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또 탄핵 서바이벌… 우리도 남미식 중우정치로 가나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2024. 7. 10. 00: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미 국가와 대한민국 공통점
반복되는 대통령·검사 탄핵
탄핵은 최후의 독재 견제 수단
의회의 정치적 무기로 악용되면
민주주의는 난장판 된다
정치가 무슨 ‘오징어 게임’인가
국회. /뉴스1

브라질, 파라과이, 과테말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대한민국의 헌정사에서 중대한 두 가지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나라들은 모두 대통령제 민주주의(presidential democracy)를 채택하고 있으며, 행정부의 수반을 탄핵하여 끌어내린 전례가 있다. 이 두 가지 중대한 공통점을 보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건전한 민주주의의 궤도에서 이탈하여 남미형 중우정치의 나락으로 벌써 떨어지진 않았나 우려하게 된다. 갖은 범죄 혐의에 휩싸인 자당 전 대표를 엄호하기 위해 검사 탄핵을 남발하며 공공연히 대통령을 탄핵하겠다 떠벌리는 거대 야당의 폭주를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미 탄핵에 중독된 듯한 국회에 묻는다. 정치가 무슨 서바이벌 게임인가?

몽테스키외와 로크 등 3권분립을 제창한 근대 입헌주의 사상가들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행정부의 독재를 막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입법부에 탄핵 소추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그들은 의회 독재의 위험을 내다보고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견제권을 강구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나 이원집정부제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의회 해산권 등은 의회 독재를 막는 행정부의 권한이다. 또한 그들은 입법부의 모든 활동에 대한 사법부의 견제를 법제화했다. 실제로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헌법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탄핵의 조건, 절차 및 심의 과정을 최대한 신중하게 제약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정교한 입헌주의의 원칙 위에서 시행착오와 숙의(熟議)의 과정을 거쳐 고안되었다. 그렇기에 남미와 대한민국을 제외한 대다수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행정부 수반에 대한 의회의 탄핵이 성공한 사례가 희소하다. 2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초의 민주국가 미국의 헌정사에선 오직 3명의 대통령만이 도합 네 차례 하원에서 탄핵 소추되었지만, 매번 상원의 탄핵 심판에서 최종적으로 기각되었다. 그 밖의 자유민주주의 선진국들에서 대통령이 탄핵당해 물러난 경우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부 권력의 분립과 제약을 생명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에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상조치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수단이다. 극한 상황에서만 예외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반독재의 극약 처방이란 말이다. 정당한 절차로 국민 다수의 의지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을 의회가 쉽게 몰아낼 수 있다면 선거민주주의의 기본 전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남미 정치의 난맥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위헌적 탄핵 소추권 행사는 이미 군사 쿠데타의 기능적 등가물(functional equivalent)이 돼 버렸다. 과거엔 군부가 총칼로 권력을 탈취했다면, 이제는 민주의 외피를 쓴 세력이 헌법을 악용해서 권력을 찬탈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특정 정당이 당파적 목적을 위해 탄핵 카드를 악용한다면 법치는 파괴되고 민주주의는 사망한다. 탄핵의 선례를 가진 나라에서 여소야대의 대통령은 작은 비위만으로도 부당하게 정치적으로 탄핵당할 수 있다. 반면 여대야소의 대통령은 특대형 위법행위를 하고서도 탄핵당하긴커녕 외려 국회를 등에 업고서 의행합일(議行合一)의 독재를 자행할 수 있는 부조리가 발생한다. 독재 견제의 최후 수단이 의회의 정치적 무기로 악용되는 순간, 고대 그리스의 철인이 예언했듯 민주주의는 난장판(anarchy)이 되고 만다. 바로 그 점에서 어느 나라에서나 탄핵 소추권을 파당적으로 악용하는 정치인들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공화국의 공적이 아닐까.

자유민주주의에서 탄핵 소추권은 독재 권력을 막는 최후의 보루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제22대 대한민국 국회는 개원 초장부터 탄핵 카드를 마구 꺼내 쓰고 있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최첨단의 산업 강국 대한민국에서 대기업들은 기술 혁신으로 최고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데, 국회는 왜 그렇게 깃털처럼 가벼워야만 하는가?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2016년 8월 대통령을 축출한 브라질의 선례를 바로 뒤따라 불과 97일 만에 대통령을 탄핵하고 파면했던 나라다. 이제 진정 라틴아메리카와 더불어 일탈적 민주주의로 추락하려는가? 아니면 민주공화국의 기본 이념을 되살려 3권분립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가? 의회정치의 타락을 보면서 국회에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탄핵 중독 의원님들, 정치가 오징어 게임인가요?”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