 자신을 늘 무자비하게 표현했어요. 불안하고 황폐하고 못난 모습이죠. 누구나 살면서 그런 순간이 오잖아요. 더 잘 하고 싶고, 더 완벽하고 싶은데 아쉬운 마음이 드는 순간….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마음들이 뷔페의 자화상으로 표현된 것 같아 공감이 가더라고요.”

전시는 오는 9월10일까지 열린다.

최예림 도슨트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베르나르 뷔페 전시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최예림 도슨트 제공

☞ 피카소가 ‘질투’하고 워홀이 극찬한 작가···뷔페의 세계로 한 발 더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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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m ‘단테의 신곡’과 ‘잔다르크 목소리’···뷔페의 강렬함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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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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