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봐야 할 ‘시대착오 세금’ 많다[문희수의 시론]

2024. 7. 1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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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수 논설위원
정부, 상속세 할증 폐지 추진에
野는 또 부자 감세, 무산될 지경
시대에 뒤진 세제가 경쟁력 낮춰
국민 세제 개정 건의 1422건 최다
車 개소세·국민연금 과세·금투세
세수 펑크 대책은 현금 살포 금지

매년 세제 개편은 논란이었다. 그래도 올해는 혹시 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뜻밖에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먼저 거론하고, 정부·여당보다 강한 반도체지원법안을 공언했기에 그렇다. 그렇지만 결국 역시로 귀결돼 가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아직 때가 아니라며 종부세 폐지에서 발을 빼 도로 종전의 ‘부자 감세’로 돌아갔다. 이재명 전 대표가 10일 당 대표 연임을 위한 출마선언에서 실용주의를 내걸고 다소 전향적 입장을 밝혔지만, 중산층 외연 확장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정부가 이달 말 세제개편안 공개를 앞두고 지난 3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발표한 세금 감면 방안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작 관련 세법 제·개정의 키를 민주당이 쥐고 있으니 도리가 없다. 정부는 이번에 주가 상향을 위한 기업 밸류업과 연계해 법인세·배당소득세를 일부 감면하겠다고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세의 할증(20%)을 폐지하고, 가업 상속 공제 한도를 두 배로 늘리는 등의 대안도 제시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감면과는 거리가 먼 ‘찔끔 인하’다. 그런데도 민주당에선 벌써 반대하는 목소리가 요란하다. 특히, 최대주주의 상속세 할증 폐지에 대해선 전형적인 부자 특혜라고 공격한다. 여기에 여당과 정부는 이런 반대 기류에 밀려 지레 상속세율 인하와 과세표준 상향을 내년으로 미뤘다. 유산취득세·자본이득세 전환 같은 근본 대책은 또 헛말이 됐다. 세제 개편은 출발도 하기 전에 반의반 쪽이 된 셈이다.

한국의 세제가 후진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지난달 발표한 2024년 국가경쟁력 평가조사 결과가 대표적이다. 한국은 기업들 덕에 전체 순위는 67개국 중 20위로 지난해보다 8계단 올랐지만, 조세 경쟁력은 26위에서 34위로 추락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 경쟁력은 35위에서 41위, 특히 법인세 경쟁력은 48위에서 58위로 꼴찌 수준이다. 시대 역행적이고 부담이 너무 무거운 세제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상속·증여세, 법인세, 소득세 외에도 손봐야 할 세금이 수두룩하다.

일반 국민도 낙후된 세제에 고통을 호소한다. 기획재정부가 내년에 시행할 세제개편안에 반영하려고 세제 개선 건의를 받은 결과, 1422건이나 접수됐다. 역대 최다이다. 37년 된 자동차 개별소비세, 15년간 부양가족 1인당 150만 원으로 달라지지 않는 소득 기본공제, 월 20만 원으로 묶여 있는 식사비 비과세 한도 등이 대표적이다. 전기차 등 친환경차에 보조금을 주면서, 필수재가 된 차를 살 때 보석처럼 이중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징벌이다. 개인연금과는 달리 국민연금 수령액을 근로소득과 분리과세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정부가 고령자와 취약계층 보호·지원을 강조하면서 국민이 받는 연금을 다른 소득과 합쳐 종합과세해 세금을 더 걷는 것은 정책의 상충이다. 불공정한 과세다. 증권업계가 연기 또는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는 금융투자소득세도 문제투성이다. 예정대로 내년 1월 시행 땐 대량의 자금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가 주가 하락을 초래할 게 뻔하고, 이는 일반투자자에도 큰 피해를 줄 것이란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물론 올해도 확실시되는 세수 펑크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만 올해 세수 부족은 지난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업 실적 악화에 따른 법인세 급감 때문이다. 올해는 정부가 성장률을 2.2%에서 2.6%로 올렸듯이, 핵심인 반도체의 회복이 뚜렷하고 그에 따른 낙수 효과도 예상되는 만큼 내년 법인세 세수는 한결 개선될 것이다.

이런 사정이 아니더라도 경제를 살리려면 세금 부담을 줄여 기업·가계를 지원하는 게 당연하다. 기재부는 세수 감소를 부를 세제 개편을 꺼리지만, 문제가 있는 세금은 바로잡는 게 최우선이다. 보완은 그다음이다. 세수 펑크 대책은 국민 모두에 1인당 몇십만 원을 주는 ‘보편적 지원’ 등 각종 현금 살포부터 접는 게 출발점이다. 보유세·기업세를 잔뜩 올려선 징벌세제를 꽉 붙든 채 재정을 펑펑 쓰다가 나라 경제를 망친 문재인 정부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낡고 무거운 세금이 너무 많다. 민생을 살리고 기업을 더 뛰게 할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

문희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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