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재무 “정부지출 조사” 佛좌파 “연금개혁 취소”… 총선 후폭풍

파리=조은아 특파원 2024. 7.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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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재무 “2차대전 이후 최악 재정”
기존 보수당 정책 뒤집기 시사
佛좌파, 재정부담 공약 강행 태세
S&P, 신용등급 추가 강등 경고

“지난 72시간 동안 ‘총선에서 이기면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상황을 물려받을 것’이란 경고를 확인할 수 있었다.”

4일 열린 총선에서 14년 만에 집권에 성공한 영국 노동당 정부가 임명한 레이철 리브스 신임 재무장관(사진)은 8일 첫 공식 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총선 다음 날 영국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리브스 장관은 “14년 동안 벌어진 혼란과 경제적 무책임이란 유산(정부 부채)을 마주하고 있다”며 당장 보수당 집권 기간 벌어진 정부 지출에 대한 조사부터 착수했다고 밝혔다.

프랑스도 또 다른 의미에서 재정 위기의 불안이 감돌고 있다. 7일 총선을 통해 의회 제1당에 오른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이 연금개혁 취소 등 재정에 심각한 무리를 줄 수 있는 공약을 적지 않게 내걸었기 때문이다. 최근 나란히 총선을 치른 영국과 프랑스가 선거 직후부터 국가 부채의 심각성이 불거지며 경제 성장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 영 노동당, 재정 악화 우려

8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리브스 장관은 주택개발 기준 완화와 해상 풍력발전소 건설 등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통상적으로 진보 정당은 분배를 중시하지만 취임 일성부터 성장을 강조한 것이다.

리브스 장관은 이어 보수당 집권 동안 재정 적자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고 지적하며 “재무부 관리들에게 문제가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부) 지출에 대한 평가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조사가 가을에 발표될 예산에서 ‘어려운 선택’을 위한 길을 열 것”이라며 증세 가능성도 시사했다. 노동당은 선거 기간 중 영국 세수입의 4분의 3가량을 차지하는 주요 세율을 인상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지만,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 증세 기조로 전환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노동당이 집권하자마자 재정 적자를 대놓고 문제 삼은 건,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정부가 쌓아둔 빚마저 심각하게 불어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빚이 늘면 복지는 물론이고 국가 성장을 위한 정책에 재원을 투입하기 힘들다. 빚 상환 부담이 커지니 금리를 제대로 올리지 못해 물가를 억제하기도 어려워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중은 2022년 기준 104.5%다. 세수를 늘리려면 세금을 올려야 하는데 보수당 정권에선 감세를 강조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운영하는 연구소는 경제 성장과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 5년간 500억 파운드(약 88조 원)의 증세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9일 보도했다.

● 프랑스 친기업 정책 중단될수도

프랑스는 총선에서 승리한 NFP의 공약이 벌써부터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국가 재정에 부담 되는 공약이 많다는 분석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어렵사리 추진해온 연금개혁의 폐지 공약이다. 한마디로 연금 수령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춰 연금 재원인 국가재정의 지출을 늦추려던 현 정부의 계획을 멈추겠단 뜻이다. 프랑스의 GDP 대비 정부 부채는 2022년 기준 117.3%로 영국보다 높고, OECD 회원국 평균치(78.6%)마저 웃돈다. 연금개혁이 취소되면 점차 재정에 무리가 생길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8일 “프랑스의 새로운 정부가 대규모 공공 적자를 줄이지 못하고, 부채에 대한 이자가 급증하거나 성장률이 장기간 우리 예상치를 크게 밑돌면 국가 신용등급이 압박을 받을 것”이라며 추가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경고했다. S&P는 이미 5월에 “프랑스 재정적자가 2027년 GDP의 3%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국가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낮춘 바 있다.

미국 CNN방송은 “금융시장에선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했던 친(親)기업 정책도 중단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위기감을 느낀 프랑스 산업협회(MEDEF)는 즉각 성명을 내고 “지난 9년간 성장과 고용 측면에서 성과를 냈던 경제 정책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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