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강화위원회 노력 폄하 말라”던 축구협회 “위원회는 원래 보수 없다”···국가대표 감독 선임 작업, 일한 만큼 대가 ‘없는 게’ 당연한가
축구에서 감독은 아주 중요하다. 한국 축구 역사만 봐도 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46년 동안 월드컵 본선에서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팀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세계 축구를 양분하는 유럽과 남아메리카를 제외한 대륙에서 월드컵 4강 이상의 성적을 낸 건 아시아의 한국, 아프리카의 모로코(2022년)가 유이하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어떠했나.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긴 4년 4개월간 대표팀을 이끌며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이란 성과를 냈다. 특히나 벤투 감독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 어떤 팀을 만나든 주도할 수 있는 팀을 만들었다.
벤투 감독 이후 대표팀을 이끌었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2월 16일 경질됐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지 1년 만이었다.
대한축구협회(KFA) 전력강화위원회는 그래서 더 중요했다. 전력강화위원회는 한국 축구를 위기에서 구원할 유능한 지도자를 찾아야 했다.
KFA는 빠르게 새 전력강화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클린스만 감독 경질 4일 후인 20일이었다.
전력강화위원회 구성은 더 빠르게 이뤄졌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새 감독을 찾아 나설 위원을 앞장서 찾았다. 한 해의 시작을 코앞에 둔 지도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를 위해 나서달라”는 말을 외면하지 못했다.
금세 한계에 부딪혔다. 전력강화위원회는 막중한 책임에 비해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전력강화위원회는 KFA가 제시할 수 있는 연봉 등의 계약 형태를 전혀 알지 못했었다. 감독 후보와 협상 테이블에 앉아도 할 수 있는 얘기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전력강화위원들은 6월 진행된 8차 회의에서야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에게 제시할 수 있는 연봉이 얼마인지 알았다.
복수의 축구 관계자는 “(전력강화위원들은)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를 위해 나선 분들”이라며 “그 일념으로 본업이 있는 와중에도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전했다. 이어 “일정상의 이유로 자비를 써가며 전력강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분들도 계셨다. 전력강화위원들은 KFA로부터 일당을 받으면서 일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KFA는 MK스포츠에 “한국 축구를 위한 책임감 속 외부의 영향을 배제하고 후보자를 선정하고 있다”며 “전력강화위원들의 노력을 폄하하지 말아주셨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었다.
이임생 KFA 기술총괄이사도 7월 8일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브리핑에서 전력강화위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 이사는 “클린스만 감독이 물러난 이후 약 5개월 동안 감독 선임 작업에 고생하신 전력강화위원회 정해성 위원장님을 비롯한 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그간의 전력강화위원회 감독 선임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전력강화위원들은 KFA의 말처럼 헌신하고 노력했다. 결과를 떠나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KFA는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이란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을 맡기고서 아무런 대가도 지급하지 않았다.
복수의 축구계 관계자는 “(전력강화위원들은) 거마비로 소정의 금액만 받았다”며 “비판, 비난의 화살이 전력강화위원회를 향해 쏟아지는 상황 속 KFA는 ‘전력강화위원회가 노력 중’이라는 말 외에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전력강화위원회가 KFA에 정말 중요한 조직이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권한과 일한 만큼의 대가는 주어졌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박주호 전력강화위원의 유튜브 영상을 여러 번 돌려봤다. 공감하는 바도 있고, 박 위원의 주관이 강했던 내용도 있다. 박 위원의 생각을 존중한다. 특히나 박 위원은 새 감독 선임에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막대하게 투입했다. 하지만, 박 위원 역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 책임질만한 위치나 권한도 없었다. 결과가 보여주지 않나. 박 위원은 한국 축구를 위해 희생했고, 그에 대한 대가는 열정페이였다.”
전력강화위원회 상황을 잘 아는 또 다른 관계자는 조금 다른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앞의 관계자는 “전력강화위원회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모여서 답을 찾아가는 것 아니냐”며 “조세 무리뉴와 같은 명장을 데리고 올 수 있다면 반대할 전력강화위원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력강화위원들은 현실적인 문제에 수없이 부딪혔다. 그 안에서 서로의 의견이 엇갈렸던 건 사실이다. 다만 싸움이나 큰 갈등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모인 전력강화위원회라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전력강화위원회에서 열띤 토론은 피할 수 없었다. 박 위원과 생각은 조금 달랐을지라도 서로가 최선을 다해서 감독 선임을 위해 힘썼다. 핵심은 전력강화위원 간의 갈등이 아니다. KFA가 전력강화위원회를 왜 구성했고, 어떻게 활용했는지가 중요하다.”
앞의 관계자는 또 한 가지를 덧붙였다. 박 위원의 주장 중 다수의 전력강화위원이 공감할 내용이란 것이었다.
이 관계자는 “박 위원이 ‘전력강화위원회는 앞으로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5개월 동안 무얼 했나 싶다. 허무하다’고 했다.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에 혼신의 힘을 다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공감한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도 이 말에 크게 공감할 것이다. 정 위원장은 위원장직을 맡았지만 그만큼의 권한이나 대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없는’ 책임만 남았다. 가까이서 전력강화위원들의 5개월간의 노력이 물거품 되는 것을 봤다. 그들은 큰 자괴감을 느꼈다”고 했다.
복수의 관계자는 이 이사의 업무 인수인계 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앞의 관계자들은 “(정해성 위원장은) 앞장서 방패막이가 되어준 사람 아닌가. 그런 사람을 위해서 최소 (사퇴 의사를 밝힌 후) 하루 이틀은 기다려줘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싶다. 정 위원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날 오후 바로 인수인계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 그렇게 감독 선임 작업을 이어가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도 6월 30일 울산 HD FC와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를 앞두고 KFA의 행정력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낸 바 있다.
홍 감독은 “클린스만 감독을 뽑을 때까지의 전체 과정과 그 이후 일어났던 일을 생각해 보면 KFA가 과연 얼마나 학습이 된 상태인지 묻고 싶다”며 “KFA에선 누구도 정 위원장을 지원해 주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었다.
이 조직이 와해한 가장 큰 이유엔 “전력강화위원회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던 KFA가 있다.
한국프로야구 선수협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등 스포츠에 조예가 깊은 법무법인 지암 김선웅 변호사는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의 중요도를 더 높이 봤다면 전력강화위원회를 지금처럼 무보수로 운영했을까 싶다. 무보수 상태에선 책임감, 전문성 등이 떨어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더 큰 책임감과 전문성을 바란다면 그에 걸맞은 대가를 지급하는 게 상식”이라고 했다.
[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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