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상위 5%, '파업놀이' 나선 전삼노의 몽니
#1. 10년전인 2014년 6월 어느날의 일이다.
한 노동자의 죽음과 함께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노동조합이 '연봉 2200만원'을 받는다며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노숙투쟁을 벌인지 한달쯤 지난 저녁. 그들의 실상이 궁금해 밤 10시쯤 노숙현장의 조합원들을 찾아갔다.
40~50대의 가장이 자비로 사들인 탑차로 삼성전자 고객들을 위해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면서도 연봉 2200만원 밖에 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면 문제가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당시 삼성전자 정규직의 1인당 평균 연봉이 1억원 정도였던 데 비하면 열악했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는 범위를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당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과 삼성전자서비스 사장을 찾아가 "이게 사실이라면 좀 심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다소 까칠한 경영지원실장은 "솔직히 보여줄까요?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라며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에 지급한 명세서를 보여줬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 협력사에 지급하는 임금명목의 돈은 연간 1인당 4000만원(총 2718억원)이 넘었다.
'2200만원 vs 4000만원'의 격차는 도급계약을 맺은 일부 협력사 사장들의 착복 때문이었다는 게 뒤늦게 확인되기도 했다. 기자는 당시 최지성 삼성미래전략실장에게 직접 고용을 해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지 등을 문의한 적이 있다. 여러 어려운 사정이 있었지만 삼성전자는 이후 8000명에 달하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 해 6~7월 그들의 절박함의 결과였다.
#2. 지난 6월 13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버스노숙 투쟁을 하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간부들을 만난 적이 있다. 버스를 찾아가 명함을 건넨 기자가 "노조의 요구 사항이 임금인상과 성과급 기준 변경(EVA->영업이익)이냐"고 묻자 "요즘 그걸 이상하게 쓰는 기자들이 많다"고 했다. "내가 그 중 한명이다"라고 답한 후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자리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날 삼성전자 노무담당 임원과 전삼노 노조 위원장 등이 교섭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파업선언 후 첫 회동을 한 날이라 결과가 궁금해서 찾아간 길이었다. 노사간 대화가 길어져 점심 시간을 훌쩍 넘겨서도 오지 않아 버스 안에 있는 노조간부에게 "영업이익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게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왔다. 그들에게는 10년 전에 했던 것과 같이 기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딱히 없었다.
그런데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파업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10년전의 일이 떠올랐다. 생존권을 얘기했던 협력사의 그들과 '5.1%보다 더 많은 임금인상과 성과급 기준변경, 휴가 1일 추가' 등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생산차질을 일으키겠다는 게 전삼노의 주장이 오버랩됐다.
삼성전자 직원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평균근속연수(12.8년차)를 기준으로 1억 2000만원이다. 대한민국 임금 근로자 상위 4~5% 수준이다. 올해는 여기에 기본급 5.1% 인상을 회사가 제안했고 노사협의회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전삼노가 반대했다. 그보다 더 올려달라는 것이다. 일반국민들은 상위 5%의 연봉을 받는 그 회사에 다니는 일만도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휴가일수를 하루 더 달라는 주장도 '호강에 겨운 소리'라고 한다. 평균 근속 연수만큼 다녔다면 1년의 약 40%인 142일(토·일 104일+설·추석 등 공휴일 15일+연월차 20일+재충전 휴가 3일)이 휴무다. 게다가 한달에 160~168시간(필수근무시간)을 근무하면 월급날(21일)이 있는 그 주의 금요일은 쉴 수 있는 '월중 휴무일'이라는 제도도 지난해 도입했다. 잘만 활용하면 1년에 12일을 더 쉴 수 있다. 합하면 1년 중 42%(154일)가 쉬는 날인데 또 하루 더 쉬게 해달라고 파업을 한다면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나.
근로자가 노동력 제공을 중단하는 것을 무기로 생산차질을 유발해 근로조건 개선에 나서는 행위(파업)는 노동운동의 기본이긴 하다. 그런데 연봉 상위 5%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파업으로 생산차질을 벌인다면 누구도 그들의 편에 서지 않을 것이다. 파업으로 회사를 굴복시켜 임금을 조금 더 올리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회사 혁신에 기여해 더 많은 성과급을 받는 게 좋지 않을까.
이번 파업을 위해 전삼노 홈페이지에는 약 40년 전에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 '파업가', '단결투쟁가'의 악보가 올려져 있다. '흩어지면 죽는다'든지 '망치되어 죽창되어 적들의 총칼 가로 막아도 우리는 가리라' 등 그 가사의 처절함에 비해 전삼노의 절박함은 10년 전의 그들보다 훨씬 빈약해 보인다.
TSMC나 엔비디아, SK하이닉스 등은 AI(인공지능) 시대로 달려가는데 삼성전자 노조는 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과 함께 '부처핸섬'을 외치며 이제 막 '파업놀이'를 시작했다. 이번 1차 파업에 이어 사측 안건이 마음에 안들면 "응 파업이야~~~"를 오는 15일부터 또 외치겠다고 한다. 이러다 정말 30년 가까이 취재해온 삼성전자가 망하는 날을 보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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