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손명순 여사는 왜 성경 모든 단어에 밑줄 쳤을까
야당 정치인의 아내로 살아온 세월이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유리 진열장 안의 성경은 모든 페이지에 단어마다 볼펜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진열장 속에 펼쳐진 부분은 요한계시록 18~19장. 펼쳐진 양쪽 페이지엔 ‘세마포’ ‘비단’ ‘만왕의’ ‘왕’ 등 모든 단어에 검은색 볼펜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반면 같은 진열장 안에 놓인 또 한 권의 성경은 밑줄 하나 없이 깨끗했지요. 빈틈없이 동그라미가 그려진 성경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의 성경, 밑줄 하나 없이 깨끗한 성경은 남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성경이었습니다. 손 여사의 성경은 1962년, 김 전 대통령의 성경은 1989년에 출간됐고요.
이들 성경은 경기 양평의 하이패밀리(대표 송길원 목사) 내 ‘대통령 성경 전시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송길원 목사는 지난해 재미교포 지인을 통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영문 이름이 가죽에 새겨진 성경을 입수한 것을 계기로 ‘대통령의 성경’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김한수의 오마이갓]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이승만 성경' 속 책갈피 꽂힌 구절
당시 송 목사가 입수한 이승만 대통령의 성경엔 특별한 메모나 밑줄은 없었지만 몇 군데에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지요. 그 중 하나는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갈라디아서 구절에 꽂혀 있었습니다. 우연으로만 보기에는 의미심장했습니다.
송 목사는 이후로 전직 대통령들이 읽거나 소장했던 성경을 수소문했습니다. 1년 여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 송길원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전두환·노태우·김영삼(부부)·김대중(부부)·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성경을 모았습니다. 대통령들의 유족이나 친지로부터 기증받았지요.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성경은 역시 손명순 여사의 성경이었습니다. 송 목사도 김영삼 대통령 부부의 성경을 기증 받아 페이지를 넘겨보다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손 여사의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페이지에 밑줄이 그어져 있고, 단어마다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손 여사 성경에서 다른 메모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손 여사의 성경은 1962년에 출간된 것이기에 김영삼 대통령의 연보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1960년대는 김 대통령이 청년 정치인으로 활약하던 시절이더군요. 잘 나가는 정치인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성경 구절의 단어 하나하나에 동그라미를 치는 손 여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손 여사는 성경 단어에 밑줄 치고,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김대중 대통령 부부의 성경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성경은 소아시아와 이스라엘의 현장 컬러 사진이 화보로 수록된 ‘빅 컬러 훼밀리 성경’(1998년 출간)이었습니다. 컬러 사진과 큰 활자가 특징이었습니다. 송 목사가 확인한 결과, 특별히 밑줄 친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희호 여사의 성경은 1991년 출간된 큰 활자 성경으로 성경으로 곳곳엔 형광펜으로 표시한 문단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시돼 펼쳐진 부분은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는 요한복음 15장 구절에 연두색 형광펜이 표시돼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부부 역시 남편의 성경은 밑줄 없이 깨끗했고, 아내의 성경은 마음 가는 부분에 표시를 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성경은 워싱턴중앙장로교회 이원상 목사로부터 선물 받은 한영대역 성경이었습니다. 유리 진열장 앞에는 ‘이 대통령이 가장 좋아한 성경 말씀’이란 설명과 함께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는 야고보서 구절이 금속판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성경은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선물한 것으로 2017년에 출간된 ‘극동방송 스터디 바이블’이었고 특별히 밑줄 친 부분은 없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성경은 2012년 출간된 ‘아가페 쉬운 성경’이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이 새기진 성경은 하이패밀리가 같은 디자인의 성경 2권을 준비해 한 권은 본인에게 선물하고 한 권은 전시했다고 합니다.
송길원 목사는 “정치에서는 적과 동지로 나뉘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성경 안에서는 하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역대 대통령들의 성경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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