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손명순 여사는 왜 성경 모든 단어에 밑줄 쳤을까

김한수 기자 2024. 7. 1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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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하이패밀리, 역대 대통령-부인 성경 전시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에 전시된 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의 성경. 매쪽 단어마다 동그라미와 밑줄이 그어져 있다. /김한수 기자

야당 정치인의 아내로 살아온 세월이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유리 진열장 안의 성경은 모든 페이지에 단어마다 볼펜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진열장 속에 펼쳐진 부분은 요한계시록 18~19장. 펼쳐진 양쪽 페이지엔 ‘세마포’ ‘비단’ ‘만왕의’ ‘왕’ 등 모든 단어에 검은색 볼펜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반면 같은 진열장 안에 놓인 또 한 권의 성경은 밑줄 하나 없이 깨끗했지요. 빈틈없이 동그라미가 그려진 성경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의 성경, 밑줄 하나 없이 깨끗한 성경은 남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성경이었습니다. 손 여사의 성경은 1962년, 김 전 대통령의 성경은 1989년에 출간됐고요.

하이패밀리 송길원 목사가 김영삼 대통령 성경(아래)과 손명순 여사 성경을 설명하고 있다. /김한수 기자

이들 성경은 경기 양평의 하이패밀리(대표 송길원 목사) 내 ‘대통령 성경 전시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송길원 목사는 지난해 재미교포 지인을 통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영문 이름이 가죽에 새겨진 성경을 입수한 것을 계기로 ‘대통령의 성경’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김한수의 오마이갓]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이승만 성경' 속 책갈피 꽂힌 구절

당시 송 목사가 입수한 이승만 대통령의 성경엔 특별한 메모나 밑줄은 없었지만 몇 군데에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지요. 그 중 하나는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갈라디아서 구절에 꽂혀 있었습니다. 우연으로만 보기에는 의미심장했습니다.

표지에 영문으로 'SYNGMAN RHEE’라고 적힌 영어 성경. /송길원 목사 제공

송 목사는 이후로 전직 대통령들이 읽거나 소장했던 성경을 수소문했습니다. 1년 여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 송길원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전두환·노태우·김영삼(부부)·김대중(부부)·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성경을 모았습니다. 대통령들의 유족이나 친지로부터 기증받았지요.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성경은 역시 손명순 여사의 성경이었습니다. 송 목사도 김영삼 대통령 부부의 성경을 기증 받아 페이지를 넘겨보다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손 여사의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페이지에 밑줄이 그어져 있고, 단어마다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손 여사 성경에서 다른 메모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손 여사의 성경은 1962년에 출간된 것이기에 김영삼 대통령의 연보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1960년대는 김 대통령이 청년 정치인으로 활약하던 시절이더군요. 잘 나가는 정치인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성경 구절의 단어 하나하나에 동그라미를 치는 손 여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손 여사는 성경 단어에 밑줄 치고,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하이패밀리에 전시된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의 성경. 위는 김대중 대통령, 아래는 이희호 여사의 성경. 이 여사의 성경엔 형광펜으로 표시가 돼있다. /김한수 기자

김대중 대통령 부부의 성경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성경은 소아시아와 이스라엘의 현장 컬러 사진이 화보로 수록된 ‘빅 컬러 훼밀리 성경’(1998년 출간)이었습니다. 컬러 사진과 큰 활자가 특징이었습니다. 송 목사가 확인한 결과, 특별히 밑줄 친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희호 여사의 성경은 1991년 출간된 큰 활자 성경으로 성경으로 곳곳엔 형광펜으로 표시한 문단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시돼 펼쳐진 부분은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는 요한복음 15장 구절에 연두색 형광펜이 표시돼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부부 역시 남편의 성경은 밑줄 없이 깨끗했고, 아내의 성경은 마음 가는 부분에 표시를 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성경은 워싱턴중앙장로교회 이원상 목사로부터 선물 받은 한영대역 성경이었습니다. 유리 진열장 앞에는 ‘이 대통령이 가장 좋아한 성경 말씀’이란 설명과 함께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는 야고보서 구절이 금속판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내 대통령 성경 전시관 모습. /김한수 기자

전두환 대통령의 성경은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선물한 것으로 2017년에 출간된 ‘극동방송 스터디 바이블’이었고 특별히 밑줄 친 부분은 없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성경은 2012년 출간된 ‘아가페 쉬운 성경’이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이 새기진 성경은 하이패밀리가 같은 디자인의 성경 2권을 준비해 한 권은 본인에게 선물하고 한 권은 전시했다고 합니다.

송길원 목사는 “정치에서는 적과 동지로 나뉘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성경 안에서는 하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역대 대통령들의 성경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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