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인기는 떨어지는데…"빼도 박도 못해" 장수생의 눈물 [현장+]

성진우 2024. 7. 1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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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 논란에 매년 떨어지는 공무원 시험 경쟁률
장수생 "빼도 박도 못해"…사기업 준비도 어려워져
생활비 부담에 '야간 편의점 알바' 자리 인기
일각에선 '공시 낭인' 우려도
8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공무원 시험 학원 입구 / 사진=성진우 기자


"공무원 인기가 줄었다고 포기할 수 있나요. 사기업을 준비하기엔 너무 멀리 돌아왔어요."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공무원 학원을 다니고 있는 20대 장모 씨는 "7급 일반행정 시험을 5년째 준비하고 있는데 요즘이 특히 더 힘들다"며 이같이 말했다. 장씨는 "집에는 3년째 거의 안 가고 있다. 가족, 지인들과 만남 자체가 큰 부담이기 때문"이라며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져도 이젠 이 길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낮은 임금 등 이유로 '철밥통' 공무원 공채시험의 인기가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시험을 준비한 장수생들은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한다. 이미 나이가 찬 것은 물론이고, 공무원 시험 특성상 일반 회사가 요구하는 스펙도 갖추지 못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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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안정적인 직장이란 점에서 선호도가 높았지만, 최근 경쟁률은 점차 하락하고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9급 공무원 공채시험의 평균 경쟁률은 21.8대 1로 나타났다. 1992년, 19.3대 1을 기록한 이후 32년 만에 최저치다. 경쟁률이 작년 대비 소폭 상승한 7급 공무원 역시 지원자 수는 2021년부터 매년 두 자릿수로 감소해왔다.

동시에 '장수생'은 늘고 있는 추세다. 올해 지원자 평균 연령은 30.4살로, 처음으로 30살을 넘겼다. 연령대별로도 30대 지원자는 지난해 31.3%에서 올해 35.6%로 늘었다. 반면 올해 20대 지원자는 여전히 가장 비중이 높지만, 작년 56.8%에서 53.6%로 감소했다.

경쟁률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임금으로 풀이된다. 행정연구원의 '2023년 공직생활 실태조사'에서 이직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이유로 가장 많은 꼽힌 것은 '낮은 보수'였다. 실제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 따르면 올해 9급 초임 월 급여는 세전 222만2000원이다. 최저시급으로 환산한 월급보다 겨우 16만1260원 많다.

따라서 공무원 시험 장수생에겐 '박봉인 공무원 시험 준비를 왜 아직까지 하냐'는 식의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8일 오후 3시께 노량진 M학원 앞에서 만난 30대 최모 씨도 "돈과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느껴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수험 생활을 버텨왔다"며 "공무원에 대한 인식이 옛날 같지 않아 주변에서 주는 눈총이 많이 신경 쓰인다"고 말했다.

8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공무원 준비생들 / 사진=성진우 기자


최씨는 올 상반기 9급 경찰 시험에 면접 전형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최종 낙방했다. 그는 "이제 정말 그만두고 싶은데 공무원 시험 준비 말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상황"이라며 "학원가에서 '공시 탈출은 지능 순' 같은 말이 나오면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다시 하반기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실제로 공무원 시험 과목을 고려하면 장수생이 뒤늦게라도 일반 사기업을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령 9급 경찰 공무원의 시험 과목은 공통 과목(국어, 영어, 한국사)을 제외하고 형사법, 경찰학, 헌법이다. 각종 자격증, 대외활동 등을 요구하는 일반 사기업 채용 과정과 괴리가 크다.

그나마 영어와 한국사 과목은 토익, 한국사 검정시험 등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일반 사기업에선 이 정도 자격증만으론 서류 통과가 쉽지 않다. 작년 공무원 시험을 포기한 20대 박모 씨는 "대학 졸업반부터 합쳐 4년간 열심히 공부했는데 공시생 생활을 끝내고 나니 남는 게 없더라"라며 "뒤늦게라도 각종 자격증을 따고 있는데 앞날이 더 어두워진 느낌"이라고 호소했다.

8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의 한 공무원 학원 광고판 / 사진=성진우 기자


수험 기간이 늘어지면서 불확실한 미래만큼이나 힘든 점 중 하나는 '생활비'다. 때문에 많은 장수생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지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알바)를 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공부와 병행할 수 있는 노량진 내 주말 야간 시간대 편의점 알바 자리는 공시만큼이나 경쟁률이 치열하다.

장씨는 "노량진에서 제대로 된 알바 자리를 찾는 것도 축복"이라며 "올초 우연히 구직애플리케이션(앱)에서 편의점 알바 공고를 보고 바로 전화했다. 등록된 지 1시간이 채 안 됐는데 이미 사람을 구했다고 해 황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노량진서 공시 준비 중인 아는 형은 여러 차례 구직에 실패하자, 한 이벤트 회사에서 3~4시간 단기 알바를 나가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비정상의 정상화' 속 남은 과제인 '공시 낭인'들

전문가들은 최근 공무원 경쟁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두고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높아진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2011년 93.3대 1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기도 했다. 

올해 9급 공채시험 지원자가 10만3597명이고 대부분 20대 중반에 시험 준비를 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30대 이상 장수생은 대략 3만6000여명으로 추정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쟁률이 떨어진 상태에서 시험에 떨어지는 건 개인의 문제이고, 실제로 과거 공무원 경쟁률 자체가 심각하게 높았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수년 간의 경력 단절로 인해 장수생들이 과연 시험을 포기한 이후에도 정상적인 취업 활동이 가능할 지 의문이다. 마치 과거 로스쿨이 생기기 전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던 '고시 낭인'과 비슷해 보인다"고 말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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