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도 모른 채 학교서 전쟁터로"…'한국전쟁 소년병' 진실규명
진실화해위, 대학생 강제징집·제2남진호 사건도 진실규명 결정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장성곤(91)씨는 제대한 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터에 끌려가는 꿈을 꾸곤 한다.
1950년 8월, 중학교 1학년생이었던 그는 영문도 모른 채 학교 운동장에 서 있던 미제(美製) 트럭에 올라탔고 그로부터 4년 3개월간 현역병으로 전쟁에 동원됐다.
장씨는 10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학교에 모이라고 해 갔더니 말도 없이 트럭에 태워서 훈련장에 보냈다. (운동장에 있던) 700명이 넘는 애들이 다 그렇게 트럭에 실려 갔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는데 총을 주더니 훈련을 시켰다. 그때 '내가 군대에 왔구나' 하고 알았다"고 말했다.
동원된 전장은 더 참혹했다. 장씨는 "총알이 날아오고 난리가 나면 나처럼 열다섯, 열여섯 먹은 애들이 '엄마야' 하면서 몇십명씩 죽고 그랬다. 나는 운 좋게 살았지만 어떤 날엔 자다가도 동료들 고함이 들려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했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전날 열린 82차 위원회에서 장씨를 비롯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소년병 6명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소년병이 겪었던 전쟁의 트라우마, 교육의 기회 상실, 사회 부적응과 자립 기반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던 피해 사실 등을 인정해 진실규명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장씨처럼 한국전쟁 당시 18세 미만 미성년자로 병역 의무가 없었는데도 정규군으로 동원됐던 소년병은 약 3만명에 달한다.
장씨와 같은 강제징집이 아닌 자원입대한 소년병도 있지만 일부는 자원입대 형식을 갖춘 유인징집에 가까웠다는 게 진실화해위의 설명이다.
장씨와 함께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고(故) 하명윤 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17세의 나이에 자원입대한 하씨는 '우리가 나라를 지키자'는 교장 선생님의 연설을 듣고 학교 운동장에 있던 트럭에 올라탔다.
소년병 대부분은 성인이 된 뒤 제대해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는 문제도 있다.
장씨 또한 "전쟁이 끝나고 다시 학교에 가게 되면 열심히 공부해 대한민국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했지만 제대 후 학업을 포기했다.
학교에서는 만 21세가 된 장씨에게 '다시 중학생 과정을 밟으라'는 말뿐이었고 학교에서는 '살생'했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다.
진실화해위는 "소년병이 국가 안전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국가가 그 공헌과 헌신에 상응하는 별도의 지원 및 예우를 하지 않고 있다"며 국가에 소년병의 실질적인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를 권고했다.
다만 소년병 병역 수행의 위법성에 대해서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는 "국난 극복을 위해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소년병 제도가 법적 문제 내지 인권침해 문제로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이라며 "현행법을 소급 적용하거나 국제 규범을 원용해 위법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진실화해위는 전날 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참전 소년병 사건 외에도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벌어진 대학생 강제징집 사건, 1980년 동해상에서 조업하던 선원 19명이 납북됐다 귀환한 제2남진호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대학생 강제징집 사건의 경우 2022년 11월, 지난해 10월에 이어 74명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해 총 362명이 인권침해를 인정받게 됐다.
이들은 1981년 국방부의 '소요관련 대학생 특별조치 방침'에 따라 학생운동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징병적령·징병검사 여부와 관계 없이 경찰서에서 바로 입대시키는 불법 징집을 당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1984년 해당 조치가 폐지됐다는 기존에 알려진 내용과 달리 1987년 청와대 회의자료에서도 관련 방침을 확인했다"며 1987년 이후에도 대학생 강제징집이 계속된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고 말했다.
stop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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