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기관은 정말 주가의 향방을 알고 살까? : 上편 [이환주의 개미지옥]
원인 모를 증상으로 몸이 아플 때 우리는 병원에 간다. 의사와 마주 앉아 구체적으로 증상을 설명하고 몇 가지 검사를 받은 뒤에 의사의 진단이 내려지기를 기다린다. 찰나의 짧은 순간, 별거 아니겠지 싶다가도 돌이켜 생각해보니 최근의 과한 음주와 과로, 스트레스로 무리했던 일이 떠오른다. 혹시나 생각보다 심각하면 어쩌지하고 불길한 생각이 들 때 의사의 입이 열리고 진단명이 나온다. 다행히 심각한 병명은 아니다. 환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현재의 내 상태를 진단해 하나의 사실(과로)을 전달해준 의사가 마치 하느님처럼 대단하게 여겨진다.
의사 앞에 선 환자는 마치 판사 앞에 선 죄수처럼 의사를 절대적인 어떤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의사를 찾은 환자는 중대한 생사의 기로에서 매우 중요한 판단을 의사에게 맡겨 놓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상황을 다르게 살펴보면, 의사는 그가 학습한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환자에게 돈을 받고 의료 행위를 제공하는 한 명의 직업인에 불과하다.
사족이긴 하지만 국내 최고의 대학병원에서 조차 비공식 오진율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다고 한다.(수년 전 한 국책연구기관의 강의에서 들었던 내용이다) 의료행위도 사람이 하는 일인만큼 '휴먼 오류'는 피할 수 없다. 최근 사회면을 장식하는 뉴스를 보면 불법적으로 마약을 판매하거나, 수면 상태인 환자를 성폭행하는 의사도 있는 등 그들 역시 학창시절 공부를 매우 잘했던 한 명의 직업인일 뿐 성인 군자이거나 특별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다만 국가가 공인해준 의사라는 전문 직업인으로 그들이 다른 그 누구보다 의료행위를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남는다.
한 꺼풀 벗겨 놓고 보면 다른 직업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필자가 택한 기자라는 직업인도,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인이나 고위직 공무원도, 심지어 한 사람의 인생에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판사도 선입견 없이 살펴보면 '크게 특별한 건 없다'는 게 12년 기자 생활의 결론이다. 다만 직업 자체의 특별함은 없어도 그 와중에 묵묵하고 특별하게 열심히 하는 '일부 양심적 개인'은 분명히 존재한다. 대다수가 본인의 영리에만 관심이 있을 때, '일부 소수(동어 반복 강조)'는 윤리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문제는 이런 깨어있는 양심의 사람들도 훨씬 더 많은 다수의 이기적 무리에 둘러싸이게 되면 금방 '썩어 버린 사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삼천포 근처 이천포 부근까지 샜는데 말하고자 하는 요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무지로 인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절대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지와 정보의 비대칭성을 거둬내고 보면 사실 그들 역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재림 감독의 영화 '더 킹'에서도 앞서 언급한 '우상의 장막'이 찢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인 박태수(조인성)는 건달인 아버지가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검사에게 싹싹 비는 모습을 보고 검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검사가 된 그는 검찰의 핵심부서, 핵신인물과 인맥을 쌓아 가며 승승장구 한다. 영화 속에서 검사들은 '캐비닛'속 범죄 파일을 무기로 정치에 개입하며 '왕'을 만든다는 착각에 빠진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국민은 개 돼지'라 칭하며 스스로를 킹 메이커라 생각한 논설위원이 떠오른다.
하지만 막강한 공권력을 쥔 그들(검사)조차 누가 '왕'이 될지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그들은 어느쪽 편에 서야 할지 알 수 없어 무당을 불러다 놓고 굿을 하며 누가 대통령이 될지 찍어달라고 한다. 초엘리트 검사들이 무당과 함께 굿을 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우상의 장막'이 찢어지는 것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씁쓸함과 쓴웃음이 나온다. 죄가 있는 것으로 의심되면 국회의원이든 기자든 공무원이든 구속시키고, 구치소에서 항문 검사를 받는 치욕을 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그들이지만 그들 역시 미래를 예견할 수는 없어 무당에게 의지 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명령 내리기 좋아하는 거 같지? 인간이라는 동물은 안 있나,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 주길 바란다니까?"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의 대사다. 조직 생활에서도, 주식 투자에서도 비슷한 거 같다. 다수의 대중들은 뭔가 절대적으로 탁월한 사람이 있어서 한 달 뒤에 급등할 종목을 찍어주길 바란다.
앞서 [이환주의 개미지옥] '멘탈을 지배하는 자...주식을 지배하리라' 편에서 사람들은 집을 사거나, 평생의 반려자를 정하는 등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신발이나 가방을 살 때보다 고민을 하지 않고 '직관(순간의 느낌)'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주식투자도 비슷한데 이상하리만치 아주 작은 소문이나 타인의 말을 듣고도 전재산을 거는 경우가 많다. 학술적으로 연구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중대한 결정일수록 사람들은 그 결정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보험으로 그 결정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보다는 직관에 따르고 그 결과에 대해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훼피하는 메커니즘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혹은 그 결정 자체를 이성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무당)에 기대곤 한다.
주식투자도 마찬가지다. 투자는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다. 하지만 일부 증권 방송을 보면 "제가 무슨 종목을 얼마에 샀는데 이걸 팔아야 할까요?"하고 돈을 주고 상담 받는 경우를 자주 본다. 사실 그 전문가라는 사람도 거기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 그 전문가가 그 정답을 알면 그는 TV 출연료를 받는 대신 그 종목을 계속 샀다 팔았다 하면서 이미 백만장자가 됐을 거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이런 '남한테 의지하고 싶어하는 심리', '나보다 잘 아는 특별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해 알면서도 전화를 하고 고민을 상담하게 된다. 바꿀 수 없거나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부분에 대한 맹목적 믿음은 어쩌면 사람의 본능인가 싶다. 오죽하면 과거 대기업들 역시 사원들을 뽑을 때 최종면접에서 관상가를 대동해 면접을 봤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의사들은 의학분야에서 확실한 전문가이기라도 하지만, 주식에 있어서 전문가는 없다. 이는 '외국인'과 '기관'도 마찬가지다. 개미 투자자들은 '외국인'과 '기관'은 의사나, 무당처럼 무언가를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계속)
#재테크 #서울의 봄 #이환주의 개미지옥 #더 킹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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