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움켜쥔 벼 포기…소작항쟁 농민의 처절한 최후
서용선의 암태도항쟁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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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포기를 움켜잡고 웅크린 채 관객을 보고 있는 중년의 남자. 콘크리트 벽 위에 그려진 이 남자는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순간의 모습이다. 날카로웠던 그의 눈매는 허망하게 잠기어 가고 손에서도 힘이 점차 빠지고 있다.
누렇고 허연 몸에서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운 기운의 선을 내쏘면서 최후를 맞는 이 남자의 이름은 서태석(1884~1943). 1924년 전남 신안군의 풍요로운 섬 암태도의 소작인회 간부였다. 지난해 11월 이 암태도 단고리 옛 농협창고에 문을 연 암태도소작항쟁기념전시관에 그의 운명을 보여주는 그림이 들어섰다. 중견 화가 서용선(73)씨가 그린 암태도항쟁 벽화 연작 가운데 핵심인 ‘하늘을 보다-서태석’이란 작품이다.
서태석은 소작료를 전체 작물 소출의 칠할까지 올려받는 친일지주의 수탈에 맞서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인 끝에 사할로 인하하는 요구안을 쟁취한 ‘암태도항쟁’의 주역이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일제 검경에 구속돼 모진 고문을 받으며 오랜 감옥 살이를 해야했고, 그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인 조현병을 앓았다. 주민들의 외면 속에 결국 폐인이 되다시피 한 그는 1943년 6월 암태도와 가까운 섬 압해도의 논두렁에서 낟알을 거머쥐고 홀연 세상을 등졌다고 전해진다.
서 작가는 주민들 사이에 야사처럼 전해지는 서태석의 최후를 전해 듣고는 암태도 연작의 핵심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러 역사적 상상과 실제 숨졌을 당시 자세 등을 떠올리며 숱한 드로잉을 거듭한 끝에 논두렁에 웅크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허망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최후를 강렬하게 그려냈다. 작가는 말한다.
“하늘을 본다는 것이 극적이기도 하지만, 고인은 아주 외롭게 죽어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광경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고민이었어요. 여태까지 많은 인물 군상들을 그렸지만, 작업이 참 어려웠어요. 그 감정을,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다른 동료 작가들에게 퍼포먼스처럼 자세를 취해보라고 해서 관찰하기도 하고 여러 번 사료들을 보고 구상하면서 서태석의 자세를 바꾸고 고쳤습니다. 식민지시대 민족의 운명이 무력한 상황이었잖아요. 그렇게 애를 쓴 인간의 힘없고 억울한 단면, 그러나 한편으론 엄청난 용기를 내서 항거한 상황이 겹칩니다. 이런 극과 극을 넘나드는 복잡한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가 어려움으로 남았어요. 결국 해결하지 못했고, 이런 상황을 있는 그대로의 그림으로 보일 수밖에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지요. 그래서 서태석이란 인물의 몸과 동작의 명확한 윤곽선이라기보다 그의 기운과 자취가 깃든, 거칠게 휘두른 붓질의 스트로크가 그대로 남아있는 화면이 나왔습니다. 이 거친 붓질의 힘과 방향 같은 것들이, 우리가 서태석을 이해하는데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였지요. 그래서 덜 마무리한 그림입니다.”
서 작가가 신안 예술섬 프로젝트 감독이던 이승미 기획자로부터 섬 창고에 벽화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건 2022년 5월.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뜬금없는 구상을 듣고 단박에 승낙했다. 곧장 신안으로 가서 작업을 시작했다. 20여년 전부터 조선 단종 애사, 동학과 한국전쟁 등의 근대민족사 연작들을 현장 조사를 통해 그려온 경험이 있었던 그에게 근대 민중항쟁의 흔적을 조사하고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은 호기심과 더불어 열정을 부추기는 소재이기도 했다. 사진기록도 거의 없고 누구도 제대로 재현하는 이가 없던 암태도항쟁의 실상을 설치작업이 덧붙은 벽화 연작으로 되살려 한국 현대 역사화 작업에서 또 다른 금자탑을 쌓은 것이다.
암태도소작항쟁기념전시관에는 벽화들이 사면에 펼쳐져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 벽면부터 동학혁명과 3∙1운동의 장면이 풀려나간다. 전시장 한가운데서 왼쪽을 보면 콘크리트 벽에는 소작항쟁을 주도했던 서태석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린 ‘하늘을 보다-서태석’이, 오른쪽 벽에는 1923년 암태도 농민들이 아사 투쟁을 펼치며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장면과 이런 투쟁의 장소가 된 당시 목포 시내 풍경이 펼쳐진다.
안쪽 벽에는 항쟁의 원인이 된 지주와 농민의 갈등을 넘어 자본과 노동자, 독재와 민주, 남북 분단의 원인이 된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이념 갈등이 목판을 거칠게 깎아 조형한 여섯명의 군상화로 표현됐다. 양면 벽 사이 전시장 바닥엔 지주와 농민 사이의 갈등을 철망에 갇힌 인물상으로 형상화한 설치작품 ‘갈등’이 놓였다.
이 작업들은 제작 과정이 모두 현장에서 공개됐다.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농민과 지주의 후손들과 신안군 주민은 물론 동료 및 후배 작가들과 2년에 가까운 현장 대화를 통해 다듬어진 산물이다. 하지만 여전히 완성이 아니고 현재진행형이다. 냉전 시절 기념사업은커녕 언급조차 꺼렸던 암태도항쟁은 지난 20여년간 연구가 조금씩 진척되어 왔지만, 아직도 항쟁의 전말과 주요 인물의 행적 등은 묻혀있는 부분이 많고 평가 작업 또한 여전히 여러 견해들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5일 전시관에서 만난 서 작가는 암태도 벽화를 앞으로도 계속 새롭게 그릴 것이라고 했다.
“이번 벽화연작을 마무리하는 주역이 된 서태석은 항쟁 전 만주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다니면서 독립지사들을 만나 세계를 향한 시각과 사상적 지평을 넓힌 것으로 보이지만 상세한 견문 내용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아요. 그의 투쟁을 이었던 또 다른 소작인회 간부 박복영이나 지주 문재철도 이후 행적을 놓고 여전히 평가가 엇갈리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요. 학계의 연구 못지않게 이 항쟁에 대한 저의 탐구도 계속 진행해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기념관의 벽화 연작들은 그런 면에서 계속 바뀌며 새롭게 의미를 더해가야겠지요.”
신안/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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