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라이즈 블리딩-범죄 스릴러 또는 비범한 사랑 이야기[시네프리뷰]
2024. 7. 10. 06:01
로즈 글래스 감독은 다양한 감독의 작품을 레퍼런스로 선정해 제작진과 출연 배우들에게 공유했다고 전해진다. 이 영화가 단순히 특정 시대의 장르영화를 넘어서는 좀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작품으로 읽힐 수 있는 확장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단서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여러 측면에서 독특한 양상을 보이는 개봉작이다.
일단 지난 7월 4일 시작된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개봉일을 목전에 두고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것은 아예 없지는 않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다. 어쨌든 영화제 티켓은 예매 오픈 19초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는 홍보사의 전언이다.
또 다른 특이점은 영화에 조연인 데이지로 출연한 안나 바리시니코프가 초대돼 레드카펫을 밟았고, 이후 영화제 기간 관객과의 대화, 정식 개봉과 관련한 홍보 행사를 병행한다는 점이다. 이 역시 감독이나 주연급 배우들이 홍보를 위해 내한하는 보통의 경우와 비교해 흔치 않은 형태다.
연출을 맡은 로즈 글래스는 1990년생으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런던 칼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에 재학하며 다수의 단편영화를 통해 내공을 쌓았다.
2019년 발표한 장편 데뷔작 <세인트 모드>(Saint Maud)는 토론토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런던 비평가협회상 등 유수의 영화제에 초대, 수상했다. 글래스 감독은 단번에 주목할 만한 감독에 이름을 올렸다.
<세인트 모드>는 앞서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다소 무리로 보이는 개막작 선정을 고집한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된다.
사랑이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헬스장에서 매니저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가던 루(크리스틴 스튜어트 분). 어느 날 운동에 열중하고 있는 새로운 얼굴 잭키(케이티 오브라이언 분)와 눈이 마주치고 둘은 단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 서로를 지켜주려는 두 사람의 헌신은 걷잡을 수 없는 폭력으로 변질한다.
마치 극 중에서 잭키의 뇌와 근육을 통제 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 것처럼 영화는 단순한 범죄물의 수위를 넘어 폭주한다. 더불어서 반복해 관객들에게 질문한다. 과연 이들에게 이성의 끈을 놓게 만드는 것은 ‘약물’일까, ‘사랑’일까?
외모부터 관객들의 이목을 휘어잡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케이티 오브라이언을 비롯한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와 호흡은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자 볼거리다.
영화는 198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1980~1990년대를 풍미했던 저예산 범죄 스릴러를 추억하게 만든다. 당시 미국 서부의 황량한 사막 어딘가의 소외된 마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스릴러들은 창의가 차고 넘치지만 검증받지 못한 신인 감독들이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선택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같았다.
시대적 조류가 녹아든 새로운 범죄 스릴러
이런 영화 대부분은 사건의 시작에 있어 표면적 소재로 ‘금전’을 중요하게 부각시킨다. 일확천금을 손에 넣기 위한 인간군상이란 설정은 어떤 관객이라도 인물에 공감하고 마음을 열게 만드는 마법의 열쇠와도 같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는 갈등의 본질은 결국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치정과 시기, 질투가 난무하는 말초적 욕망이다.
존 달 감독의 <배반의 도시>(Red Rock West·1993), 폴 토머스 앤더슨의 <리노의 도박사>(Hard Eight·1996), 스콧 레이놀즈의 <스트레인저>(When Strangers Appear·2001)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코엔 형제의 데뷔작 <분노의 추격자>(Blood Simple·1984)는 <러브 라이즈 블리딩>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글래스 감독은 이외에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나 폴 버호벤, 쓰카모토 신야, 빔 벤더스 등 다양한 감독의 작품을 레퍼런스로 선정해 제작진과 출연 배우들에게 공유했다고 전해진다. 이 영화가 단순히 특정 시대의 장르영화를 넘어서는 좀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작품으로 읽힐 수 있는 확장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단서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나름의 창의와 열정이 넘친다. 아쉽게도 20년 전쯤에 나왔다면 희대의 걸작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만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제목: 러브 라이즈 블리딩(Love Lies Bleeding)
제작연도: 2024
제작국: 영국, 미국
상영시간: 104분
장르: 범죄, 로맨스
감독: 로즈 글래스
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케이티 오브라이언, 안나 바리시니코프, 에드 해리스
개봉: 2024년 7월 10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한국을 방문한 기대주 안나 바리시니코프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러브 라이즈 블리딩>을 대표하는 게스트로 극 중 데이지를 연기한 안나 바리시니코프가 내한했다. 주인공인 루와 잭키, 두 사람의 범상치 않은 사랑 사이에 끼어들어 치명적인 위기를 조장하는 조연이다. 나름 중요한 역할이지만 감독이나 주연이 아닌 배우가 홀로 영화를 대표해 초대된 것 자체가 흔치 않은 경우라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92년생으로 데뷔 후 주로 TV 시리즈에서 활약하고 장편영화는 소극적이었던 탓에 한국의 관객들에게는 더욱더 낯설게 느껴질 만도 하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유명무용가이자 1980년대 흥행작 <백야>(White Nights·1985)의 주연을 맡았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좀더 호기심이 발동한다.
무용 전문가인 부모덕에 어려서부터 발레를 배웠지만, 너무 외향적인 성격 탓에 그만두고 여섯 살 때 오른 연극무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지금껏 그가 출연한 6편의 장편영화 중에서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2016)는 특별히 그의 존재감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품으로 꼽힌다.
이번 작품에서도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좌충우돌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백치미 넘치는 인물을 연기한다. 이를 통해 단순히 기괴한 범죄물에 머물 수 있었던 이야기를 다채롭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앞으로 어떤 변신을 보여줄지 주목할 만하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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