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앞 혹은 맨뒤… 장애인들에겐 너무 높은 스크린

윤기백 2024. 7.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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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타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휠체어를 탄 상태로 서울 시내 한 멀티플렉스 극장을 방문한 장애인 A씨는 자신을 '자칭 영화광'이라고 소개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 편의증진보장법'(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에 따르면 영화관은 관람석의 1% 이상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장애인(휠체어 전용) 관람석을 설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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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멀티플렉스]③
극장 상영관 내 관객석.
[이데일리 스타in 윤기백 기자] “휠체어를 타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휠체어를 탄 상태로 서울 시내 한 멀티플렉스 극장을 방문한 장애인 A씨는 자신을 ‘자칭 영화광’이라고 소개했다. 교통사고 후 하반신이 마비되기 전까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극장에서 영화를 볼 정도였다.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그의 극장 방문은 연중행사처럼 ‘큰일’이 됐다. 영화관 대부분은 쇼핑몰에 있어 상영관까지 가는 길이 복잡한데다 장애인 관람석 또한 없는 곳이 많아 선택의 폭이 줄었기 때문이다. A씨는 “독립영화 같은 작은 영화를 상영하는 관에는 장애인 관람석이 거의 없다”며 “조금만 더 개선한다면 장애인의 영화 관람도 한결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 편의증진보장법’(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에 따르면 영화관은 관람석의 1% 이상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장애인(휠체어 전용) 관람석을 설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개별 상영관’이 아닌 ‘전체 상영관’을 기준으로 보면 장애인 관람석이 없는 상영관이 아직도 많다고 지적한다. 지난 2월 가수 강원래가 영화 ‘건국전쟁’을 관람하러 영화관에 방문했다가 장애인 관람석이 없어 돌아간 일화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씨네Q 등 국내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은 전체 상영관 기준 1% 이상을 장애인 관람석으로 설치해 운영 중이다. 실제로 서울 영등포구 소재 한 영화관의 좌석 구성을 분석한 결과 전체 3022석 중 34석이 장애인 관람석이다. 전체 상영관 수의 1%인 30.22석을 웃도는 수치다.

일부 상영관은 장애인 관람석이 1% 이하이거나 아예 장애인 관람석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 구로구 소재 한 멀티플렉스 극장의 경우 장애인 관람석이 권고치의 2배를 웃돌았지만, 전체 상영관 5개 관 중 2개 관에는 장애인 관람석이 없다.

서울의 한 영화관 전경. (사진=연합뉴스)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전 상영관’에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공간을 1% 이상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또 이들을 위한 경사로나 승강기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을 법제화했다. 특히 영국은 상영관 별로 최소 4% 이상의 장애인석으로, 프랑스는 장애인석을 맨 앞줄에 배치한다면 스크린 각도까지 조정해야 한다.

국내는 사정이 다르다. 국내는 개별이 아닌 전체 상영관을 기준으로 한다. 이마저도 영화관 맨 앞좌석이나 뒷자석에 배치해 관람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고 있다. CJ CGV 관계자는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 시정권고에 따라 개별 상영관 좌석 수의 1% 이상을 설치·이행하고 있다”며 “물리적으로 구조 변경이 어려운 일부 상영관이 있지만 차례대로 리뉴얼 등을 통해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선 시청각 장애인의 관람권 증진을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를 주축으로 ‘가치 봄 상영회’(시청각 장애인 위한 한글 자막·화면 해설 상영 서비스), 수어 동시통역 상영, 스마트 글라스(장애인·외국인·다문화 관객 위한 다국어 자막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영화 ‘파묘’, ‘시민덕희’, ‘괴물’ 등이 가치 봄으로 상영됐고, ‘3일의 휴가’와 ‘미나리’ 등이 수어 동시통역으로 상영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 영화관 관계자는 “멀티플렉스와 독립예술영화관, 장애인 단체 등과 함께 관련 협의체를 운영하면서 시청각 장애인의 동반 관람 장비의 비치와 사용에 대한 논의를 지속해서 해나가고 있다”며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상영작 선정 및 편성은 한국농아인협회 요청을 받아 수요를 파악한 뒤 상영관에 편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기백 (giba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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