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잘 던졌으면, 다만 붙진 말자"…시라카와의 두산행, 적장을 초월한 이숭용 감독의 진심 가득한 응원 [MD인천]
[마이데일리 = 인천 박승환 기자] "다른 팀이랑 할 때 잘 던져서 승리 많이해"
SSG 랜더스 이숭용 감독은 9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팀 간 시즌 8차전 홈 맞대결에 앞서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이 매우 유력한 시라카와 케이쇼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시라카와는 지난 5월 22일 180만엔(약 1544만원)의 계약을 통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해 있던 로에니스 엘리아스의 단기 대체 외국인 선수로 SSG 랜더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올해부터 KBO는 외국인 선수가 6주 이상의 부상을 당할 경우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대체 외국인선수 영입 제도'를 도입했고, 엘리아스가 부상으로 이탈하게 되자 과거 일본 독립리그인 도쿠시마 인디고삭스에서 뛴 경험이 있는 하재훈의 도움을 받아 시라카와를 영입했다.
일본 신인드래프트에서 프로 구단의 선택을 받지 못해 독립리그 유니폼을 입고 있던 시라카와에게는 천금같은 기회였고, 지난달 1일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첫 선을 보였다. 당시 시라카와는 4개의 볼넷을 내주며 불안한 투구를 펼쳤으나,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전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두 번째 등판이었던 롯데전에서는 1⅓이닝 만에 무려 7개의 안타를 맞는 등 8실점(7자책)으로 처참하게 무너졌지만, 세 번째 등판에서는 또 달랐다.
시라카와는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 5이닝 1실점(1자책)의 투구를 펼쳤고, 이어지는 NC 다이노스전에서는 6⅓이닝 동안 무려 10개의 삼진을 솎아내는 등 2실점(2자책)으로 역투했다. 그리고 SSG와 결별을 앞둔 마지막 등판에서 KT 위즈를 상대로 5⅓이닝 5실점(3자책)을 기록했고, 5경기에서 2승 2패 평균자책점 5.09의 성적을 남겼다. SSG는 엘리아스와 시라카와를 둔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심 끝에 엘리아스와 동행을 택했고, 지난 2일 시라카와와 계약을 종료했다.
그런데 여기서 두산 베어스가 등장했다. 두산 또한 브랜든 와델이 어깨의 불편함을 호소하며 전열에서 이탈하게 되면서 고민거리가 생긴 까닭이었다. 회복세가 나쁘지 않다곤 하지만 브랜든이 마운드로 돌아올 때까지는 6~7주가 필요한 상황. 이에 두산이 SSG와 계약이 만료된 시라카와를 비롯해 KBO리그에서 56승을 수확했던 에릭 요키스를 브랜든의 단기 대체 외국인 선수 후보로 낙점했다. 두 선수의 장단점은 확실했다.
시라카와의 경우 롯데전을 제외하면 평균자책점은 2.49로 나쁘지 않았고, 따로 비자를 발급받지 않아도 두산에서 선수로 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상대 타선이 2바퀴 이상을 돌았을 때 공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혔다. 요키시는 KBO리그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 매력 포인트지만, 지난해 키움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은 이후 소속팀을 찾지 못하면서 실전 감각이 떨어졌고, 두산과 계약을 맺을 경우 비자 발급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흠이 있었다.
이에 두산과 이승엽 감독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최대한 많은 기간 선수를 활용할 수 있는 시라카와를 영입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두산과 시라카와의 계약은 10일 오전 중으로 발표가 날 예정. 그리고 10일 중으로 선수단에 합류해 14일 잠실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두산 유니폼을 입고 데뷔전을 치를 전망이다.
시라카와의 두산행이 임박한 가운데 이숭용 감독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사령탑은 9일 경기에 앞서 시라카와에 대한 질문에 "안 그래도 (이승)엽 감독님과 올스타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비자 문제가 가장 크다고 이야기를 하더라"며 "지난번에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시라카와가 잘 던졌으면 좋겠다. 이건 진심이다. 하지만 우리와 경기에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농단 반이다. 다른 팀과 할 때 잘 던져서 승리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승엽 감독과는 올스타전에서 어떠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이숭용 감독은 "'좋은 투수'라고 사실 그대로 이야기를 했다. '직구에 힘도 있고, 릴리스포인트도 좋고, 커브도 두 가지를 사용하고, 스플리터도 괜찮다. 불펜 피칭에서의 퍼포먼스만 나올 수 있다면, 나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잘 던져줬다"고 짧지만 한솥밥을 먹었던 시라카와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다. 적장이지만, 시라카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이숭용 감독의 진심이었던 셈.
이숭용 감독은 시라카와가 두산 유니폼을 입는다면, SSG 때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유는 KBO리그에서 가장 넓은 잠실구장을 쓴다는 점 때문이다. 사령탑은 "두산을 가면 아무래도 구장이 넓다 보니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찌 됐든 SSG에서 경력을 쌓은 것이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잘 던질 것 같다"면서 "다만 우리와만 붙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피곤해진다. 만약 우리와 붙으면 또 엘리아스와 맞대결이 될 수도 있다. 그 경기는 이겨야 본전이 아닌가"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이숭용 감독은 '국민타자' 이승엽 감독이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뒀던 만큼 시라카와의 두산행이 추후 일본프로야구 구단과 계약을 맺는데도 좋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승엽 감독이 요미우리에서 뛰었다. 아무래도 잘 던지면 이야기를 해주지 않겠나. 물론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나도 팀에 일본인 코치들이 있지 않다. 그래서 좋게 이야기를 해서 NPB 구단에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살짝 했었다"고 덧붙였다.
비록 유니폼을 바꿔입게 됐지만, 시라카와를 향한 이숭용 감독의 바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심. 前 소속팀 동료들의 응원까지 받는 시라카와가 과연 두산에선 어떠한 성적을 남기게 될까. 완벽할 순 없지만, 일단 지금까진 두 구단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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