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찾는 사람들] 마음 저울의 눈금을 ‘0′으로 맞추는 법, 오감과 친해져라

김한수 기자 2024. 7. 10.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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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명상 접목한 개척자
김정호 덕성여대 명예교수
"언제 어디서나 명상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말하는 심리학자 김정호 덕성여대 명예교수. 김 교수는 "국어를 정규 교육과정에서 12년 배우는데 평생 써야 할 마음을 다루는 법은 왜 가르치지 않나"라고 말했다./ 전기병 기자

“인간의 뇌는 정보 처리 용량이 작습니다. 용량이 작은 덕분에 다루기도 쉽습니다. 대신 훈련이 필요하지요. 명상, 마음챙김, 긍정심리는 좋은 훈련 방법입니다.”

김정호(66) 덕성여대 명예교수는 30여 년 전부터 심리학과 명상을 접목시켜온 선구자이다. 중학생 때까지는 물리학자가 꿈이었다. 불교 학교인 동국대 부속 중고교에서 불교를 배우면서 ‘물질 세계보다는 마음의 세계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고려대 심리학과로 진학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생 시절에는 방학 때면 재가 불교 지도자였던 백봉 김기추(1908~1985) 선생 문하에서 집중 수행을 하는 등 평생 참선 수행을 해왔다. 심리학 강의에 명상 과목이 거의 없던 2000년대 초반 ‘명상심리학’ 수업을 개설하기도 했다. 한국심리학회장, 대한스트레스학회 이사장, 한국건강심리학회장을 지냈다. ‘스트레스는 나의 스승이다’ ‘마음챙김 명상 멘토링’ ‘’명상‧마음챙김‧긍정심리 훈련(MMPT) 워크북’ 등의 많은 저서를 펴냈고 현재도 유튜브 ‘MMPT 마음공부’ 동영상으로 명상과 긍정심리를 전파하고 있다. 일상 속 명상을 강조하는 김 교수를 지난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MMPT마음공부

-심리학자로서 명상을 접목시킨 계기가 있습니까?

“저는 인간이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하는지에 관한 연구로 박사 논문을 썼어요. 그 후에 저를 돌아보면서 수행과 학문을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이 뚜렷해졌고, 저를 포함해서 ‘인간이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과 서로를 잘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성숙해질 수 있을까’를 연구하게 됐습니다. 대표적인 접근법으로 명상과 마음챙김을 적용했고 나중에는 긍정심리도 도입하게 됐지요. 중학생 이후로 참선 수행을 해온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스트레스는 나의 스승’이란 명제가 선생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어요.

“우리는 흔히 스트레스라면 ‘없으면 좋은 거, 피하고 싶은 대상’ 정도로 생각하지요. 또 ‘스트레스 받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누구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내가 개입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환경 등 바깥의 조건과 나의 동기, 인지, 정서 등 ‘안 조건’이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지요. 그러니 스트레스와 화를 잘 살피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고 성장하게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스트레스가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픽=박상훈

-선생님이 제시한 ‘생각과 감각의 제로섬 관계’라는 그림이 흥미롭습니다. 감각이 늘어나면 생각이 줄고, 생각이 늘면 감각이 줄어든다는 뜻이지요?

“우리 뇌의 정보 처리 용량을 개념화한 그림입니다. 인간의 뇌는 정보 처리 용량이 작습니다. 그래서 멀티태스킹을 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용량이 작다는 건 원죄이자 복음입니다. 뱀이 유혹할 때 이브의 머릿속에 하나님 말씀이 기억났다면 안 따라갔겠죠. 그러면 뭐가 복음일까요? 용량이 작기 때문에 다루기가 쉽다는 점입니다. 물론 잘 다루기 위해서는 수행과 훈련이 필요하지요.”

생활속의 명상을 가르치는 심리학자 김정호 덕성여대 명예교수는 커피를 마시면서도 명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기병 기자

-수행과 훈련의 방법은 명상인가요?

“명상도 수행과 훈련의 한 방법이지요. 뇌는 진공 상태를 싫어합니다. 항상 뭔가로 채우려 하지요. 인간은 행복을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진화했기 때문에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부정적 생각, 남과 비교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생각을 쉬라’고 하면 그 생각 하느라 못 쉽니다. 그렇지만 감각에 집중하면 고통을 잊게 됩니다. (인터뷰하던 카페 천장을 가리키며) 천장을 한번 보세요. 제 말에 따라 천장을 보는 순간 어떤 생각을 했나요? 그냥 천장을 봤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감각이 의식 공간을 채운 만큼 다른 생각은 자연스럽게 내려놓아지는 거지요.”

-명상은 감각과 친해지는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감각은 ‘지금 여기’예요. 이 커피를 보세요. (인터뷰 시작 때의) 뜨거운 맛은 과거예요. 기억입니다. 약간 식은 이 맛은 현재예요. 이건 감각이에요. 그러니까 감각에 내 주의가 가 있을 때 나는 ‘지금 여기’ 사는 거예요. 과거에 후회되는 일, 미래에 오지도 않은 걱정에 주의가 가는 것이 아니고요. 그런 점에서 명상은 감각과 친해지는 것이고, 다른 말로 하면 ‘지금 여기’에 사는 훈련입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감각이 흐릿하다는 점입니다. 밖에 나가도 봄인지 여름인지, 개나리가 피었는지, 하늘이 파란지 못 느껴요. 그저 죽지 않을 정도만 보고 느끼고 사는 거지요. 정보 처리 용량이 제한돼 있는데 고민, 분노를 반추하는 데 정신 자원이 투입되니 감각이 흐릿한 거죠. 감각과 친해지는 훈련을 하면 스트레스가 줄어듭니다. 명상은 불건강한 정보 처리, 특히 반추의 습관을 리셋하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그래픽_조선디자인랩 김영재

-선생님은 ‘명상’ ‘마음챙김’ ‘긍정심리’라는 용어를 각각 구분해서 사용하시지요?

“그렇습니다. 명상이란 용어가 너무 포괄적으로 사용되면서 오남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수행’ 혹은 ‘훈련’이라는 상위 개념 아래 명상과 마음챙김, 긍정심리를 각각 마음을 ‘쉰다’ ‘본다’ ‘쓴다’로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흰 가루가 들어있는 ‘스노볼’ 있지요? 가만히 놔두면 가루는 가라앉지만 흔들면 다시 떠오릅니다. 마찬가지로 명상을 하면 마음을 쉴 수 있지만 어떤 조건이 되면 화나 스트레스는 다시 일어납니다. 화나 스트레스는 내가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비롯되는데 그 방식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음을 쉬고, 보고, 쓰는 ‘명상’ ‘마음챙김’ ‘긍정심리’의 마음 기술이 모두 골고루 양성되고 활용돼야 진정한 수행 혹은 훈련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긍정심리에 좀 더 무게를 둡니다. 마음을 쉬고 보는 것도 결국 잘 쓰기 위해서니까요.”

-선생님은 내 안에 여러 개의 ‘나’가 있다는 ‘마음사회이론’을 말씀하시지요?

“불교에서는 ‘무아(無我)’를 이야기하지만 저는 무한히 많은 ‘나’를 말합니다. 즉 내 마음을 여러 ‘나’들이 모여 사는 하나의 사회로 보는 것이죠. 열등감, 죄의식을 가진 ‘나’도 있고, 이성적이고 잘난 ‘나’도 있고요. 이런 다양한 ‘나’를 ‘1/N’로 인정해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마음 사회의 무대에 자주 올라오는 ‘나’가 있어요. 익숙한 ‘나’죠. 그런데 그 ‘나’는 그 나름의 바라보는 눈이 있어요. 이를테면 우이동에서 보면 오늘도, 내일도 북한산의 모습은 거의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구파발 쪽에서 보면 북한산의 모습이 전혀 달라요. 명상은 그동안 내가 보던 방식을 내려놓고, 새롭게 보는 연습, 훈련입니다. 마음 사회 무대에 출몰하는 여러 ‘나’들을 마음 저울의 눈금으로 비유할 수 있는데, 명상을 할 때 우리 마음의 저울은 0점을 가리키게 됩니다. ‘영점-나’가 되는 겁니다.”

-명상 수업을 진행하셨는데요, 학생들은 어떤 스트레스를 호소하던가요?

“아무래도 취업, 시험 스트레스가 많지요. 그런데 시험이 걱정되면 공부를 하면 됩니다. 문제는 100이라는 정신 자원을 투입해도 모자랄 판에 ‘장학금 못 받으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하며 50을 낭비한다는 겁니다. 명상을 하면 이런 걱정 대신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명상 수업에서는 걱정, 스트레스와 싸우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렛잇비(let it be) 기술도 배우게 되지요.”

생활속의 명상을 가르치는 심리학자 김정호 덕성여대 명예교수.2024.7.4./ 전기병 기자

-’걱정 타임’도 제시하셨어요.

“하루 중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걱정은 그때 몰아서 하자는 것이죠. 걱정을 일방적으로 누르려 하면 더 커져요. 빚쟁이가 왔는데 무조건 돈 없다 하면 그냥 돌아가나요? 며칠까지 해준다든지 뭔가 말미를 주면 믿고 갈 수 있잖아요. 마음 사회 이론으로 보면 걱정하는 ‘나’는 어떤 특정한 동기예요. 그 동기가 좌절될까 봐 염려하는 것이고요. 그 아이에게 ‘지금은 할 일이 있으니 잠시 후에 만나줄게’ 하고 달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명상할 때는 명상만, 일할 때는 일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화가 났을 때 긍정 심리 훈련으로 ‘그-별-이’ 기술도 추천하셨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별일 아니야’ ‘이것이 더 좋을 수도 있어’의 앞 글자를 딴 말로 웰빙을 만들어내는 웰빙 인지 문장입니다. 교수 시절,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강의실에 들어가니 칠판은 앞 시간 강의 판서로 가득 차 있고, 빔 프로젝트는 켜져 있고, 학생들은 모두 고개 숙이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럴 때 ‘그-별-이’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리지요. 사실 별일도 아니거든요.”

-선생님은 ‘3분 마음챙김 명상’이나 ‘단서 마음챙김 명상’ 등 명상의 생활화를 강조하시죠?

“‘3분 명상’은 하루 중 몇 번씩 3분간 다양한 방식의 명상을 하는 것이고요, ‘단서 명상’은 ‘노트북 켤 때’ ‘전철 탈 때’ 등 매일 반복되는 행동을 스위치 삼아 명상하는 것입니다. 요즘 저는 ‘열숨 명상’을 권장합니다. 시간을 따로 잴 필요 없이 숨을 열 번 쉬는 동안의 명상인데요. 틈날 때마다 들숨에 ‘하나’, 날숨에 ‘숨~’ 하는 식으로 10번 호흡 동안 마음을 호흡 감각으로 채웁니다. 바쁠 땐 5번, 3번만 해도 되고요. 바쁜 생활 중에도 잠시라도 마음 저울의 눈금을 0점으로 돌리는 겁니다. 짧게 하더라도 깊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시간 좌선을 해도 50분 동안 공상, 망상하다가 마지막 10분 명상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저도 공상, 망상 많이 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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