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건축설계의 고단함에 관한 소고

2024. 7.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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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모든 생명체는 끊임없는 욕구와 갈망에 시달리며, 존재 자체를 고통의 연속으로 만든다고 했다.

인간의 삶은 동물의 원초적 욕망이외에도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부가적인 욕망의 추구와 그로 인한 고통의 반복으로 구성돼 있다.

사람들은 건축을 통해 부를 생성하고, 축적하며 증여하려 하며, 이는 건축의 기본적인 기능 이외에 사회, 경제, 문화, 정치적인 측면이 건축에 반영돼야 함을 의미한다.

이에 더불어 건축은 관계지향적인 드러냄의 욕구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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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제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쇼펜하우어는 모든 생명체는 끊임없는 욕구와 갈망에 시달리며, 존재 자체를 고통의 연속으로 만든다고 했다. 인간의 삶은 동물의 원초적 욕망이외에도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부가적인 욕망의 추구와 그로 인한 고통의 반복으로 구성돼 있다. 욕구의 충족은 순간적인 만족 후 새로운 욕구의 발생으로 이어진다.

건축은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인 의식주를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건축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수단을 넘어서, 시대의 발전에 따른 다양한 부가적인 욕구와 갈망을 흡수하며 성장해 왔다. 이러한 욕구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복잡한 이해관계들을 만들어내며, 건축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복잡계로 진입했다.

전통적인 주거환경에 대한 충족 이외에도, 사람들이 더 편안하고 안전한 생활 환경을 원하게 되면서 건축은 많은 것을 요구받고 있다.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서, 삶의 질을 높이고 생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기술들이 건축에 반영돼야 한다. 또한, 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건축은 중요한 투자 수단이 되었다. 사람들은 건축을 통해 부를 생성하고, 축적하며 증여하려 하며, 이는 건축의 기본적인 기능 이외에 사회, 경제, 문화, 정치적인 측면이 건축에 반영돼야 함을 의미한다. 이에 더불어 건축은 관계지향적인 드러냄의 욕구를 반영한다. 건축물은 그 자체로 개인이나 기업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멋진 건물, 좋은 집은 그 소유주나 사용자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건축가 입장에서 이러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건축가가 자신의 건물을 기획, 금융, 설계 및 시공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건축이라는 욕구의 실타래는 건축주, 시행사, 시공사, 협력업체, 허가권자, 금융기관 등 이해관계자들의 욕구를 흡수하며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진다. 이에 건축가는 상충하는 이해관계자들의 욕구를 조율하고, 모두가 적당히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야만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고백건대, 나의 건축설계의 첫 경험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구한 첫 직장에서의 첫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다양한 관계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반영하는 과정에서 미처 만족시키지 못한 다른 요구조건을 발견하게 되는 일들이 잦아지며, 이는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수정과 검증의 반복이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건축분야는 타 산업에 비해 기술적인 도입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지속적인 수요를 예측할 수 없는 주문생산 방식의 산업이기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투자가 어렵고, 발생하는 수요에 대해 인력 집약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불어 시제품을 생산할 수 없는 산업적 특성으로 인해, 설계 과정에서 많은 대안에 대한 다양한 관점에서의 깊이 있는 검토가 필수적이다. 이는 보통 무수한 반복작업과 시행착오로 귀결되며, 우리의 건축가들은 오늘도 고통을 감내하며 묵묵히 시시포스의 언덕을 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펜하우어는 고통이 삶의 일부이며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고통이 너무 비관적이거나 염세적이라면, 고단함은 보다 삶의 일부처럼 여겨지지는 않을까? 건축설계의 과정에서 겪는 고단함 역시 건축가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눈부신 기술적인 진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로켓, 자율주행이 이루어 지고 있는 21세기의 건축가들은 혹시 피할 수 있는 고통을 고단함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우제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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