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는 왜 두 개일까…다섯 가지 숨은 이유[고두현의 문화살롱]

고두현 2024. 7. 10.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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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쪽 귀를 크게 열라"
방향감각 키우는 쌍청각 작용
양쪽 정보 합산하는 가산효과
회전·기울기 조절하는 평형감각
남의 말을 깊이 듣는 경청효과
쓴소리까지 들을 줄 아는 '耳順'
시간·정성 들인 만큼 성찰효과도
고두현 시인
미다스왕의 귀(오른쪽)를 당나귀처럼 크게 그린 야코프 요르단스의 그림 ‘판에게 승리하는 아폴론’.


카슨 매컬러스 소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의 주인공은 귀먹은 청년이다. 갑작스레 친구를 잃고 동네 카페에서 외롭게 시간을 보내는 그의 곁으로 몇몇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다. 남모를 비밀 때문에 아내와 소원해진 카페 주인, 떠돌이 급진주의자, 음악으로 탈출구를 찾으려는 소녀, 인권을 생각하는 흑인 의사. 이들은 서서히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는 입술 모양을 열심히 읽으며 얘기를 들어준다. 그러나 눈만 껌벅일 뿐 뭐라고 대꾸를 해줄 수 없다.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음원 위치 찾는 '양이(兩耳)효과'

청각은 오감 중에서 가장 민감한 감각이다. 시각보다 빠르고 섬세하다. 우리 뇌는 시각 정보 변화를 초당 15~25회 정도 인지하지만, 청각 정보 변화는 초당 200회 이상 감지할 수 있다. 청각은 잠자는 중에 깨어 있고, 죽을 때도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다. 외부 음파를 모으는 귓바퀴는 포유동물에게만 있다. 귓바퀴 모양은 사람마다 달라서 ‘제2의 지문’ ‘이문(耳紋)’이라고 부른다. 여권 사진 찍을 때 귀를 드러내도록 하는 게 이런 연유다. 그런데 귀는 왜 두 개일까. 좌우 양 끝에 떨어져 있는 이유는 뭘까. 생물학적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뛰어난 청각 능력을 보여주는 가면올빼미.

먼저 소리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양쪽 귀가 필요하다. 방향감각은 생존과 직결된다. 위험 신호를 듣고 반사적으로 방향을 알아채야 한다. 양쪽 귀 사이의 거리는 17㎝ 안팎. 소리가 각각의 귀에 도달하는 시간과 세기가 다르다. 올빼미 실험에서도 100만분의 1초 차이로 음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 귀로 들으면 강약만 파악할 뿐 방향을 찾기 어렵다. 음의 세기와 도달시간 차이를 포착해 방향을 식별하는 것을 ‘양이(兩耳)효과’ 혹은 ‘쌍청각 작용’이라고 부른다. 입체음향을 재생하는 스테레오의 기본원리와 같다.

다음은 경제성이다. 같은 소리라도 두 귀로 들으면 작은 소리까지 더 잘 들을 수 있다. 양쪽 귀로 들어온 소리 정보를 뇌에서 합친 덕분에 훨씬 많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이를 ‘가산(加算)효과’라고 한다. 마틴 스티븐스의 <감각의 세계>에 따르면 꿀벌부채명나방은 가청 능력이 뛰어나 아주 높은 초음파까지 들을 수 있다. 가면올빼미는 암흑 속에서도 소리만으로 사냥감을 완벽하게 찾아낸다. 사막여우의 유난히 큰 귀는 체온 조절뿐 아니라 먼 곳의 소리를 듣는 데 유리하다.

몸집에 비해 아주 큰 귀를 가진 사막여우.

또 하나는 평형감각이다. 달팽이관에 이상이 생겨 균형감각을 잃으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제자리에 맴돌다 멈춰도 그렇다. 우리 몸의 회전을 감지하는 평형기관은 귀 양쪽에 하나씩 있는 반고리관이다. 이 기관이 림프액의 흐름에 따라 모든 방향의 회전성 운동을 포착한다. 또 몸의 균형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은 수평, 수직 선형 가속도 등의 정보를 중추평형기관에 전달한다. 언덕을 올라갈 때 몸을 앞으로 기울여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게 이 덕분이다.

귓속에도 뼈가 있다. 생김새에 따라 망치뼈, 모루뼈, 등자뼈로 불린다. 이 세 개의 귓속뼈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리를 증폭해 준다. 아주 큰 소리가 갑자기 전달될 때는 망치뼈와 등자뼈에 붙은 작은 근육들이 수축하며 두 뼈가 과도하게 진동하는 것을 막아 청력 손상을 예방하는 역할까지 한다.

이렇게 신비로운 기능을 가진 귀는 인문학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 우리는 손바닥을 오므려 귀에 댄다. 귓바퀴가 클수록 소리가 잘 들리기 때문이다. 귀가 크다는 것은 작은 소리까지 잘 듣는다는 뜻이다. 귀를 기울여 남의 말을 듣는 경청(傾聽)의 힘이 여기에서 나온다. 경청은 단순히 말을 듣는 것을 넘어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까지 이해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마음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것이 경청이니, “내 귀가 나를 가르쳤다”는 칭기즈칸의 일화도 이에 속한다. 내용은 다르지만 귀 큰 왕에 대한 설화는 동서양에 두루 등장한다. 신라의 ‘나귀만큼 큰 경문왕의 귀’와 페르시아의 ‘귀가 긴 이스칸다르(알렉산드로스 대왕)’, 그리스신화의 ‘미다스의 귀’ 등이 엇비슷하다.

 귀가 안 좋으면 목소리 높아져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얼마나 어려우면 선인들도 60세가 돼서야 비로소 “귀가 순해진다”고 했을까. 공자가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했다”고 표현한 ‘이순(耳順)’은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나이를 가리킨다. 육체의 청각 기능이 줄어들수록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귀를 기울이는(傾) 정도를 넘어 공경하는(敬) 마음으로 새겨듣는 ‘경청(敬聽)’의 경지에 오르면 그동안 들리지 않던 것들도 들을 수 있다.

이 같은 경청효과는 자신을 이롭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주인공 모모처럼 온 마음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는 재능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해 있다. 오죽하면 마을 사람들이 무슨 일만 생기면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라고 권했을까. 모모만큼 진정으로 귀담아듣는 일에는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든다. 자기 말만 쏟아내는 사람 앞에서도 시간을 갖고 천천히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이 말하는 중에 스스로 해법을 찾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퀴즈. 청력이 약해질수록 커지는 것은 무엇일까. 귀가 안 좋아서 잘 듣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커진다. 노인들이 대화 중 목청을 높이는 이면에는 이렇게 슬픈 이유가 숨어 있다. 귀는 입이나 눈과 달리 스스로 닫을 수 없다. 말하기 싫으면 입 다물고, 보기 싫으면 눈감지만, 아무리 듣기 싫어도 귀를 닫을 수는 없다. 양쪽 귀가 늘 열려 있는 것은 달콤한 말만 듣지 말고 쓴소리도 들으면서 균형감각을 가지라는 달팽이관의 또 다른 일깨움이 아닐까 싶다. 무심코 고개를 들고 보니, 거울 속에서 두 귀가 바퀴를 오므리며 쫑긋하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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