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너무 오래 원망하지 마세요

최정희 아리랑TV 미디어홍보부장 2024. 7. 10.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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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장례식에 다녀왔다. 상주인 동창이 조문객들을 앉혀놓고 돌아가신 아버지 흉을 보고 있었다. ‘엄마한테 평생 사업 자금만 가져가셨다’ ‘칠순 때 유흥업소 마담이 대형 화분을 보내와 엄마 화를 돋웠는데, 사업 자금이 주로 어디에 쓰였는지 의심이 들더라’ 등이었다. 친구인 우리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 뒤 한 달쯤 지나 조문 갔던 친구들이 다시 모였다. 이번엔 장례식 때와 사뭇 다른 이야기를 했다. 장례를 마치고 부모님이 사시던 집을 정리하다가 베란다에서 개복숭아청을 담가놓은 병을 발견했는데, 그 병에 아버지 글씨로 자신과 오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것. 어머니는 “아버지가 자식들 주려고 산에 다니며 주워 모은 거”라고 했다. 발효되다 못해 다 삭아서 버려야겠다는 걸 어머니한테서 빼앗듯이 집으로 가져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병상에서 아버지가 툭툭 던지듯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고 한다. 친구는 “돌이켜보니 사과이자 유언이었던 것 같다”면서 못내 아쉬워했다.

‘(외국에 사는) 니 오빠는 나 죽으먼 온댜? 같은 비행기 값이먼 나 눈 떴을 때 보는 게 낫지…’ ‘니덜은 나 땜이 정신 바짝 차리구 산겨’ ‘평생 누가 차려준 밥상만 받었는디 죽어서두 그랬다간 더 욕먹지’ 등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제사 같은 건 지내지 말라는 말을 전했던 것이다. 대놓고 사과하거나 요구하지 못하는 충청도 사람의 화법이라고 했다. 어느 순간 우리에게 아버지의 말투까지 따라 하고 있던 친구는 “끝까지 원망하려 했는데 그놈의 ‘개복숭아’ 때문에 그것도 쉽지 않다”며 소주만 들이켰다. 아버지의 사과도 그런 마음을 알아차린 친구도 조금씩 때가 늦은 듯했다.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서로 따듯한 말을 주고받지 않았을까.

우리는 뒤늦게 소중함을 깨닫거나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이해될 때가 있다. 오래전 퇴사한 한 회사 동료는 관계가 껄끄러웠던 예전 동료를 떠올리며 “지금 만나면 밥이라도 사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유한한 삶에 비해 우리는 너무 오래 원망하거나 오해하고 미워하고 사는지 모른다. 너무 오래 뒀다가 삭아서 먹지도 못하게 된 개복숭아청처럼 소중한 사람들과 화해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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