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골목대장 서울대
일본 도쿄대(東京大)가 최근 ‘등록금 20% 인상’ 방침을 밝혔다. 도쿄대는 “설비 노후화, 물가와 인건비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2005년 동결된 등록금을 인상하겠다”고 했다. 현재 53만엔(약 455만원) 수준 등록금을 64만엔(약 550만원)가량으로 올릴 방침이다. 도쿄대는 지난해 영국의 대학 평가기관 ‘타임스 고등교육’ 평가에서 29위를 기록했다. 중국 칭화대(12위)·베이징대(14위)·싱가포르국립대(19위)에 이어 아시아 4위였다. 도쿄대 출신 노벨상 수상자는 9명(일본 전체 25명)으로 중국 전체 수상자 5명보다 많다. 그런 도쿄대가 중화권 대학에 밀리는 결과를 받아들자 “이대로는 안 된다”며 20년 만의 등록금 인상 등 혁신에 본격 착수한 것이다.
서울대도 얼마 전 교수 철밥통 상징인 ‘호봉제’를 깨고 교수들의 성과에 따라 연봉을 차등 지급하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2016년부터 국립대 교수 전체를 대상으로 성과연봉제를 실시했지만 2011년 법인화된 서울대는 호봉제를 유지해왔다. 관련 본지 보도가 나온 뒤 ‘서울대가 아직도 공무원식 호봉제였느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이 적잖았다. 서울대는 2000년대 초부터 “세계 수준 연구 중심 대학으로 도약하겠다”며 하버드대·도쿄대 수준 대학 자율성을 확보하려면 법인화가 필수라고 노래를 불렀다. 그랬던 서울대가 법인화 후 무려 13년 동안 호봉제를 유지했다. 경직된 관료주의에 대한 지적이 쏟아졌다.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서울대는 2000년대 말 ‘노벨상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사업을 한 적이 있다. 법인화 명분을 쌓기 위한 작업 중 하나였다. 당시 서울대는 “일본·중국 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데 우리도 못 할 게 없다”고 장담했다. 법인화 직후인 2012년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사전트 교수를 연봉 15억원에 고용해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사전트 교수는 1년 만에 ‘개인적인 사유’로 서울대를 떠났고 노벨상 프로젝트는 좌초됐다. 법인화 이후 13년 동안 대한민국 노벨상 수상자는 그대로다. 일·중은 그 기간 각각 8명, 2명을 더 배출했다.
서울대 일각에선 올해 영국 QS 평가에서 서울대가 31위를 기록, 도쿄대(32위)를 제친 것을 두고 “법인화의 성과”라는 자평도 나온다. 하지만 서울대가 도쿄대보다 정말 우수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서울대 안에도 별로 없다. 도쿄대는 올 초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미국식 ‘5년제 통합 학·석사’를 신설했다. 여기에 등록금 ‘20% 인상’이란 초강수까지 두고 있다. 서울대의 이번 교수 성과연봉제 도입이 또 유야무야된다면, 서울대는 국내 1위에만 안주하는 ‘만년 골목대장’이란 말을 들어도 더는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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