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동네 나선 촘촘한 ‘돌봄’…‘폐교 위기’ 농촌 초등학교 살렸다
늘봄학교 이어 주민자치회가 ‘마을학교’ 운영
광석농협·자율방범대 등도 발벗고 돌봄 지원
학생수 부족으로 통폐합 위기에 처했던 한 농촌 학교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커지고 있다. 충남 논산시 광석면에 있는 광석초등학교(교장 김주현) 얘기다.
광석초는 여느 농촌 학교와 마찬가지로 학생수가 급감했다. 신입생이 2021년 4명이었고, 2022년과 2023년에는 2년 연속으로 겨우 1명씩 입학한 탓이다. 이에 인근 왕전초등학교와 통합하는 방안까지 논의됐다. 전교생이 50명이 안되면 ‘적정규모대상학교’로 지정돼 통합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던 광석초가 올해 극적인 반전을 이뤘다. 신입생 수가 무려 32명에 달한 것. 이중 26명이 논산 시내권에서 원정 입학했다. 이에 따라 광석초 전교생은 현재 55명까지 늘었다. 통합 논의는 없던 얘기가 돼가고 있다. 등하교 시간과 쉬는 시간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학내에 가득찬다.
광석초가 통합 위기에서 기적 같이 벗어난 이유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손잡고 학생들의 돌봄에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광석초의 ‘늘봄학교’와 광석면 주민자치회(회장 김권중)의 ‘마을학교’가 연계한 ‘마을참여형 늘봄학교’가 바로 그것이다. 광석초 학부모들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촘촘한 돌봄 덕분에 걱정 없이 생업에 종사한다.
마을참여형 늘봄학교는 오전 8시부터 1시간 가량 독서(저학년)와 놀이체육(고학년)으로 시작된다. 부모가 농사일로 바쁘거나 출근 시간이 빨라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학교에 일찍 보내야 하는 경우가 대상이다. 현재 45명 가량이 오전 돌봄에 참여한다. 광석초는 아침을 거르고 아침 들봄에 참여하는 아이를 위해 간편식으로 식사까지 챙겨준다.
정규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오후 4시까지 오후 돌봄을 받는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이 시간에는 무려 28개에 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개개인 맞춤형 늘봄학교’를 표방하는 광석초는 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올해 락밴드·디지털드로잉·뉴스포츠 등의 프로그램도 신설했고 원어민강사가 지도하는 영어 수업도 한다.
하교 시간이 빠른 1학년의 경우 1시부터 피아노·바이올린·농장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돌봄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오후 4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진행되는 저녁 돌봄에는 주민자치회가 운영하는 ‘마을학교’가 나선다. 저녁 돌봄을 받는 36명은 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주민자치센터로 손에 손을 잡고 도보로 이동해 간식을 먹고 2시간 가량 수업을 받은 후 저녁식사를 한 후 귀가하게 된다. 저녁 돌봄에는 광석초 학생뿐만 아니라 인근 왕전초·원봉초·광석중 학생과 유치원 아이들까지 참여하고 있다.
다른 학교에서 광석초로 전학왔다는 김모양은 “집 근처 학교를 다닐 때는 2시반이면 수업이 끝나 피아노와 영어학원에 다녔는데, 광석초에 오고 나서 다 끊었다”며 “돌봄 교실에서 저녁시간까지 친구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특히 눈여겨 볼 점은 저녁 돌봄을 위해 온 마을이 나선다는 것이다. 광석농협은 딸기·수박 등 간식을 지원하고, 자율방범대는 차량을 운행해 중학생의 야간 귀가를 돕는다. 이장단협의회는 마을학교에 후원금을 내고 있고 아이들이 먹는 쌀을 내놓는다. 광석면사무소는 주민자치센터 공간을 제공했고 학생 개인 사물함을 설치해줬다.
이 밖에 의용소방대·생활개선회·귀농귀촌협의회·빛돌번영회·100세 건강위원회·새마을협의회 등 지역의 거의 모든 조직이 내 아이를 돌보듯 마을학교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원한다.
논산백제병원은 광석초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아이들이 다칠 경우 신속한 의료지원을 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광석초 총동문회와 주민자치회는 통큰 발전기금을 쾌척해 올해 입학한 학생들에게 1인당 1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김주현 교장은 “학교의 역량만으로는 아이들을 저녁 시간까지 빈틈없이 돌보는 데 한계가 있다”며 “온 마을, 특히 주민자치회의 마을학교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에게 ‘질 높은 돌봄’를 제공함으로써 학부모의 육아 부담을 덜어드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광석초는 저녁까지 이어지는 돌봄으로 인해 등하교 차량을 하루에 2번씩 운행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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